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2년에 발표된 뒤렌마트(Friedrich Drenmatt)의 2막으로 이루어진 희곡이다. 1962년 취리히 연극극장에서 초연하였고 1980년 재판에 들어갔다. 현대 핵물리학의 피할 수 없는 위험이 주제이다. 시간, 장소, 줄거리의 통일을 요구하는 고전적 극원칙에 충실하였다. 내용은 스위스의 어느 정신병원에서 펼쳐진다. 이 병원의 여의사 마틸데 폰 잔드는 세 명의 정신병자인 핵물리학자들을 치료하였다. 스스로를 아인슈타인으로 자처하는 에르네스티, 스스로를 뉴턴으로 자처하는 보이틀러, 그리고 솔로몬 왕이 특기할 만한 발명을 명령한 뫼비우스가 그들이다. 이곳에서 세 번의 동일한 살인이 발생하자 경찰이 사건 해결에 착수하였다. 극의 반전은 2막 중간부분에서 시작되었다. 이 세 명의 어느 누구도 사실은 환자가 아니며 간호사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살해된 것이다. 뫼비우스는 자신의 천재적인 논문으로 정보요원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세상에 대한 책임감으로 정신병자로 자청해 정신병원으로 들어가자 정보요원 킬턴과 아이슬러도 함께 정신병원에 들어온 것이다. 정신병자 흉내를 내는 두 명의 정보요원들은 각자 다른 이데올로기로 핵방정식을 자신의 나라로 빼돌리고자 하였다. 뫼비우스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자신의 동료를 설득하고 핵방정식이 담긴 원고를 불태우지만 이미 여의사 마틸데 폰 잔드가 복사본을 만들어 놓은 후였다. 세상은 정신이상의 늙은 여의사의 손에 넘어가고 세 명의 핵물리학자들은 영원히 정신병원의 창살 안에 갇혔다. 스스로 선택한 정신이상이 이들의 삶의 방식이 된 것이다. 극은 탐정극 형식으로 시작하였지만 그로테스크한 반전으로 끝이 났다.
뒤렌마트는 이 작품을 통해 미친 세상에서 개인의 저항은 희망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물리학자 뫼비우스는 자기 이론의 파괴성을 인식하고 정신병원에 자신을 은폐시킨다. 이러한 그를 자신의 국가에 영입해 가기 위하여, 냉전시대의 양 진영 의 물리학자이자 첩보원인 뉴우튼과 아인슈타인도 역시 정신병자로 가장하여 정신병원에 잠입한다. 이 세 명의 정신병자로 가장한 물리학자들에게는 세 명의 개인 간호원이 있다. 이들 중 두 명은 자신의 정체가 사랑의 힘으로 드러난 것을 두려워한 물리학자들에 의해 각각 살해당한다. 여기까지는 극의 이전에 진행되었던 상황이고, 이제 진행되는 극에서는 뫼비우스가 같은 이유(자신이 정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로 자신의 간호원이었던 모니카를 살해하게 된다. 연속되는 살해에 이들은 외부세계와 단절된다. 첩보원들은 자신들이 뫼비우스를 데리고 탈출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신분을 뫼비우스에게 밝힌다. 그러나 뫼비우스는 자신들, 즉 물리학자들이 세상에 공개되어서는 안될 존재라고 생각하고 폐쇄된 정신병원에 남기를 권유한다. 첩보원들은 결국 잔류하는데 동의하게 되고 평화의 술잔을 나누게 된다. 여기에서 마지막 반전이 이루어진다. 즉, 뫼비우스가 순수한 학문적 열망으로 정신병원에서 정리한 그의 이론체계가 여의사에게 유출되고 여의사는 이것을 신탁이라고 여기고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다. 결국 이 작품은 뫼비우스의 절망으로 끝나게 된다.

# 정치적인 상황과 인간의 심리를 하나로 엮어내는 재능

제 2차 세계대전이 핵무기의 출현으로 인해 종전을 맞이하나 한편으로는 인류 역사에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는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그것은 뒤렌마트가<물리학자들>을 완성하였던 1960년대를 시작으로 하여 나타난 달 탐사를 비롯한 우주경쟁으로 인한 가공할 만한 과학의 발전을 의미하고 있다. 엄청난 과학의 발전은, 대량살육을 가능하게 하는 무기, 그리고 핵폭탄의 가공할 만한 위험을 안겨주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넘쳐흐르는 정보 및 지식은 새로운 출발점을 열어주고 있으며 지식분야는 더욱 분화되어가고 있다.
현대 과학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위상감각을 잃어버릴 정도로 과학문명의 발전 속도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가속화 되어가고 있다. 이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과학시대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과학자, 즉 지식인들의 현실도피인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인들의 역할은 과거보다 현대에 이르러 더 큰 영향을 사회 전체에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지식인의 역할 자체뿐만 아니라 윤리성의 결핍에 대한 우려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현실로 표출되고 있다.<물리학자들>에서 그와 같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물리학자들은 현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굴복은 우리를 번영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파멸시킨다.
또한 과학자들이 만든 이론들이 인류에 의해서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윤리성의 결핍을 뒤렌마트는 작품 속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나는 이 이론을 수학 언어로 기록해놓았고 그리고 많은 공식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면 기술자들이 와서 단지 그들은 공식들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마치 뚜쟁이가 창녀을 다루듯이 전기를 다룬다.

1. 뫼비우스
지적이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뫼비우스는 새로운 과학시대를 예고하고 있는 시대적인 흐름과 새로운 것에 대한 사회적인 욕구나 기대로부터 지식인의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에서의 명예와 기업에서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오직 그의 학설을 철회하기 위하여 정신병원에 들어온 뫼비우스는 그를 사랑했던 간호원을 살해하며 또한 그의 가족까지도 버려가면서 그의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
뫼비우스는 아직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학설의 철회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학자로서 인류에 대해 책임을 의식하고 있는 뫼비우스는 다른 두 사람의 물리학자와는 달리 학설철회라는 적극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일면개인의 영웅적인 행위를 보여준다.
우리들의 학문은 끔찍하게 되었고, 우리들의 연구는 위험하게 되고, 우리들의 지식은 치명적으로 되어버렸소. 우리는 현실에 굴복하는 길 밖에 없소. 인류는 우리 때문에 파멸하오. 우리는 학설을 철회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학문을 철회했소. 다른 해결책이란 없소.
뫼비우스는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바로 영웅적인 행위는 아니였다. 오히려 작품<물리학자들>에서 뫼비우스의 새로운 학설을 탐지하고 정신병원에 들어온 물리학자이면서 첩보원인 아이슬러(극중에서 아니슈타인)와 킬톤(극중에서는 뉴턴)이 그에게 설득당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뫼비우스를 용감한 인물로 부가시키고 있다.
뫼비우스는 “우주비행사에게 보내는 솔로몬의 노래”에서 솔로몬에 의해서 주어진 인간의 지식욕과 정복욕을 비판하면서 현대 과학문명이 가져다줄 인류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우주 속으로 도망치네. 달의 황무지로 향하여. 많은 사람들이 달의 먼지에 파뭍혀 말없이 사라져가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속에 삶아져서 증발해버렸네. 수성의 납증기 속에서...
솔로몬 왕의 지혜에 대한 저주에 가득 찬 뫼비우스의 노래는 오늘날의 과학문명의 발달에 대한 경고하고 있다. 솔로몬의 지혜는 오늘날 더 이상 찬미할 수 없게 되었으며 오히려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는 지식욕과 정복욕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솔로몬 왕입니다. 나는 가련한 솔로몬 왕입니다. 옛날 어느 댄가 나는 대단히 부유했고 지혜로웠으며 경건하였습니다. 나의 힘 앞에서는 강한 자들도 몸을 떨었습니다. 나는 평화와 정의의 군주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신을 경배하지 않았을 때 나의 지혜는 나의 제국을 파괴했습니다....
솔로몬왕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뫼비우스는 비극적인 과학자를 상징하고 있으며 동시에 인류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더욱이 현대의 특징인 과학문명의 발단은 인간인지의 한계에 도전하는 모험을 시도하였으며 부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인지로는 도달할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을 지식인들은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인간의 인지로 발견된 수 많은 과학기술은 오히려 인류에게 ‘괴물’이 되어 인간은 스스로가 만든 학설들을 스스로 철회해야 하는 위기의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2. 아인슈타인•뉴턴
Ⅰ뉴턴
작품속에서 뫼비우스와는 다른 유형의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과 뉴턴은 정신병환자로 가장한 첩보원으로, 뫼비우스의 논문을 탈취하기 위하여 정신병원에 들어왔다. 뉴턴은 ‘상대성 원리’의 창시자 이며 본명은 킬톤으로 그의 비밀을 누치챈 간호원 도르테아를 살해한다. 그는 오로지 학문의 발전만을 생각하며 뫼비우스와 아인슈타인과는 달리 어떠한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무의미해요. 학문의 자유가 문제지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소. 우리가 선구자적인 일을 해야 하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소. 우리가 인류를 위해서 닦아놓은 길을 그들이 가든지 말든지 그것은 그들의 일이지 우리들의 일이 아니오.
그러나 뉴턴은 어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하지 않지만 현대의 과학문명의 오용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난한다.
오늘날에는 어떤 바보도 전구를 켤 수 있거나 또는 원자탄을 터뜨릴 수 있습니다.
그는 과학문명의 오용과 지식인의 책임을 엄격하게 구별하고 있다. 위의 대화에서도 나왔듯이 그것이 사용하는 사람들의 책임이지 물리학자인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신은 전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전기 켜는 것을 거부하지 않소? 여기서는 당신이 바로 범인이요, 리하르트
Ⅱ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본명이 아이슬러로 ‘아이슬러효과’를 발명했다. 그는 뉴턴과 마찬가지로 정신병 환자로 가장한 뫼비우스의 논문을 탈취하려 한다. 그 역시 그의 비밀을 눈치 챈 간호원을 살해한다. 그는 뫼비우스와 마찬가지로 학자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뉴턴과 반대로 과학문명의 오용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나 역시 우리는 선구자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오. 그러나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인류에게 강력한 힘의 수단을 제공하고 있소. 그러기에 우리는 조건을 내세울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물리학자이기 떄문에 권력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우리의 학문을 유리하게 사용하도록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아니슈타인은 책임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그는 책임이라는 구실 아래 오히려 인류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을 수 있는, 즉 학문을 상품으로 어디든지 팔어넘길 수 있다는 식이다. 그는, 지식인의 양심을 저버리고 있다.
3. 여의사
여의사의 정체가, 솔로몬 왕과의 관련 속에서 물리학자들의 비밀을 알고 세계를 장악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드러난다. 뫼비우스에게 나타났던 가련하고 냄새를 피우는 솔로몬 왕은 이제 그녀 앞에 “권력의 화신”으로 나타나고 있다. 솔로몬 왕이 뫼비우스에게는 지식욕과 정복욕을 가져다준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반대로 지식욕과 정복욕을 갈구하는 인간에게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솔로몬 왕의 출현은 뫼비우스로부터 탈취한 지식을 공공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고 있다. 즉 솔로몬의 지혜는 특정한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고 모든 인루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계속 발전되어야 한다고 여의사는 말한다.
여의사 : 그러나 뫼비우스는 그를(솔로몬 왕) 배반했어요. 그는 숨기지 말아야 할 것을 숨기려고 하였어요. 그에게 공개된 것은 비밀이 아니에요. 한번 생각된 것은 언젠가는 생각됩니다. 지금 아니면 미래에 말이에요. 솔로몬이 발견했던 것은 언젠가는 다른 사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된 것은 언젠가 어는 누구에 의해서 발견 된다는 극중의 여의사의 대사는 뒤렌마트의 주장을 작품 속에서 효과적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여의사에 의해 뫼비우스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는 사건의 대반전은 우연을 통한 인류역사의 비극적인 파멸을 암시하고 있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전환은 예상할 수 없다. 그것은 우연에 의해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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