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도 - 김나정
어느 복날이었다. 뚝배기에 담긴 삼계탕이 내 앞에 놓였다. 배를 불룩 내밀고 빨간 국물에서 반신 욕하는 몸통은 먹음직스러웠다. 문득, 잘려나간 발이 그려 쥐었던 흙과, 꺾여 나간 목이 둘러봤을 마지막 풍경이 떠올랐다. 하늘 빛깔과 구름 생김새. 칼날과 도마. 순순히 죽어줬을까? 내 밥통이 위액으로 찢긴 닭 살점을 천천히 녹이는 걸 상상했다. 한동안 삼계탕을 먹지 못했다. 유난스럽다. 왜 그러냐고 왜 그러지 못하냐고 묻는다. 할 말은 있는데, 납득시킬 자신이 없었다.
모든 삶의 문제는 주관식이다. 유난스러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차마, 먹어치울 수 없는 덩어리에 대해.
작가 프로필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201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여기서 먼가요?>,<상자 속 흡혈귀>, <누가 살던 빙>,<해뜨기 70분 전>
격려의 글 - 홍창수 멘토
내가 아는 김나정 작가는 욕심쟁이다. 소설에 욕심이 많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하고 소설집을 냈다. 평론에도 욕심이 많아 ‘문학동네’ 평론 부문 신인문학상 을 수상하면서 문학평론을 열심히 쓰고 있다 희곡에도 욕심이 많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하고 그해 겨울부터 왕성하게 장막극을 발표하고 있다. 김 작가는 소설, 평론, 희곡 갈래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자신의 창작을 시험하고 세계를 구축하려 애쓰고 있다. 엄밀히 말해 욕심이 없는 작가는 작가가 아니다. 한두 작품 발표하고 문단에서 유성처럼 사라지는 작가는 작가가 아니다. 또한 문학적 관습의 틀, 그것도 시나 소설처럼 어느 특정 갈래 안에 갇혀 길들여지고 살아가는 작가는 모험심이 부족한 없는 작가다. 진정한 작가라면 모름지기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그 세계를 직접 찾아 떠나며 그 세계 속에서 진지하게 탐구해야 한다. 경계 밖을 탐험하지 않는 작가는 소심한 정주 형(定住) 작가이다. 이런 면에서 김나정 작가는 경계를 가로지르며 사유와 창작을 겁 없이 해대는 용감한 작가다. 누군가 김나정 작가에게 "이제 시 부문만 신춘문예 당선하면 모든 부문을 석권하겠네요?”라고 농담을 흘렸을 때, 김나정 작가는 손사래 치며 그럴 일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김나정 작가는 이미 시를 쓰고 있었다. 아니, 갈래로서의 시가 아니라 시에서 요구하는 미학적 상징과 비유 등을 작품세계 안에 녹인다. 그만큼 김나정 작가는 문학적 감성이 풍부하고 문학과 비평에 대한 지식이 공고하며 창작에 대한 열정이 강렬하다. 나는 그의 신춘문예 당선 희곡 <여기서 먼가요?>를 읽었을 때 여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원에서 습작시간을 보낸 지 일이 년도 채 안된 시간에 그는 완성도 높은 희곡을 써서 멋지게 등단한 것이었다. 이번에 멘토로서 접한 그의 희곡 <조심! 동물들이>도 수작이다. 이 작품은 고아의 입양과 파양 문제를 다루었는데, 고아를 죽은 자식으로 착각하여 입양한 양어머니와 파양되지 않으려는 고아의 문제를 다루면서 타조의 상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좋은 극단과 만나 휘황한 빛을 발하리라. 어느 사석에서 김나정 작가는 당분간 희곡에 몰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반가운 일이다. 그의 문학적 감수성과 지식과 열정이 한데 모여 희곡 창작에 쏟는다면, 여러 문제작이 나올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독수리의 날개처럼 힘차게 비상하여 높이 올라 독수리의 매서운 눈으로 세상을 조감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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