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베르톨트 브레히트 작 '코카서스의 백묵원 '

clint 2016. 1. 6. 11:09

 

 

 


「코카서스의 백묵원」의 무대는 소련연방이다. 이 희곡의 외적인 사건은 제 2차대전 후 소비에트 영토에 귀속된 코카서스의 한 골짜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유권 분쟁이다. 갈린스크 염소사육 집단농장과 로자룩셈부르크 과일재배 집단농장은 계곡의 소유권이 자기 쪽에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골짜기의 농지를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쪽에 소유권을 인정함으로써 해결을 본다. 그 뒤 집단농장 주민들 스스로가 작품의 실질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는<백묵원 재판>을 공연한다.
코카서스의 대군주가 반란으로 실각하자 그의 밑에 있는 총독들이 처형된다. G.아바쉬빌리 총독도 그 중의 하나인데, 그의 부인은 그런 일이 벌어지자 자식까지 팽개치고 허둥지둥 도망친다. 버려진 젖먹이 아이를 바라보고 있던 시녀 그루셰는 아이를 동정하여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를 안고 도주해 자신의 아이와 다름없이 키운다. 그루쉐는 아이를 수색하는 무장기병을 피해 도망다니며 오빠의 집에 기진맥진한 채 도착한다. 그녀는 오빠가 자신을 반겨줄 것을 기대하지만 오빠 라브렌티는 올케의 눈치를 보며 살고 있는 처지이다. 결국 그녀는 미헬 때문에 올케의 눈총을 받으며 추운 겨울을 창고에서 보낸다. 이듬해 봄에 미헬의 호적상 아버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이미 시몬과 약혼했음에도 그가 전쟁에 참여하고 있어 병에 걸려 곧 죽게 되리라 믿고 있던 농부 유숩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죽으리라 믿었던 유숩은 일어난다. 그 동안 그는 징집을 피하기 위해 꾀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속은 그루쉐의 입장은 더욱 곤경에 빠지게 되는데 게다가 전쟁에 나갔던 약혼자 시몬이 돌아와 그루쉐가 결혼했으며 아이까지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나 발길을 돌려버린다.
그런데 도망갔던 총독 부인은 자식의 많은 유산 때문에 다시 돌아와 아이를 찾으려 한다. 결국 이 아이를 두고 그루쉐와 총독 부인간에 친권소송이 벌어지게 된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재판관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던 아쯔닥 앞에 소환되어 재판을 받는다.
두 여자의 진술을 듣던 아쯔닥은 바닥에 백묵원을 그려놓고 아이를 그 속에 넣어 두 어머니에게 당기도록 한다. 첫 번째 시도에서 아이는 총독부인 쪽으로 끌려간다. 아쯔닥은 그루쉐가 잡아당기지 않았음을 알아차린다. 그녀는 아이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두 번째 시도에서도 그루쉐는 아이를 놓아버린다.
두 번의 백묵원 시험에서 총독부인은 아쯔닥의 말대로 아이를 자기쪽으로 끌어당기지만 아이는 그루쉐에게 넘겨진다. 아이를 위한 행위를 몸소 실천한 그루쉐가 진정한 아이의 어머니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총독부인에게는 도시를 떠날 것을 명령하고 총독의 재산은 시의 소유로 반입시켜 아이들을 위한 동산을 만드는데 사용하게 한다. 또한 아쯔닥은 그루쉐와 농부간의 이혼 재판까지 처리하고 퇴장한다.

 

 

 

백묵원 이야기는「사천의 선인 Der gute Mensch von Sezuan」,「억척어멈과 그녀의 자식들 Mutter Corage und ihre Kinder」등에서 하나의 모티브로써 중요하게 다루어졌지만 작품의 중심에서 구체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 이유는 물론 브레히트가 망명생활 중이었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등장인물의 성격이 그때 그때의 시대상황에 따라 창의적으로 변해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창작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파악된다.
「코카서스의 백묵원」이 완성되기까지 그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해 볼 수 있다.
1.「오덴제의 백묵원 Der Odenseer Kreidekreis」덴마크 퓌넨. 중국의 백묵원 모 티브를 덴마크의 역사적인 소재 (1086년 성 크누트의 살해사건)와 연관지어 만 든 단막극.
2.「아우구스부르크의 백묵원 Der Augsburger Kreidekreis」스웨덴 리당과 역사 적으로 신, 구교들의 큰 싸움이 벌어졌던 30년 전쟁을 배경으로 한 산문.
3.「코카서스의 백묵원 (1판)」미국 뉴욕. 이전 작품에서의 종교적 대립을 정치적 사회적 대립으로 전환시켜 브로드웨이 무대공연을 위해 다시 만든 희곡. 4.「코카서스의 백묵원 (2판)」미국 뉴욕. 제 1판을 완성한 직후 수정보완한 희곡.
「오덴제의 백묵원」에서 두드러 진 것은 재판관의 면모를 현명하거나 청렴하지도 않은 인물로 내세워 익살스러움을 한층 부각한 점이다. 그리고 아이의 생모에게 소유권을 인정하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양모에게 소유권을 인정함으로써 전통적인 사고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아우구스부르크의 백묵원」에서 역사적 큰 전쟁을 무대전면에 내세운 것은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 - 제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 에 대하여 전쟁의 주요 당사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제공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산문은 무엇보다도 사건진행과 그 해결, 주요 인물들의 형상화에 있어서 이후에 완성되는 희곡의 뚜렷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하녀 안나는 그루쉐의 모델이 되고 있으며, 재판관 돌링거 또한 아쯔닥의 모델로 간주된다. 브레히트는「코카서스의 백묵원 (1판)」에서 나치군대가 패하여 물러난 코카서스 지방을 새로운 역사적 힘의 상징으로 나타낸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이동에 따라 서 말의 설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제 1판에서 브레히트는 재판관 아쯔닥의 모습을 구체화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아쯔닥의 판결이 “사회적 방식”의 기초가 결여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는 아쯔닥이 타락하고 무정부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는 “…옛 지배자의 퇴장으로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게 아니라 새 지배자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사실”에 대한 환멸 때문이라고 결정짓는다. 그러므로 아쯔닥의 특이하고 우스꽝스러운 언행의 근본에는 사회상황에 대한 직, 간접적인 입장이 자리잡고 있다.
이와 함께 그루쉐도 선한 면모를 처음부터 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힘겨운 사건을 거치면서 발전해 나가도록 설정했다. 이러한 점은 그루쉐가 ‘신성하게’ 보여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지혜롭기보다는 자신의 출신 성분에 걸맞게 재치와 눈썰미를 갖고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
「코카서스의 백묵원 (2판)」은 브레히트가 전쟁이후의 사회구조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가운데 수정 보완되었다. 하녀 그루쉐는 어리석고 모순에 찬 인물로부터 자립적 인물로 발전한다. 특히 수정작업에 영향을 끼친 리온 포이히트방어는 이전 작품에서 그루쉐에게서 보이는 성스런 특성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따라서 브레히트는 그루쉐의 모순성을 부각시키면서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나 아쯔닥의 본질은 특별한 첨삭을 하지 않은 채 제 1판의 기본 구성을 따랐다.
제 2판에서 특징적인 것은 서막과 직접적인 연결을 맺기 위한 종막이 부가된 점이다. 종막은 그루쉐, 아쯔닥 이야기의 단순한 줄거리 비교를 부인하는 가운데 집단농장 사람들이 소송의 내용을 재확인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코카서스의 백묵원」의 형식적 특징은 등장인물이 직접 사건을 진행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수와 악사들을 화자로 내세워 관객이 극 중 인물의 행위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문제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옛날 이야기로 치부될 수도 있는 백묵원 이야기가 서막과 내적인 연관 속에서 현실적 의미를 갖는다.
자식에 대한 친모와 양모의 소유권 문제가 발생할 때 일반적인 관행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말하는 부모와 자식간의 일반적인 속설을 이 작품에서 뒤집어 보여준다. 아이의 양모인 하녀가 친모인 총독부인을 상대로 재판에서 승리하고, 마을 서기 출신이 재판관이 되어 민중을 돕는 마치 동화같은 이야기가 실제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무엇보다도 두 인물의 변화와 생산적인 발전에 기인한다.
인물의 변화와 생산적인 발전은 무엇보다도 모순성 Die Wierspru"chlichkeit을 기초로 한다. 이 모순성은 절대적인 대립에 아니라 동일한 사물이나 사람안에 내재하는 두 요소, 즉 기존에 있는 것에 반대되는 새로운 또는 이질적인 요소를 말한다. 이와 같은 모순성의 개념은「코카서스의 백묵원」에서도 그루쉐와 아쯔닥을 통해 잘 나타난다. 하녀 그루쉐가 총독의 아들 미헬을 구해내고 기르는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성스러운 어머니상이 아니라 어리석고 아둔한 여인상이다. 또한 재판관 아쯔닥은 공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릇되기고 한 모순적인 태도를 지닌 인물로 보여진다.
브레히트는 이러한 모순성이 바로 세계의 변화가능성을 위한 근거가 되는 한편, 이를 인식하고 비판하며 변화시키는데서 인산의 생산성이 얻어진다고 주장한다. 두 인물은 사회적으로 각성하지 못한 단순한 인물들이지만 차츰 현실을 인식하면서 변화되어 근본적인 의식의 전환을 이루는 생산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따라서 서막이나 백묵원 재판의 극적인 아야기보다도 두 인물의 변화와 생산적인 발전이 중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가 솔로몬 처럼 현명한 판관의 이야기를 담은 원나라의 《석필이야기》의 번역본을 1944년에 번안한 작품이다. 브레히트의 가장 시적이며 서사적 요소가 많은 작품으로 극중극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구성은 서막과 5막이었는데 브레히트가 서막을 《계곡을 둘러싼 분쟁》이라는 제목으로 제1막에 통합하여 6막으로 재구성하였다. 세 가지 이야기, 즉 구성의 이야기, 그루셰의 이야기, 재판관 아츠다크의 이야기를 다룬다.
계곡에서 양을 치고 살다가 독일군의 침입으로 이주한 갈린스크 농장 주민들과 그사이 계곡에 이주하여 개발 계획을 세운다.

로자 룩셈부르크 농장 주민들이 독일군이 패퇴한 뒤 계곡의 소유권 다툼을 벌인다. 소유권은 사회적 관점에서 계곡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쪽으로 넘어가는데 이것은 백묵원의 재판에서 누가 아이에게 옳은 어머니인가가 사회적 관점에서 판결이 내려지는 것과 상통한다. 하녀 그루셰 이야기와 몰락한 지성인인 재판관 아츠다크의 이야기는 동시에 일어나는데 작품의 해설자이며 연출가인 가수에 의해 전개된다. 내란이 일어나 총독 아바시빌리가 반도들에 의해 참수(斬首)당한다. 총독 부인은 끝까지 비싼 물건들을 챙기다가 아들 미하엘을 버리고 도주한다. 미하엘을 떠맡은 그루셰는 험난한 피난생활을 시작한다. 그녀는 도중에 아이를 농가에 놓아두고 발길을 돌리기도 하나 결국 아이를 양자로 맞이하고 아이에게 호적상의 아버지를 만들어주려고 임종 직전의 병자와 형식적으로 결혼한다. 어느 날 참전했던 약혼자 지몬이 그루셰를 찾아왔다가 오해하며 돌아간다. 그때 철갑기병들이 법원의 영장을 가져와서 총독 부인이 돌려달라고 요구한 미하엘을 데려간다. 5막에서 다시 반란의 시점으로 되돌아간다. 주정뱅이 아쯔닥은 재판관으로 선임되어 부자에게 뇌물을 받지만 민중의 편에서 판결을 내린다. 6막에서 아쯔닥은 그루셰와 아이의 상속 재산에 관심을 있는 전총독 부인을 놓고 하얀 동그라미 백묵의 재판을 벌인다. 그는 미하엘을 동그라미 안에 세워 두 여인에게 잡아당기도록 명하는데 그루셰는 아이의 고통을 생각하여 손을 놓는다. 아쯔닥은 그루셰를 진정한 어머니로 판결을 내린다.

 

 

 

1948년에 미국에서 초연되었고 독일에서는1954년에 브레히트 연출로 베를린앙상블이 공연하였다.
 1990년 이후 브레히트가 국내에 많이 소개되면서 특히 이 작품은 가장 많이 공연 될 정도로 연극적이며 정의라는 교훈을 주는 작품으로 대학극에도 자주 공연된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원본대로 공연하면 3시간이 넘지만 가수와 악사들을 적절히 광대처럼 활용하여 주요 줄거리로 구성하면 좋을 듯하다. 난 몇차례의 다른 공연을 보며 각 공연마다의 특징을 볼수 있었고 이래저래 공연이 되도 작품이 가지고 있는 포턴셜이 힘이 있어 좋은 공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