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게오르그 뷔히너 '레옹세와 레나'

clint 2016. 1. 9. 09:37

 

 

 

≪레온세와 레나(Leonce und Lena, 1836)≫에 대해서
민간 전승 설화를 극화한 ≪레온세와 레나≫는 동화와 같은 류의 코메디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정치적인 함축성을 띠고 있다. 정략결혼에 의해 한 번도 보지 못한 상대와 결혼을 해야 하는 포포(Popo)왕국의 염세주의자 레온세 황태자와 낙관주의자인 피피(Pipi)왕국의 레나 공주는 각자의 왕국을 도망쳐 나와 우연히 같은 여관에 묵으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서로의 신분을 모르는 채 결혼하게 된다. 이들은 구제도를 몰아내고 그들의 왕국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낭만적인 주제는 다소 거친 시에 의해 약화되었고 이 작품에서 민간 설화의 틀을 빌려 정치적 요소를 도입하였던 것이다. 이 극을 구상함에 있어서 뷔흐너는 세익스피어와 Clemens Brentano, 그리고 Alfred de Musset의 영향을 받았지만 정치적인 명제만은 뷔흐너 자신의 견해이다.

 

 

 

레옹세와 레나는 19세기 초를 지배한 낭만적 희극의 전통 속에 자리하면서도 낭만적 희극과 작별하고 현대성을 선취한 3막의 짜임새를 갖춘 희극이다. 작품은 포포 왕국의 통치자 페터 왕의 아들 레옹세 왕자와 피피 왕국의 공주 레나의 결혼식을 다루고 있다.

 

1막은 왕자와 공주가 각기 부모들에 의해 본 적도 없는 상대방과의 약혼이 강요된 상황을 짐작케 한다. 결혼식을 앞두고 페터 왕은 아들 레옹세에게 결혼식과 더불어 왕권을 물려주겠다고 천명한다.

 

 2막은 다음날 약혼자인 레나 공주가 피피 왕국에 와서 결혼식을 성대하게 올릴 계획임을 알린다. 궁정에서 결혼식 준비를 하는 동안 왕자 레옹세는 시중드는 발레리오와 함께 궁정에서 도주한다. 똑같은 이유로 결혼식을 올릴 것을 강요받은 레나 공주가 가정교사를 동반하고 도주하다 우연히 같은 여관에 묵게된다. 둘은 만나자마자 서로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곧 사랑에 빠진다. 사랑하는 이상형을 찾았다고 믿고 행복에 취해, 레옹세는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발레리오의 만류로 레옹세의 자살은 미수에 그친다.

 

3막은 왕자와 공주의 결혼식을 다룬다. 사라진 왕자를 찾지 못해 결혼식이 성사가 안될까 봐 걱정하는 궁정에 발레리오의 기발한 착상은 적중하게 맞아떨어진다. 왕자와 공주는 주인공이 부재한 가운데 초상화로라도 신랑신부의 역할을 대체하자는 페터왕의 제안이 받아들여지고, 그 때 가면을 쓰고 등장한 왕자와 공주는 피피 왕국의 결혼식의 주인공이 된다. 놀란 페터 왕의 허락을 얻어낸 레옹세와 레나는 결국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린다는 해피 앤딩의 줄거리다

 

 

 

Georg Büchner, 1813-1837)
최근에 이르러 초현실주의로부터 정치적 사실주의, 도큐멘터리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을 포용한 극작가의 전형으로서 새로이 인식되고 있는 뷔흐너는 극을 통해 끊임없이 사회와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숙명론적 인식과 “인간 개개인은 파도의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신의 관점을 구체화시킬 표현 방식을 추구했다. 뷔흐너의 드라마는 모두가 대체로 인간은 자신의 환경과 사회적 지위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Jakob Lenz의 사회철학(social philosophy)과 우주적 결정론(cosmological determinism)을 구현하고 있다. 뷔흐너는 결정론적인 견해를 가지고 역사를 관찰하였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사건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고 동시에 인간에게 약간의 선택의 자유를 주는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과정을 그는 주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주인공들은 자기들이 규정하지 않은 운명에 따르도록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연출가의 새로운 평가와 함께 뷔흐너의 작품은 발전하게 되었으며, 뷔흐너 극의 주제의 초시간성(超時間性)과 이를 다루는 방식은 정치적인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접근하느냐 하는 오래된 숙제가 풀리는 듯했다.


브레히트 역시 뷔흐너의 극에 큰 영향을 받았고 사극의 모델을 뷔흐너의 극에서 찾았다. 즉 당통과 보이체크로 인해 사극에 필요한 서술적 요소들이 꼭 잘 구성된 플롯에만 맞는 것이 아니며 이것은 먼저 한 사람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그 다음에 변증법적으로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서술될 수도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이 밖에도 뷔흐너가 브레히트에게 준 영향은 무대 위에서 민요를 사용한 점인데, 이는 브레히트 극에서 코러스에 의한 직접적인 논평 구실을 할뿐만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극의 사실적인 분위기에 몰입하는 것을 막고 거리감을 취하게 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또한 뷔흐너 극에서 이름 없는 인물들이 등장해 극에 사회적인 배경을 형성하곤 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브레히트도 등장인물에게 사투리를 쓰게 해 관객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익스피어와 엘리자베스조 연극 시대의 무대 기법에 기울인 뷔흐너의 관심은 브레히트로 하여금 세익스피어극의 연구에 몰두하도록 했으며 이것은 백 명의 표현주의자들의 실험보다도 가치 있는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