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시몬 보봐르 소설 정복근 각색 '위기의 여자'

clint 2025. 2. 21. 21:11

 

 

 

인생을 사랑과 결혼에 걸고 그 결혼에 성공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모니크는 
어느 날 밤 남편 모리스에게 애인이 있다는 고백을 통해 알게 된다.
고민에 빠진 그녀는 이제 지금까지의 "나"를 두 가지 각도에서 바라본다.
자신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또 한편으로는 남의 눈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찿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타인들은 모두가 제 나름대로의 

의식에 맞추어 제멋대로 그녀을 해석한다. 그녀는 그들에게서 위안을 찾지 못한다.
결국 오랜 회의와 절망의 수렁 속에서 다시 어두운 현실로 돌아온다.
구원은 누구에게도 청할 수 있다. 문은 자기 스스로 열어야 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그 문을 열리라는 것을 자각한다.

 

 

 

사랑은 사라진다.

사랑이 만약 뇌에서 나오는 신경 물질로 인한 일종의 정신착란 상태라고

과학적으로 말한다면, 그 사랑은 곧 사라진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사랑이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나는가를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 없다. 사랑은 인간 관계의 한 형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최고조에 다다른 연인의 선택은 결혼이다.

그들은 평생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람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가정을 이루고, 일상을 함께 영위한다.

그것이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결혼 생활이다.

 

 

 

그러나 순탄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부부 사이에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적나라한 인간성을 서로에게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고백하건데, 내 주위의 친구들 대부분은 부모가

이혼을 하였거나 별거 상태에 처해 있다.

결정적인 이유는 경제적이거나 애정사적인 문제다.

말하자면, 부부가 사랑을 빌미로 맺게 된 일종의 '인생 계약'이 배신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다루고 있는 예술 작품은 너무 많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 작위성과 통속성, 뻔한 스토리 전개란 종종 나를 질색하게 했다.

윤리와 욕망이 충돌하는 접점에서 서로의 입장과 정당성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도 끔찍했다.

그러나 상황의 통속성만으로 비웃어버리기엔,

이 문제는 너무 삶에 밀착해있다.

 

 

 

보봐르의 『위기의 여자』는 결혼 생활의 위기를 겪는 한 중년 부인의 전형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 성실하고 능력 있는 남편, 잘 성장하여 자립한 자녀들을 둔 중년부인 모니크이 있다. 그녀는 가정사를 잘 처리하고, 남을 돕고 배려하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여길 만큼 여유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남편에게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이미 십년 전부터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고 고백한다. 그녀는 깨닫는다. 균형 잡혀 있다고 여겼던 부부 생활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고, 아이들은 그녀의 품을 떠났으며, 남은 것은 일상을 견뎌온 오랜 인내 뿐이라는 것을. 파렴치한 것은 그녀의 남편 모리스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녀를 이끌어왔다는 점이었다. 그는 아내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존재해주길 바랬고, 이제 더 이상 그녀가 필요하지 않자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기 시작했다. 그는 죄스러워하는 남편의 모습을 연기할 줄 알았고,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아내의 심리를 이용할 줄도 알았다. 또한 그들의 결혼 생활이 파경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아내의 잘못이 컸다고 교묘히 그녀를 질책한다. 그가 사랑했던 아내는 더 이상 없다. 여기에 있는 것은 '남편을 거세'시키는 '집에만 있는 여자'다. 이것은 명백한 인신 공격이다. 그렇다면 남편은 어떻게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그녀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성실한 남편의 역할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는 인생의 반려자였던 아내를 어느 사이엔가부터 필요에 의해―심정적으로 따돌려왔다. 아내와 사소한 불화가 일어났을 때, 그는 아내를 설득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함께 공유했던 취향과 의식은 더 이상 지킬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새로운 성역을 은밀하게 만들었고, 이제는 그 가정의 완성을 위해 아내에게 떠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새로운 일을 시작할 의욕이 없는, 오로지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일에만 인생을 바쳤던 아내에게 말이다.

 

시몬 보봐르

 

 

각색의 극 - 정복근 (극작가)
근래에 와서 여성이나 여성문제를 주제로 삼는 연극들이 잇달아 공연되면서 <여성연극>이라는 낯선 말이 생기더니 이 작품은 어느 결에 <여성연극>의 초기작품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되어지고 있는것 같다. 집안에만 들어앉아 있던 주부들의 존재가 일종의 사회적인 파워로 인식된 계기가 된 셈인데 이 연극 이후 중년의 여성 연극배우들의 무대에서의 활동범위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흥미로운 현상으로 꼽혀지고 있는 것 같다. 첫공연 때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수많은 화제를 모았던 이 연극은 나로서는 처음으로 각색해본 경우이기도 해서 늘 다른 감회로 돌아보게 된다. 평이하고 단조로운 소설을 무대위에 입체적으로 꾸며 보이기 위해서는 창작희곡의 경우와 별 차이 없는 집중과 창의력을 요구하면서 원작의 골격이라는 제약을 끊임없이 느끼게 하는 각색작업을 나는 그때까지 열심히 피해 왔었다. 본래 프랑스 영화는 매우 싫어하고 프랑스 문학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원작자의 작품들에서도 별 다른 감명을 받아본 일이 없는 내가 선뜻 이 작품의 각색에 응했던 이유는 임영웅 선생님의 연출에 대한 호기심과 기왕에 비슷한 주제의 작품을 써놓았던 터여서 이런 일상적인 소재의 연극이 과연 어떤 성과를 얻을것인지 실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외도>라는 주제가 결혼한 여성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호기심을 품게 하기 때문이다. <남편의 외도>는 결혼한 여성의 영원한 테마임을 입증해보일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르게 변모된 여성의식의 단면을 보여줄 것인지 기대와 관심을 갖게 한다. 

 

정복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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