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본가’는 1999년 발표된 이동순 시인의 시집 ‘가시연꽃’ 속 ‘아버님의 일기장’을 모티브로 한다. 빽빽한 일기장의 8할을 넘게 채우고 있는 글자 ‘종일본가’는 온종일 집에 있었다는 뜻으로, 나이 들어 홀로 지내며 고독 속에 머물었던 아버지를 상징한다. 작품 속 주인공인 아버지는 얼마 전 아들을 잃었다. 아들이 실족사로 요절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여자가 집을 찾아온다. 여자는 자신이 아들의 여자이고,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잔잔한 일상을 뒤흔들어 놓는다. 작품을 통해서, 20~40대 관객은 알 수 없었던 아버지의 인생을 만날 수 있고, 50~60대 관객은 찬란했던 과거를 반추하며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 된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것일지 모른다. 옆에 있는 게 당연한 사람들이 곁에서 사라진다는 것. 예전엔 보이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소중해진다는 것.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일상이 고맙게 느껴지는 것. 그렇게 아버지는 그저 그런 일상을 특별하게 살아가신다.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인생‘이란 굴레 안에서 비슷하게 살고 또 살아간다. 이 작품을 통해 20~40대 자식세대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아버지의 인생’을, 50~60대 부모님들은 ‘찬란했던 과거와 현재의 일상에서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작가 의도 - 이선희
우연히 듣게 된 한 시인의 일화 아버지의 부고 후 유품을 정리하며 발견한 일기장에는 아버지의 소소한 일상들이 담겨 있었다. 한 가지 알 수 없는 것은 매일, 매일의 일기 맨 윗줄을 거의 빠짐없이 채우고 있는 네 글자였다. ‘종.일.본.가’ 사자성어도 아니고 무엇도 아닌 그 네 글자의 뜻을, 시인은 처음에 알지 못했다. 어지러운 유품들 속에서 꼬박 일기장 한 권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을 때에야 시인은 알게 되었다 그 네 글자의 뜻. 종.일.본.가 - 종일 집을 지키다. 종일 집에 있다...
작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늘도 나의 아버지는 어항 앞에 앉아 좁은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 떼를 들여다본다. 다정다감하게 얘기를 걸어볼 법도 하건만, 현실의 나는 그렇지 못하다. 좁은 물속 물고기가 마치 집을 지키는 아버지 같아 나는 또 짜증을 내고 마는 것이다. 여느 가족들이 그렇듯 그 깊은 애정이 애틋함만큼 살갑게 표현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고 더 이상 사회에서 설 곳이 없는 우리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한때는 집안을 책임지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던 한 남자가 나이 들어 쇠약해지고 무능해지면서 집안을 지키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은 분명 너무나 당연하지만 슬픈 일이다. 시인의 아버지를 상상하며 집에 계신 나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어느 날 밤, 막걸리 한 잔에 얼큰히 취한 아버지는 말했다. 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당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 나를 짝사랑 할 것이라고 아버지의 운명은, 부모의 운명은 그렇게 정해진 것이라고 그 뿐이라고 나는 문득, 그런 아버지의 일상에 희망을 던져 넣고 싶었다. 나의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과정은 생각보다 아프고 저렸다.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데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작가 프로필
서울예술대학 극작과 졸업
극작 <보고 싶습니다> <2인극 행복> <엄마의 18번> <모두 잘 지냅니다> 외
각색 <강풀의 순정만화> <30분의 7> <고도를 기다리며> <모노-슬픔의 일곱 무대>
격려의 글 - 김태수
<종일본가>란 작품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홀로 나이 들어가시는 자기 아버지에 대한 일종의 비망록이라는 말을 이선희 작가는 시놉시스를 설명하면서 내게 그렇게 말했다 자주 들어왔던 사자성어도 아니고 뜻풀이도 모호했던 그 단어는 '종일 집에 있다.' 라는 뜻으로 어느 시인의 아버지 일기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는 얘길 차용한 제목이라 했다. 처음엔 엉터리 조어에서 오는 이질감이 있었으나 가만 말을 들어보니 뜻이 통하지 않음으로 더욱 서글픈 단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고 온 네 개의 시놉시스 중에서 이것을 발전시켜 보자며 골랐는데 이 극에는 인생을 관조하는 노년의 고독이 열은 안개처럼 깔려있어 눈엔 잘 뜨이진 않아도 습기로 인해 살갗의 촉감으로 느낄 수 있고 외롭다 말하지는 않아도 그것이 절절이 느껴지도록 써보자 말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이선희 작가를 만났을 때 사람들이 자기에게 대중작가라고 한다며 그런 평가에 다소 섭섭해 하는 얼굴을 했다. 그러고 보니 연기자로 활동하면서 겸하여 9년여 동안 여러 편의 작품을 썼다는 걸 알았으며 그 중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히트작품도 두어 편 끼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예술이 대중을 위한 것이거늘 그 말을 비아냥으로 듣지 말고 부러움으로 들으란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다만 연극적 가치가 있는 주제와 문학성을 겸비한다면 더 좋을 것이란 말을 빼놓진 않았다. 그동안 써온 작품의 경향을 보니 가족 얘기가 특히 많았으며, 그걸 나름의 희극적, 혹은 키치적 방법으로 풀어나가고 있었다. 단문 위주의 문장에 언어는 경쾌했으며 플롯은 리드미컬한 대신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이 단조롭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데자뷰가 자주 겹쳤다. 그래서 이번 작품엔 이야기의 끝을 최대한 감추고 사람들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도록 편하게 풀어나가되 나이 든 남자의 절절한 고독이 자기도 모르게 스며들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표현했다. 물론 이 작품은 여러 개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나이가 젊고 연륜이 아직은 부족하여 남자의, 그것도 나이가 든 남자의 고독과 아픔을 애절하게 표현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일본가'는 아버지를 통해 고독을 관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작품성향과 조금은 궤를 달리하고 있으며, 그럼으로 대중적 작가란 편견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계기를 가질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이선희 작가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이번 멘토와 멘티로의 만남을 기회로 다양한 주제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채로운 이야기로 작가적 상상력의 외연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다양한 독서와 깊이 있는 철학적 사고를 키워 인생의 깊이를 성찰하는 한국 연극의 독보적 존재로 성장해 가길 진심으로 소원한다.
이선희 작가. 연기자이기도 한 그녀는 이 작품 초연에서 미주 역으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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