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유의 세계인 '다음 역'은 망자에게 있어 생전에 가장 강렬한 영향을 미친 곳과 중첩된다. 주인공 춘자에게는 망향의 터인 굴다리로, 그녀 가족들은 이미 오래 전 그곳에서 발생한 화재로 사망한 상태다. 해방둥이로 오로지 먹고 사는 것만이 전부였던 시절, 굴다리 거지 가족들이 창피해 홀로 달아났던 춘자는 감히 식모살이를 하던 주인집 아저씨를 좋아했던 죄로 창녀가 된 여자다. 파란만장한 세월을 지나 이제는 갈보 춘자가 아닌 미친년 춘자로 불리는 게 더 익숙한 나이. 하지만 그녀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친구 민주가 있어 행복하다. 아니 행복했었다. 역 주변을 배회하며 민주를 애타게 기다리는 춘자의 기억이 죽음 직전으로 돌아가는 동안 차마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한 많은 독백이 이어진다. "육십 평생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