한국희곡

차근호 '천국에서의 5월'

clint 2015. 10. 27. 22:03

 

199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작

 

심사평
올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는 응모작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아직 희곡장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방증이라 여겨져 반갑기도 하다. 그러나 양에 비해 질적인 수확은 예년수준을 맴돌고 있다. 대부분의 응모작들이 여전히 개인 신변의 넋두리나 어디서 본 듯한 신춘문예용 모작, 혹은 고민 없는 치기의 과시에 머무르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마지막까지 관심을 끌었던 몇 편의 작품 중 결국 차성우의 '천국에서의 5월'을 당선작으로 꼽기로 합의를 봤다. 천국답지 않은 천국이란 어쩌면 이미 진부한 착상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천국을 종교적 대안마저 결핍된 또 하나의 현실로 파악한 논리가 참신했으며 그 논리에 일상성과 적절한 지적 유머를 통해 자연스레 희곡적 살을 입혀간 침착함에 호감이 갔다. 반면 극형식에 대한 이해와 실습이 충분치 못해 행동이 부족하고 극의 대부분을 대화 중심으로 풀어간 점, 마지막 장면에서 희망을 암시하는 부분의 극적 형상화가 미흡한 점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차점 작들 중 삶. 생명. 인연 등을 상징주의 적으로 다룬. 동동동, 아스스'(이재호)는 독특한 정서의 창출이 눈길을 끌었으나 분위기와 관념에 짓눌려 극 행동이 불분명했고, 아파트 주민들의 삶의 획일성을 풍자한 알레르기 알레고리'(이향희)는 파스(farce)적 상황과 의상, 소품들을 매우 연극적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논리와 형상화 면에서 뒤끝을 맺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희곡이란 구체적이며 객관적인 행동과 대사들로 이루어진 논리적 구축물이라는 기본인식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심사위원: 오태석. 김방옥〉


당선소감
독일이 통일된 후 베를린 장벽을 넘던 동독시민을 정조준 해 사살한 동독 병사가 재판에 회부됐다. 병사는 자신이 일개 사병신분이었고 동독을 탈출하는 시민에게 사격을 가하라는 상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법정은 병사가 군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상관의 명령을 수행했다고 해도 그 이전 인간으로서 스스로 양심의 긴장이 없었음을 지적했다. 양심의 긴장이 없었다는 것은 결국 인간으로서 마땅히 갖고 있어야 하는 인간의 조건, 양심을 포기한 것이며 그것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 사병은 유죄판결을 받아야 했다. 이 재판의 이야기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묻히겠지만 인간의 조건인 양심이라는 말은 쉽사리 우리의 귓가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하나의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신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성자가 될 수 있는가.” 많은 석학들이 이 질문에 난감해했고 때로는 긍정으로, 때로는 부정으로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이 물음에 감히 신이 없는 세상에서도 우리는 성자가 될 수 있다는 치기어린 대답을 한다. 그러다 문득 우리의 역사 속에서 빵과 자유가 죽음과 등 가되는 순간 혁명이 있었다는 걸 떠올린다. 나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순수와 양심, 그리고 정의에 대해서….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귀담아 들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직도 꿈을 꿉니다. 혹자는 순수의 시대가 끝났다고 하지만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직 순수라는 언어를 잊지 않았으며 인간의 정의와 양심이라는 구원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말입니다. 저에게 힘이 돼 주신 부모님과 여동생, 친구들과 은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약력▶72년 경기도 의정부 출생▶96년 서울예술전문대 극작과 졸업
199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분야에<천국에서의 5월>이 당선되었다. 1999년에 쓴<조선제왕신위>가 제36회 동아연극 상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2000년<암흑전설 영웅전>으로 삼성문학상 장막희곡 부문 수상자가 되었다.<닭에 대한 논리>,<투란도트>,<천년제국 1623>,<사랑의 기원>,<하우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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