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병원 '무언가(無言歌)'

clint 2025. 2. 21. 10:00

 

 

 

1884년 12월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나고 김옥균은 일본 우편선을 타고 망명한다.
그 김옥균과 10년동안 내통하여 개화당을 도왔던 민비의 무수리 고대수! 
그녀는 자신의 한 일에 후회않는 女子이며 꿋꿋한 정신의 소유자였다.
태어날 때부터 불행을 업은 여자로 태어난 딸의 모습을 보고 죽기를 바랬던 
아비, 그에 대항한 어미로 인해 생존한 여자이다.
7척거구의 기형의 몸이었지만 모습만 다를 뿐 어느 소녀와도 다름없는
고대수는 나라의 액을 막는다고 궁중으로 뽑혀 들어간다. 민비의 무수리.
그리하여 그는 金玉均과 밀통한 죄로 인하여 석살(石殺)刑을 받고 
광화문에서 수구문까지 맨발로 끌려간다. 
고대수가 개화당의 金玉均을 믿었던 것은 단지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받은 
인정, 자신이 인간으로서 구원되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나 그에게 되돌려진 것은 민중들의 가혹한 외침소리 "왜놈의 앞잡이!"라는 

욕성뿐이었다. 그녀가 바라고 김옥균이 바랬던 것은 민중의 힘이었다.
얻어 터지고 돌에 맞고 꼬집히고 마침내 수구문에 도착한 고대수는 쓰러진다. 
그 위에 쌓이는 백성들의 돌맹이, 고함소리 "왜놈의 앞잡이!!" 
불행한 女子 고대수가 바랬던 것은 오로지 人間으로서의 구원뿐이었다.
그러나 그 구원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원받지 못하고 民衆의 
돌더미속으로 묻혀버린 무언가(無言歌)로 우리의 귀에 울린다.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우리의 머리 속에 거의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여성들의 활동이 시대적으로 억압되었던 그 시절에, 궁녀의 신분으로 사내대장부들의 틈에 끼어 혁명의 꿈을 꾼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이 바로 고대수이다. 고대수는 7척이나 되는 키, 지금으로 따지면 2미터 10센티가 되는 키에 웬만한 남자 대여섯 명은 거뜬히 들어올리는 거구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명인 이우석 대신「수호지」에 나오는 여장부의 이름을 따서 고대수라 불렀다. 이런 남다른 신체조건 탓에 고대수는 서른일곱이란 늦은 나이로 무수리로 입궁하게 되어 민비를 보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이다. 당시 사회에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심했던지라 외모에서 풍기는 강한 인상으로 고대수는 남자들에게 외면받기 일쑤였다. 그렇게 외로이 지내던 고대수에게 어떤 청년 하나가 새 정권을 만들자는 제안을 해왔다. 바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당의 김옥균이였던 것이다. 김옥균은 고종의 동정을 알기위해 고종의 측근 궁녀가 필요했고 그의 동조자로서 고대수가 제격이였다. 고대수는 계급을 타파하며 민권을 신장하도록 하고 국정을 쇄신하겠다는 개화당의 뚜렷한 명분을 듣고 기꺼이 이 혁명에 가담한다. 듬직하게 민비를 보살폈던 고대수는 민비의 신임을 얻기 충분하였고 항상 민비 곁에서 궁내의 기밀과 보수파의 움직임을 살펴 수시로 개화당인사들에게 정보를 알리곤 했다.  
그리고 바로 그날이 왔다. 우정국 개설을 축하하기 위한 그날 별궁에 불을 지르는 신호로 행동을 개시하는 고대수의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고대수는 대나무 대롱에 넣은 폭약을 밖에서 불이 나는 신호를 보고 터뜨렸다. 통명전에서 터져나오는 거대한 폭발음이 울리자 고종과 민비는 두려움에 떨며 황급히 창덕궁을 떠나게 됐다. 이렇게 하여 김옥균은 고종과 민비를 경우궁으로 옮기는데 성공하여 그들이 머무는 동안 각종 혁명공약을 공포했다. 그러나 곧 고종과 민비가 창덕궁으로 돌아와 혁명이 삼일천하로 끝이 났지만 유교 사상이 짙었던 그 시절에는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꺼려했기에 여자가 그것도 궁녀의 신분으로 혁명을 계획하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혁명의 실패로 인해 개화당인사들은 일본으로 망명의 길을 떠났으며, 미처 피신하지 못했던 인사들은 모조리 체포되어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중에 고대수도 포함돼 있었다. 다른 죄수들과 함께 공개처형을 당하게 된 고대수는 여자라는 신분으로 양반집 자제들과 혁명운동에 가담한 것에 대해 더욱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샀고 돌팔매질로 처참히 죽음을 맞이했다. 결국 사회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내린 혁명을 위한 결단과 그녀의 용기도 함께 민중들에게 철저하게 짓밟혀버린 것이다.  

 



작가의 글 - 이병원
우리 역사가 증명해주지 못한, 역사속에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진 불행한 여자, 절절한 비극의 여자인 고대수를 끌어내어 보았다. 역사를 부정하지 않고 가깝게 접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無言歌>는 그 역사를 말하고자 하지 않았다. 역사의 흐름이 살해한 한 인간, 한 인간의 형태를 만들고자 끌과 망치를 과감히 잡았음에도 주인공 고대수의 비극적인 태어남과 죽음이 완전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유진 오닐은 말한다. "현대의 극작가는 이 시대의 병의 근원을 느끼는 대로 파헤치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 글은 날카로운 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리석은 사람의 어리석은 심장을 찌르고, 독선자의 독선을 잘라내야 하며 혼자이고 싶은 사람의 고독도 잘라야 한다. 어느 날 밤 늦어 돌아오던 길, 유진 오닐의 말이 생각났으며 평탄한 길이 강물처럼 출렁이고 바람 속에 몸을 던지며 걸어올 때 눈앞을 지나가던 맑은 영혼, 겨울의 맑고 빛나고 강강한 공기 속을 가로지르고 세로지르던 나의 영혼은 한 점에서 만나 안주했으며 숨어있던 세심한 양심까지 찾아내었다. 결국 영혼의 정착이나 양심이나 날카로운 칼, 다시 쓸 좋은 작품을 위해 애써 찾아낸 것인지도 모른다. <無言歌>의 주인공 고대수가 김옥균을 만난 것은 필연이며 그녀의 죽음은 침묵이고 그 침묵은 구원이다. 그리고 고대수와 나와의 만남도 필연이고 고대수는 나의 구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다시 몇명의 고대수와 같은 여자를 작품으 로 만날 것이다. 많은 사람의 배려에 할 수 있는 보답은 결심한 대로 작품을 쓸 의지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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