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인륜대사는 사람들의 의식과 사회상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거울이다. 결혼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결혼을 상품구매의 행위처럼 판단하는 세태를 풍자한 연극 이 『컴퓨터결혼』(조원석 작.)이다.
제목이 시사하 듯 문명의 이기가 인간의 「관계 맺기」에 깊숙이 개입한 상황을 연극의 줄거리로 설정했다. 「컴퓨터결혼상담소」에서 벌어지는 과장된 사건들이 사실적이기보다는 다분히 연극적이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일단 논리적 판단을 접어두게 한다. 전직 구두방 주인인 소장은 고객의 구미에 맞는 구두를 권하듯이 희망하는 배우자의 자료를 컴퓨터에 담아 서로 맞는 짝을 프로그램이 찾아주게 한다. 구두를 신어 보듯이 남녀는 「상상결혼」을 연습하고 마지막으로 마음을 읽는 기계의 단추를 눌러 배우자를 확정한다. 이 과정에서 외형적인 조건이 남녀의 만남에 최우선시 되는 현실이 조롱되고- 소장은 해설자 역을 겸하면서 극에서 벗어나 촌평을 하기도 한다. 취미와 수명마저도 통계와 컴퓨터가 정해주는 대로 믿는 물질만능, 과학맹신의 풍조가 수시로 희화화 된다 .
결국 결혼상대자의 선택까지도 기계에 떠맡김으로써 선택에 대한책임을 회피하려는, 스스로를 상품화해 가치를 매기려는 위험한 현실이 과장. 풍자된 것이다. 기계고장으로 이들은 결혼에 불합격(?)하고 소장은 더욱 뛰어난 컴퓨터로 장사에 성공하지만 상담소에서 다시 만난 이들을 재결합시켜 주는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이며 각자를 변화시킨 노력임이 밝혀진다. 이 와중에서도 소장은 행복도를 측정 하는 기계로그들의 결합을 보증해주는 상술을 발휘하며, 당사자들은 「전지전능한」 기계를 믿고 안심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정해준 쌍의 불행에 대해 아무 대답이 없는 컴퓨터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만남에 무기력한 기계를 고발하며 극이 종결된다.
이 극은 컴퓨터 결혼상담소를 무대로 자신의 선택을 기계에 맡겨버리는 물질문명 맹신의 현대 문명사회를 재치 있게 비판하고 있는 희극이다. 결혼은 인생의 중대사이며 인류사회를 존속시켜온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 희극의 주요한 소재이기도 하다. 시대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하는 방식이 변화해왔는데, 문명이기 컴퓨터의 등장은 현대인에게 사랑의 과학화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선택의 책임을 기계에 전가시키고 스스로 '상품'이 됨으로써 이기심과 행복을 보장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라는 발상이 극의 주요한 희극 성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이 극의 등장인물들은 현대 결혼의 여러 양상들을 풍자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결혼상담소 소장은 전직 구두 가게 주인으로 고객들에게 "손님 문수에 맞는 상품을 얼마든지 준비해 놓고 주문"에 응하고 있다는 식으로 자꾸 구두 방 경험을 내세우는 희극적 인물이다. 허 영숙과, 고 상해는 '선조건 후사랑'의 원칙에 철저하게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의 조건을 허욕스럽게 내세우는 현대인의 전형이다. 그러나 극의 전반부에서 상담소 소장이 컴퓨터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아직도 결혼상대자의 '환상결혼'을 시도해보는 전근대적 영업을 하고 있듯이, 이들은 그래도 사랑을 결혼의 충분조건이라 생각하는 낭만적인 결혼관을 가진 인물들이다. 소장이 맹신하는 기계가 고장 나 결혼 성사가 이루어지지 않자 전업을 생각하다가 기계의 고장 때문이란 걸 안 소장은 현대인의 기계맹신, 수치 만능주의에 착안하여 '인간의 마음까지 읽는' 시나프스 컴퓨터를 들여놓았다고 선전하면서 호황을 누린다. 결혼은 이제 철저한 시장원리에 입각한 거래가 되는 것이다. 이미남, 황금순이 바로 그런 결혼의 거래 적 성격을 대변하는 인물이며, 현대의 상품적 결혼 양상이 그들을 통해 풍자된다. 여자2는 다섯 번이나 결혼한 경력의 기성품'을 흥정하러 온 자칭 '결혼 전위 예술가인데, 소장과 결혼제도에 대한 자못 철학적인 논쟁을 벌인다. 소장은 마지막 '재고품'인 고상해와 허영숙을 불러 그들의 결혼 행복 도를 컴퓨터가 측정하게 하여 결혼을 성사시킨다.
이 극의 재미는 현대의 결혼관을 풍자하는 데도 있지만, 손해보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약삭빠른 심리가 사실은 과학문명에 대한 미신적 신앙으로 변모되어 나타나며, 동시에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기 싫어하는 유아적 사고의 변형된 표현이란 걸 재치 있게 소통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 물질문명은 인간성의 본질인 사랑까지도 기계와 수치, 확률로 측정할 수 있다고 믿는 미신적 바벨탑이 되고 만 것임을 웃음을 통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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