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연극
Modafe 2005가 현대무용의 활성화를 위해 윤정섭과 함께 의욕적으로 <무거운 물>을 공동제작합니다. 그동안 무대미술, 설치미술, 연출, 영화, CF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창무회와 무용작업을 함께하기도 한 윤정섭은 절제되고 세련된 미학으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발표해왔습니다. 원래 <무거운 물>은 큰 목욕탕의 샤워기에서 검은 물만 쏟아지는 설치작품이었으며, 이를 발전시켜 만든 실험극의 제목이지요. 이제 윤정섭은 Modafe 2005에서 혁신과 진보의 양극단에서 <무거운 물>을 실험합니다.
<무거운 물>에서 벽과 검은 물만으로 이루어진 무대는 빛, 소리, 시간, 공간과 같은 공연예술의 기본 재료에 의해서 시공간이 이루어지며 각각의 장면들은 독립적인 공간들 안에서 연결되기도 하고 병치되기도 합니다. 인간의 무지와 헛된 욕망으로 병들어가는 세계는 소리로 시작하여 빛으로 이어져 전달되는 직관과 상상력을 통해 파악하게 됩니다.
<무거운 물>의 물 이야기
윤정섭은 물에 대한 상상을 철학적으로 풀어낸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저서 <물과 꿈>에서 <무거운 물>의 제목을 차용하였으나 실제 모티브는 시화호(죽어가는 호수)에서 얻었다고 한다. 원래 <무거운 물>은 1990년 ‘올해의 작가전’에 출품된 설치작품으로, 과천 현대미술관에 큰 목욕탕을 설치하고 샤워기에서 검은 물이 쏟아지는 작업이었다. 그 후 1998년 이를 발전시켜 실험극 <무거운 물>을 선보였다.
<무거운 물>은 시화호의 오염을 주제로 만들어진 죽은 물에 대한 우화다. 인간에 의해 물의 흐름이 막혀버린다면 그 물은 썩고 그 안에 사는 인간도 결국은 죽게 될 것이다. 침묵에서 시작하여 침묵으로 끝나는 각 장면들은 새들이 여행하는 여행의 선과 물가에 나타나 새들을 공격하는 욕망의 선(인간의 이기), 그리고 여행의 선을 거스르며 나타나는 죽은 자의 선, 이렇게 3개의 선이 축을 이룬다. 이 이미지들은 각각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서로 연결되거나 병치되는데, 이는 언어(서사)에 의해 전달되기보다는 소리와 움직임, 빛과 사물 등에 의해 전달된다. 관객은 논리에 의해 구속된 서사 구조보다 직관과 상상력에 의지하여 작품을 대해야 한다.
절제의 극치에서 이끌어내는 무한한 상상력
벽과 검은 물이 있는 무대는 빛과 소리, 인간의 마음에 의해 시간과 공간이 완성된다. 이러한 근본적인 재료들은 작품에서 절제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관객 각 개인의 경험에서 나오는 기억과 정서에 의해 작품에 대한 느낌과 해석은 확장된다. 일반적으로 무대 미술가들이 작품을 구상할 때는 그림을 먼저 그린다. 하지만 윤정섭의 시작은 소리이고, 그 소리로부터 상상력이 잉태된다. <무거운 물>도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적막을 깨는 물소리로 서서히 시작한다. 그 물소리는 점점 커지다가 마치 소리로부터 쏘아진 듯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으로 나타나듯 청각이 시각으로 연결된다. 그에게 있어 무대란 소리로부터 시작된 상상력에 시각을 입히는 것이므로 소리 작업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필름이 편집되듯 잘려지고, 심지어는 지나치게 느려지거나 반복된다. 결국 빛과 공간이 만들어내는 순간의 이미지들만이 존재한다.
무용과 연극 사이에서
무용은 대단히 추상적인 예술이다.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포함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연극은 서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논리적 구조 속에 짜맞추려고 한다. 무용과 연극에서의 추상과 서사는 매우 큰 힘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에 안주하면 부패되기 쉬운 요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는 <무거운 물>을 무용과 연극 중 어느 한 장르로 구분 지을 생각은 없다. 굳이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그냥 공연’이라 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설치작업 <무거운 물>에 ‘시간’을 불어넣어 무대에 풀어놓는 것이 이번에 리메이크되는 <무거운 물>이다.
윤정섭은 무용수와 배우의 역할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대 위 조명이나 세트같이 연출자나 안무가가 필요로 하는 재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그러나 선입관이나 주관 때문에 그들의 역할을 순수하게 해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몸에 밴 동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근대적 생각에 머물러 있는 한계를 뛰어넘어 현대적인 감각을 길러야 한다. 정서에 호소하지 않겠다
1998년 <무거운 물>이 초연되었을 때, 설명과 서사를 필요로 하는 국내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하여 필요이상의 표현방법들을 동원하였다. 또한 그렇게 된 데에는 한 작품만을 보고 모든 것을 평가해버리는 국내 공연예술의 풍토도 한몫했다. 하지만 윤정섭은 이번 Modafe 2005에서는 타협하지 않는 자신만의 철학을 보여주려 한다. 군더더기를 빼고 순수하게 그가 보여주려고 하는 장면은 과연 어떤 것일까?
윤정섭은 아직도 <무거운 물>에 대해 할 말이 많다. Modafe 2005에서 그는 이전에 보여주지 못했던 완벽히 정제된 <무거운 물>을 자기만의 언어로 완성하여 실험하고자 한다. 확고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그의 노력의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지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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