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정복근 '표류하는 너를 위하여'

clint 2016. 5. 1. 10:37

 

 

6.25 때부터 처절한 생존경쟁을 해온 할머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딸에게 부를 추구하고 공부만을 강요하는 아내. 무능한 남편, 이 같은 가족 분위기 속에서 시달리는 딸들이 등장하고 둘째 딸 입시를 앞두고 담임선생에게 수시로 봉투를 내미는 엄마, 취직을 시켜준 큰딸 선배와 관계를 맺어 아들까지 둔 아버지, 대학생이지만 재수시절 성폭행 당한 상처를 지닌 큰딸..... 이렇듯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되고 단란한 가족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서로에게 벽을 쌓고 혼자만이 고민하는 가족들을 느끼게 한다. 결국 명문대에 입학한 딸은 이 표류하는 가족의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게 된다.

 

 

 

 

작가는 작품구성을 한 가족 구성원들이 등장하여 저마다의 복잡한 문제를 펼쳐보이듯이 대화와 독백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그 해답은 관객들에게 던져준다특히 여류작가이기에 여성의 섬세한 내면의식을 꼼꼼히 성찰하는 모습이 보이고 진실한 대화의 단절로 이어져 현대, 중산층, 가족, 파멸의 순으로 파헤쳐진다. 가정과 가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물질만능과 이기주의가 팽배한 오늘의 우리 사회속에서 목적없이 표류하는 인물들을 통해 ‘과연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갗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3세대의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1세대는 할머니의 세대이다. 6. 25 때 이북에서 피난 온 이 일은 어린 자식들과 앞뒤를 살필 여유가 없는 불안한 생존 투쟁을 벌인다. 그녀의 투쟁은 큰딸이 미군 트럭에 치여 숨진 과정에서 미군 측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을 통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작은 영선이 전쟁 중에 다리 불구가 된 터에 가난의 아픔까지 홀로 이겨내어야 할 그녀의 모성은 자식들에게 더욱 치열한 투쟁을 요구한다. 딸에겐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어 불구상태를 보상받기 원하고, 아들 역시 공부 잘해서 출세하기를 요구한다. 결국 딸은 자신의 능력에 부치는 시험에서 연속 실패한 후, 이 시험에 대한 수고가 결국 자신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주범임을 알고 물에 투신자살하며, 아들은 <상식에 어긋나는 것은 범죄>라는 인식을 어머니에 의해 굴레로 뒤집어쓴 채 자신의 삶을 창조할 능력을 잃고 만다. 세월이 흘러 이 생존방법은 호랑이 같은 시모에게서 다시 며느리에게 변형된 모습으로 유습된다. 할머니 세대가 자식들에게 인간성을 억압하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를 강조했다면, 2세대인 며느리는 무능한 남편과의 원만치 못한 관계와 아들 없는 콤플렉스를 공부 잘하는 딸을 둠으로써 치유해 보려는 욕망과 올바른 삶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사는 삶을 유지하려는 욕망으로 <공부>를 강조한다. 이 며느리에게는 딸이 명문대에 입학만 한다면, 설령 그 딸이 폭행을 당하더라도 이를 감수할 용의도 또 좋은 내신 성적을 받기 위해서라면 <깡패가 생선 횟칼 휘두르듯 돈 봉투를 휘두를> 용의도 있다. 어머니(할머니)와 아내(며느리)의 투쟁욕 때문에 자신의 영역을 모두 내어준 남편(아들)은 별 의미 없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혼외관계 또는 히말라야 등반)을 꿈꾸고 있을 뿐이다. 3세대인 딸 성희와 성옥은 이런 무한 욕망에 시달리고 있는 동시대의 젊은이들이다. 삼수 끝에 명문대 법과대학을 수석으로 합격한 성희는 외견상 미래를 보장받은 주식시장의 <상종가>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엄청난 불안 - 이 작품의 토대가 되는 모티브는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이다. 이 불안은 어느 시대에나 어느 계층에나 나타난다고 작가는 보면서도 이 불안의 양태를 우리 시대의 중산층 가정 안에서 첨예화시킨다. 이 불안은 인간의 자원에서 개체간의 벽을 허무는 진정한 대화를 통해서 극복될 수 있을 터인데, 가정 안에 이 대화가 단절됨으로서 불안을 더욱 증폭된다. - 시달리고 있다. 그녀는 입시 준비 중 당한 폭행의 기억을 그녀의 잦은 사위가 암시하듯, 부단히 지워보려 애를 쓰고 있지만. 부질없는 노력이다. 그러던 차에 그녀는 고모인 죽은 영선의 일기를 접하면서 <서서히 사는 일은 뜻없이 힘겹고 목숨 갖은 건 다 불쌍하다.>는 염세주의에 빠져든다. 결국 이 염세주의는 그녀의 자살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의 글 - 정복근

늘 느끼는 일이지만 아이들은 한결같이 참 예쁘다. 열살이 채 못된 어린이들은 어려서 예쁘고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또 아직 자리잡히지 않은 모양의 뒤죽박죽 뒤설레이는 애매한 모습 때문에 사랑스럽고 귀엽다. 때로 보기만 해도 울화가 치미는 버릇없음, 존댓말 하나 반듯하게 쓰지 못하는 막 자란 태도가 느끼게 하는 역겨움 발랄과 어리광이 지아치서 천하고 상스럽게까지 보이는 모든 것들이 스스로 혼란에 빠져 어쩔줄 모르는 성장의 모습 으로 비쳐서 안스럽게 여겨진다. 그리고 그 풋된 젊음과 사나운 패기 때문에 마주 보기 겁 조차 나는 청소년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퍽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도덕이며 선악의 판단조차 유보하고 무조건 한번 남들처럼 잘 살아보자는 결심 아래 육칠십 년 대의 가파른 고개를 허위허위 넘어서 오늘에 이르렀지만 세태를 돌아보면 이것이 과연 우리가 목표했던 잘 사는 삶일까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좋은 옷 입히고 맛있는 것 먹이며 수십 가지 과외를 정신없이 시켜서 일류대학에 넣은 다음 명문거족의 자녀를 골라서 결혼시키면 결국 최고급의 행복을 안겨 주는거라고 믿고 살지만 대부분의 경우 누구도 사람의 심성이 부딪치는 갈등과 좌절과 성장기의 상처가 만드는 함정에 대해서는 배려하지 않는다. 결코 무심해서가 아니라 무선 치러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고 너무 바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일들은 좀 한가해지면 나중에 잘 챙겨보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아이들은 자라며 너무 바쁜 어른들이 환상에 빠져 만들어 놓은 험악하고 부도덕한 일상의 함정으로 빠져서 떠내려가기도 한다. 이제 우리가 경제적으로 우선 보릿고개는 넘긴 셈이라면 열악한 삶의 조건에 짓눌려 떠내려가려 하는 아이들의 소리 없는 비명에 대해서 한번 귀 기울여봐도 좋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잘 살기 위하여 성인들이 함부로 깨부수어 놓은 도덕률의 사금파리가 더이상 아이들을 다치게 하기 전에 우선 한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바라보기라도 하자는 마음에서 이 작품을 선택해주신 극단 대표와 연기자 스탭 여러분께 감사한다.

 

정복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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