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근형 '너무 놀라지 마라'

clint 2016. 5. 2. 10:27

 

 

 

 

 

경쾌한 음악과 함께 조명 들어오면 집 안 새벽, 아버지 어두운 거실에 앉아 손톱을 깎고 면도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에만 매진하는 남편과 어려운 생활 때문에 노래방 도우미를 나가기 시작한 아내. 가출한 어머니의 행방을 알게 된 후 자살한 아버지와 남은 가족의 달라진 것 없는 삶을 그리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장례를 치를 생각도 하지 않고 아버지의 시체 옆에서 일상을 보낸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앞에 두고 전혀 놀라지도 않고 동요하지도 않는 가족들의 부조리한 모습에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성찰해볼 수 있는 작품. 제목이 갖는 아이러니를 되새겨볼 만하다.

 

 

 

 

 


산산조각 난 채 볼썽사납게 엉겨 붙어 있는 가족 관계의 극한을 보여준다. 친구 장례식장에 문상 갔다가 가출한 부인이 상(喪)을 치르는 것을 목격한 시아버지는 "너무 길게 살았다. 이쯤에서 잘라내고 싶다"며 목을 맨다. 며느리는 꾀꼬리 노래방에 도우미로 출근하며 사내를 만난다. 큰아들은 영화판에서 겉돌고 다리를 절룩거리는 둘째아들은 형수를 사랑한다. 아버지는 공연 내내 화장실 천장에 매달려 있다 우리의 현실 감각을 놀랄 만큼 일그러뜨린다. 죽은 아버지가 말을 하고, 신발장에서 총각이 튀어나오며 노래방으로 공간이 바뀐다. 극단 골목길의 작품답게 세트·조명·음향이 초라하다. 거친 언어, 욕설이 난무하고 공간 이동도 덜컹거리는데 일단 익숙해지면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로 육박해온다. 배우들은 분장 없이 무대에 올랐다.
관객은 불편해 하면서도 많이 웃었다. 《청춘예찬》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처럼 슬픔과 웃음을 포개는 박근형의 솜씨는 여전했다. 인위적이지만 저마다 절절한 사연이 있는 인물들의 조합, 장윤정의 《어머나》나 서울패밀리의 《이제는》 같은 경쾌한 템포의 노래들, 통념에 역행하는 대사들이 긴장감을 이어줬다

 

 

 

 

 

‘너무 놀라지 마라’의 줄거리를 글로 풀어 쓰면 영락없는 엽기 가족 소설이다. 도박 빚 때문에 아내가 가출한 뒤 혼자 된 아버지, 영화판을 쫓아 다니느라 집안을 돌보지 않는 영화감독 장남, 경제력없는 남편을 대신해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며느리, 은둔형 외톨이로 집에서만 지내는 둘째. 겉으론 크게 이상할 것 없는 이 가족의 일상은 그러나 아버지가 어느날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하면서 곪을 대로 곪은 환부를 드러낸다.

술에 만취해 귀가해선 시아버지에게 “제가 몸팔러 가지 진짜 노래방 도우미냐.”며 술주정하던 며느리는 남편이 올 때까지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며 시신을 그대로 방치한 채 노래방으로 출근한다. 만성변비에 시달리는 시동생은 “왜 하필 화장실에서 목을 맸냐.”고 투덜대며 시신옆에서 변기통과 씨름한다. 뒤늦게 집에 돌아온 장남의 반응도 가관이다. “불효자가 왔습니다.”고 울먹이던 장남은 이내 ‘감독이 없으면 현장 컨트롤이 안 된다.’는 어이없는 이유를 들어 장례를 미룬다. 이 와중에 며느리는 노래방에서 만난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인다. 썩은 내가 진동해도 시신을 치울 생각을 하지 않고, 환풍기 하나 고치지 않는 가족의 모습은 인륜과 천륜은 물론이고 모든 부정과 부패에 무뎌진 우리 사회를 거울처럼 비춘다. “왜 당신만 눈을 감고 사는 거야? 저기 잠들어 계시는 아버지,여기 지지리도 못난 당신 동생, 생활에 지쳐 폐인이 된 당신 마누라, 이런 건 찍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거야, 당신?” SF영화의 환상을 동경하는 남편을 향한 아내의 절규는 무감각해진 사회를 향한 박근형 작가의 매서운 질책에 다름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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