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선욱현 '내 맛이 어때서'

clint 2016. 6. 23. 10:42

 

 

 

줄거리

배경이 되는 동네에서 10년간 김밥집을 잘 해 온 이만근은 주민들로부터 맛과 인격을 검증받은 나름 훌륭한 가장이다. 그런데 그 이만근 김밥집 앞에 <임실 할머니 김밥>이 들어선다. 일종의 체인점인데 가격도 김밥 한 줄에 사천원을 받는데다가, 맛이 훌륭해 금새 이만근 김밥집은 망하기 직전에 이른다. 더구나 이만근의 아이, 진주는 장애가 있는 아이라 치료비가 많이 들어간다. 결국 위기에 몰린 이만근은 자신의 김밥집 간판을 내리고 결국 임실 할머니 김밥집 체인이 되기로 하는데, 문제는 체인 사업의 특성상, 바로 앞 집 - 본점만 돈을 벌지 자신의 집은 역시 고사 직전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이만근은 임실 할머니 김밥 맛의 근거지인 전북 임실까지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임실 할머니 김밥 맛의 근원인 <삭힌 단무지>, 그 단무지를 제공하는 할머니가 원조가 아니었다. 게다가 원조 할머니는 바로 앞집 <오사장>의 어머니였던 것, 고고한 고집 때문에 그 오사장의 어머니는 삭힌 단무지를 팔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만근은 그 원조 할머니의 단무지를 얻어오는데 성공하고, 임실할머니 김밥 - 원조 간판을 내걸게 된다. 이제 반대로 그 오사장의 체인점이 졸지에 짝퉁으로 전락, 고사 위기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분노한 오사장은 고향으로 내려가 자신의 고향집 단무지 항아리들을 다 부수게 된다. 이만근 사장 또한 이제 난감해진다. 그때 깨닫게 된다. 자신이 어느 새 장사치가 되어 남루해져 있음을! 이제 이만근은 되돌리려 하는데, 자신의 잘못 된 행보를 깨닫고 이만근 김밥집을 하던 순수하고 당찬 모습으로 되돌아가려 하는데

 

 

 

 

 

내 맛이 어때서에서는 이만근은 천사를 보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는 선인의 자리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내 맛이 어때서라는 연극의 극 행위는 이만근의 수호천사가 천사로서의 빛을 잃어 가는 과정이다. 좋은 재료로 품질 좋고 맛있는 김밥을 10년째 만들어 오던 이만근은 오 사장의 임실 할머니김밥에 밀려 급기야 임실할머니 김밥의 프랜차이즈 대리점을 운영하는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사업은 이윤의 대부분을 본사가 가져간다. 이와 같은 이야기에서 희생자인 이만근은 선인, 오 사장은 악인으로 제시되는 듯하지만, 심층에서는 선악의 관계가 이처럼 단순하지 않다. 이만근은 임실할머니 김밥의 비법을 빼내고 이에 오 사장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비극을 낳게 만든다. 폭력을 필연적인 것으로 강요하는 이 세계에서 이만근도 오 사장도 모두 피해자이다.

 

 

 

 

 

극작가 선욱현은 1995년 등단 이후, <절대사절>, <악몽>, <고추말리기>, <장화홍련 실종사건>, <생고기 전문>,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 <의자는 잘못 없다>, 20 작품 가까이 발표해 온 중견 극작가이다. 그런 그가 2009년말, 지난 12월에 신작을 내놓았다. 그것도 자신의 <잘못 없다> 연작 시리즈의 완결작이자 새로운 레퍼토리 공연을 꿈꾸는 야심작이라고 자신했다. 한 달여의 초연을 마치고, 많은 관객들과 연극 관계자들로부터 레퍼토리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주인공인 이만근은 우리 시대를 사는 아버지, 남편을 떠올리게 하면서 관객들의 뜨거운 공감을 얻어냈다. 2010년 서울문화재단 정기공모에 선정되어 올해 재공연을 갖게 되었다.

 

 

 

 

잘못 없다 시리즈, 그 완결작

 

1997<절대사절> (부제:신문은 잘못 없다), 2002<의자는 잘못 없다>, 그리고 2006<거주자 우선 주차구역>(부제: 박사장은 잘못 없다) 까지 극작가 선욱현이 <잘못 없다> 시리즈로 연작처럼 써 온 작품들이다. 모두 대도시를 배경으로 배려 없는 사회가 가져오는 인간들의 갈등과 비극을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번 공연 <내 맛이 어때서!>는 그러한 시리즈의 완결작 격으로, 이만근 김밥집을 배경으로 우리 사회가 빚어내는 과도한 욕망이 얼마나 우리 개인을 타락시키고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가를 우화적으로 성찰해 보는 작품이다. 그동안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가장 포괄적으로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바로 자본주의, 고도 소비사회가 가져오는 폐해를 근원적으로 살펴보는 작품이다.

 

 

선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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