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엄인희 '비밀을 말해줄까'

clint 2016. 6. 19. 18:42

 

 

 

<비밀을 말해줄까?>, 이 희곡은 '생리 전 중후군'에 걸린 여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안순옥은 생리 전에 불안 증세를 보이는 여성이다. 그는 첫 생리가 있고 얼마 안 있어 이 병에 걸린다. 대체로 이 증후군을 보이는 여성들은 폭력적이 되거나, 도벽, 우울증, 낭비 따위의 과잉행동을 보인다. 안순옥은 그 중에 도둑질을 하는 여성으로 성장한다. 연극은 안순옥이 유아살해(자기아이)를 했다는 의심을 받고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순옥의 주치의 고 박사는 여성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애인한테 이 사건을 귀뜯하고 김현경은 안순옥의 살아온 행로에 관심을 갖고 병실로 찾아들어 간다. 현경이 순옥과 가까워지고 허락을 얻어, 필름을 만들며 관객은 그의 과거를 알아간다. 현경은 1심 재판이 열리기 전 아이가 어떻게 해서 죽음에 이르렀는지 알아보기 위해 '재현연극'을 시도한다. 순옥 앞에서 과거를 연기하고 순옥은 진실을 토로한다. 드디어 아이가 죽은 장면이 재현되고 순옥의 비밀이 밝혀진다. 결국 순옥은 자궁절제 수술을 받는다. 그러나 앞날은 밝지 않다.

생리 유전자는 자궁을 없앴다고 해서 호르몬 변화를 멈춰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의 뱃속에서 나온 '자궁'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가? 쓰레기인가? 그건 어디로 가는가한 번도 순옥의 것이 아니었던 자궁. 그 여자의 뱃속에 들어있어서 인생을 파멸로 이끈 그 자궁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까...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이 <비밀을 말해줄까?> 줄거리의 미덕이다.

 

 

 

 

 

우리는 무엇을 잃었을까 - 작가의 글

 

몇 년 전 나는 여성과 섹스에 대해 고민했다. 인간이 성을 즐길 권리에 대한 깊은 생각이었다. 생각을 발전시킬수록 권리는 훼손되고 인간은 자기 성을 지킬 능력이 없어보였다. 더구나 여성들은 자기 몸의 주인이 되어 성올 즐기고 누리고 만족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들은 왜 섹스에서 소외되어 대상이 되고 있을까? 자기 몸으로 자기 본능을, 스스로잘 알아서 누리지 못하는 건 왜 그럴까이 불손한 질문들에 대한 기초적인 대답은, 이 작품을 쓰고 영화화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핵심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섹스의 핵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곳에는 '자궁', '잃어버린 낙원'이 버티고 있었다. 하나의 생명체로 만들어진 순간에 가장 먼저 기대고 의지하고 살았던 곳. 생애초기 단계에 깊이 새겨진 추억들이 있는 곳. '내가 누구인가' 라는 최초의 철학적인 질문을 했던 곳… 우린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열망한다. 오로지 섹스만이 그 안에서의 경험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더 이상 품어주지 않은지 오래된 '자궁'에서 원초적인 종류의 만족을 기대하며 섹스에 탐닉한다. 왜 그렇게 불쌍하게 됐을까후기 산업사회 특유의 다양한 형태의 소외에 빠져 허우적대는 21세기 인간들한테 영원히 잃어버린 낙원이 '자궁'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냉장고 안이나 항아리 안, 옷장 속, 속이 비어있는 물체에 비집고 들어간다. 그곳에서 한참을 놀다 밖으로 나온다. 이토록 인간은 심리적으로 '자궁을 소망'한다. 하지만 이런 상실은 다소 남성적인 냄새가 난다. 여성들은 몸안에 각자 고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생리를 시작하면서 그 존재를 느끼고 아이를 배고 생산할 때가 가장 화려한 활동기이다. 임신과 출산 과정은 여성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자랑스럽게 느끼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십 수 년 동안 생리를 통해 고통을 주고 곤란한 경험을 주던 자궁은 생명을 배 안에 담게 해주는 기회를 주면서 자기 존재를 확실히 알린다. 이런 경험을 통해 여성들은 잃어 버렸던 낙원에 대한 상실의 고통에서 많이들 벗어난다. 그렇다고 인간은 낙원에서 안간힘을 쓰고 헤엄쳐 나오던, 그 고통스런 출구로 향하는 길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세상을 향해 생애 최초로 많은 힘을 쓰고 몇 시간에 걸친 투쟁을 통해 빛의 세계인 '밖으로 나오던, 그 처절한 외로움을 잊어버릴 수는 없다. 더구나 '자궁'올 몸에 달고 있는 여성들은 그런저런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생리 전 부르르 떠는 여러 가지 고통을 겪는 것이다. 나는 '생리 전 중후군'이라는 병을 소재로 해서 자궁의 존재, 의미, 앞날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았다. 또 여성의 몸 안에는 과연 '자궁'이 있는가? 남자들의 '인큐베이터'가 들어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갔다. 여성의 몸 안에 있는 아이는 온전한 여성의 몸일까, 아닐까, 남자의 것일까, 아니면 그 아이의 것일까.

 

 

 

 

 

오늘날 여성들한테 그들의 '자궁'이 자기만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일까? 자궁암에 걸렸을 때가 아닐까. 우린 이럴 때 자궁을 잃는다. (남편)의 아들을 낳으라는 강요를 받을 때. 신이 잘 즐기기 위해 질 축소수술을 받을 때. 광적인 쾌락 후 불필요한 부산물인 생명체를 떼어버릴 때. 강제적인 가족계획, 남자의 일방적인 피임회피, 따위로 불임 수술을 받을 때. 자궁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성기를 드러내어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을 볼 때와 만들어질 때그래서 우리는(여성은)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자궁의 비밀을 알려, 그것이 인류가 가장 최우선으로 다뤄야할 보물이란 것을 밝혀야 한다끝으로 그녀가 '(여자이면서) 작가가 되고 싶었나?' 라는 글을 남긴 것이 있다. 이 지면에 소개한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대가족이었다. 아버지가 함흥에서 내려온 피난민이라 온 가족이 모여 살았다. 우리는 밥을 먹을 때 항상 두 상을 차렸다. 진짜 상 위에선 남자들이 먹었고, 상 밑의 쟁반에선 여자들이 먹었다. 나와 언니와 어머니가당연하게 여기고 살았는데 하루는 고등어조림이 상에 오르고 우리 쟁반에는 배추 꽁댕이만 놓였다. 난 그때 고등어조림이 먹고 싶어서 상올 올려다보며 숟가락만 빨았다. 결국 아버지가 한 덩이 넘겨주긴 했지만

나는 남자들처럼 상위에서 좋은 반찬을 먹고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어머니처럼 살지 말고 남자들처럼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발단이다. (엄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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