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차범석 '식민지의 아침' (꿈하늘)

clint 2015. 10. 27. 11:39

 

 

 

 

막이 열리면 단재 신채호의 시 '너의 것'이 낭독된다. 모든 연기자들이 등장하여, 신채호선생 생전의 강인했던 독립의지와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가리라 는 의지를 펼친다.
1936년 2월 21일 오랜 옥고에 시달린 끝에 병이든 신 채호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의사는 경성에서 면회온 부인 박자해여사에게 더이상 가망 이 없다는 말을 전하게 되고, 부인은 오일한다. 죽음을 목전에 둔 신채호는 부인의 울음소리에 생의 역정을 되돌이켜 본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던 해, 단발을 단행하고 낙향하여, 충청도 청주부근 산동학원에서 학동들을 가르치고 있던 신채호에게 당시 황성신문 사장으로 있던 위암 장지연이 찾아온다.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바로 잡으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면서 경성으로 올라가 언론에 힘써 민족의 정신을 일깨워 주기를 간곡히 칭한다.
이등박문이 내놓은 5조약에 분노한 장지연은 논설 '시 일야방성대곡'을 황성신문에 게재한다. 분노하는 민중들은 "강도 일본은 물러가라", 자결하라"를 외치며 시 위를 강행하나 이미 국운은 기울어 버렸고, 장지연과 신채호는 일경에게 끌려간다.
황성신문 폐간 이후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일하는 신채호는 위난에 처해있는 국가의 장래가 자나깨나 염려스럽다. 나라걱정에 잠겨있는 남편의 마음에는 아랑곳 없이 부인 조씨의 악의없는 주님이 깔린다.
일본위병과 기수의 진군이 한일합방의 전조를 알린다. 신채호는 신민회 비밀결사 취지문을 낭독하고 안창호 이 승훈, 양기탁, 이갑과 함께 회의를 한다. 실제적인 투쟁이라는 목적 아래 해외망명을 결정한다.
신채호는 가족과의 인연조차 끊고 조선의 독립에 힘쓸 결심으로 집을 떠난다. 망국의 한을 품고 중국으로 떠나는 신채호의 심정이 안무로 표현된다. 1910년 신민회 비밀결사. 잠든 신채호 앞에 을지문덕과 무궁화가 나타나 만주벌판에 백만대군이 깃발을 날리며 뛰던 때를 기억하라고 당부하며 신채호는 사서 사관을 정립한다.

 

 

 

1915년 북경의 박달학원. 역사가 살아 있으면 그 국가는 멸할 수 없다는 이념 하에 사관을 확립하기 위하여 고구려의 도읍지 환인현을 찾기로 결심한다. 광막한 만주벌판이 내려보이는 상상봉, 한민족의 정신을 찾아 나선 신채호가 지쳐 잠든다.

조선 방방곡곡에서 만세운동이 펼쳐진다. 가면을 쓴 연기자들이 등장하여 단지 독립운동단체를 나타내는 깃발 밑에 서서 임시정부 내의 사분오열된 난맥상을 보인다. 신채호는 이승만이 미국에 제출한 위임통치청원서에 분노 하고 규탄하지만 결국 신채호 스스로 임시정부에서 물러나고 만다. 임정을 탈퇴한 후 북경으로 돌아온 신채호는 의과대학을 나온 박자혜와 재혼, 아들 수법을 낳으며 집필에 주력한다. 그러나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여 박자혜는 경성으로 떠나게 된다. 이별 후 약 6년이 지난 어느날 한밤 중 남편을 회상하고 있는 박자에게 의열단청년 나석주가 찾아온다. 나석주는 동양척식회사와 식사은행 파괴에 적극 힘이 되어주라는 신채호의 편지를 전해주고 떠난다. 암전속에 복음이 울리며 나석주의 죽음을 알린다. 젊은 독립투사들의 죽음.임시정부 내의 권력투쟁, 모자 의 가난과 건강의 악화 등 좌절에 빠진 신채호 앞에 분신들이 나타난다. 결국, 조국을 구하기 위하여는 폭력과 파괴 밖에 없다는 폭력주의 무정부주의자로 변신한다. 동방연맹에 가입하여 외국채권 2장을 위조 대만으로 갔다가 일본수상경찰에 의해 체포된 신채호의 4번째 공판장. 오직 일본의 침략주의에 대한 투쟁과 조선독립쟁취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신채호의 의지가 나타나고 징역 10년을 언도받는다. 병보석도 거절하고 죽어가는 신채호 앞에 인생에 영향을 끼쳐온 인물들이 환상으로 나타나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단재의 양징과 향로가 무대에 나오고 인기자들이 조용히 분향한다. 박자혜가 나와 '가신님 단재 영전에'를 제품으로 바친다.

 

 

신채호 서거 50주년 추모 사업 일환으로 1986년에 창작하고 청주에서 공연한 <식민지의 아침>을 개작했다. 1987년 국립극단에서 김석만 연출로 공연했다. <꿈 하늘>은 신채호가 임종한 시점부터 시간을 역행하며 그의 일대기를 보여 준 다음 다시 죽음에 이르는 ‘현재, 과거, 현재’ 플롯을 취했다. 이와 함께 신채호라는 한 인물을 신채호 1, 신채호 2, 신채호 3과 같이 세 분신으로 나누고, 서로가 분신임을 알아보게 하는 기법을 활용했다. 이들은 각각 신채호의 청년, 장년, 중년기 자아인 동시에 신채호의 내면을 구성하는 다양한 면모를 상징한다. 또 신채호의 활동 중에서 무대화하지 않은 사건을 요약해 관객에게 설명하는 해설자 역할을 함으로써 불연속적인 장면을 연결하고 장면 사이의 개연성을 마련해 주는 기능을 한다. 이처럼 한 무대에 신채호의 여러 내면을 상징하는 다수의 분신이 한꺼번에 등장하면서 신채호의 내적 갈등을 가시화했다.

 

 

 

작가의 글 (차범석)
1985년 늦가을 어느 날. 낯선 손님이 나를 찾아왔었다. 그때 나는 청주대학교 예술대학장 자리를 맡고 있을 때였다. 손님은 명함을 꺼내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현직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며, 「광복회 충북지회장」인 「송선호」씨였다. 나를 찾아온 사연 인즉, 내년 (1986 년)이면 단재 신채호 선생 서거 50주년이 되는 데 그 어른의 덕을 기리는 추모 사업으로 연극을 하겠다면서 나더러 신채호 선생의 일대기를 소재로 희곡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단재 신채호선생은 이 고장 출신이자 그 묘소도 청주 외곽에 있으나 세상에서는 단재에 대한 업적이나 그 인간성에 대해서 너무나 무관심한 처지와 이 기회에 널리 그 공덕을 선양하고 그 어른의 투철한 정신을 청소년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사업의 요지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 자신도 단재 신채호 선생이 언론인이자 사학자며, 독립지사이자 문필가였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 더 깊은 내력은 모르는 처지였다. 나는 우연치 않게 충청도에서 살게 되었으니 그 인연과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도 해볼 만한 일이다고 판단이 서자 그 청탁을 수락하고 4개월 만에 탈고한 작품이 「식민지의 아침」이었다. 전 17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문자 그대로 단재선생의 일대기이며 그 정신적, 육체적 갈등과 번뇌와 의기를 되도록이면 빠뜨리지 않고 집대성하려는 하나의 기록 극이다. 그래서 환등기와 슬라이드를 사용함으로써 젊은 학생충의 이해를 돕는데 신경 쓴 작품이다.
「植民地의 아침」은 다음해 1986년 9월 8일부터 12일 동안 충북연극협회 주최로 청주를 위시하여 충청북도 일원에서 공연되어 나름대로의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1987년 국립극단에서 이 작품을 공연하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그리고 연출은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젊고 패기 있는 김석만으로 정했다. 나와 김석만은 작품 개작에 착수하였다 왜냐면 「植民地의 아침」은 그 소재나 주제설정에는 이의가 없으되 무대공연에 있어서 좀 더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을 구사하고 싶다는 젊은 연출가의 의욕에 나도 공감하였으니 두 사람의 의기투합된 작업은 단시일이나마 정열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왕이면 제목도 바꾸는 게 좋겠다고 의견도 있기에 나는 생각 끝에 「꿈 하늘」이라고 개작하였다. 그 근거는 신채호의 소설에 「夢天」이라는 작품이 있으니 그것들 풀이하여 지은 제목이다. 그러므로 희곡 植民地의 아침과 「꿈하늘」 은 이를테면 일란성 쌍동이가 된 셈이다. 꿈하늘은 그 구조적인 면에서부터 탈바꿈하기로 했다. 그리고 주인공 신채호를 1, 2, 3 세 사람으로 등장시키되 그 인물의 내면성을 보다 입체적으로 부각시키며, 서사극적 수법을 도입하자는데 합의를 보았었다.

 

 


작가란 자기 작품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는 광신적인 면이 있다. 그래서 어떤 작가는 연출가가 손질하는데 대해서 병적으로 거부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좀 달랐다. 젊은 연출가의 의도한 바가 나의 작품을 새롭게 하고 그 힘을 입어 하나의 개안(開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담하게 수술을 가하기로 했었다.
예술에 있어서 새로움이란 무엇인가. 무(無)에서 유(有)를 찾는 기발하고도 황당무계한 기상천외의 발상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있는 것에 대한 갈고 닦고 하는 노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古典)에 대한 재해석도 있을게고, 연출의 시각과 작가의 시각을 대조시키는 작업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공연이 호평을 받았을 때 맨 먼저 연출가에게 그 공을 돌리고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예술에 있어서 자연인의 나이는 문제가 안 된다. 얼마만큼 진솔하게 접근하려드는가라는 진실성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단재의 실천적인 활약상 내면적인 의식의 변화를 당대의 시대상황과 함께 여러 방면으로 요령 있게 간추려서 전개시킨다. 사실과 상황과 정신적 세계를 조화롭게 재구성하기 위하여 단재의 역할을 3인의 배우가 나누어 맡게 한 방법은 자칫하면 지리멸렬해질 우려를 말끔히 씻고, 오히려 극적인 진실을 점증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기록 과 자료의 충실이라는 측면 이외에도 단재의 사상과 인간적인 내면세계를 온당하게 구현시키면서 (중략) 실로 오랫만에 감동을 느끼게 하는 공연이었다.”라고 연극평론가 서연호씨가 평한 것도 그 노작에 대한 고무적인 격려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뜻하지 않게 희곡 「植民地의 아침」은 「'87년도 대한민국문학상」본상의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다. 분에 넘치는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긍지도, 그리고 한 작품을 양면에서 묘출해낸 두 편의 작품을 대조시킨다는 친절도 나로서는 매우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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