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옛적에 질마재 마을에 마음씨 착하고 순박한 덕보, 반쪽이, 꽃님이가 산다.
일 잘하고 기운 센 덕보와 새침떼기 예쁜 꽃님이는 어려서부터 정혼한 사이로
혼례날만 기다리고 있다. 반쪽이는 덕보와 꽃님이랑은 어려서부터 친구이지만
말도 잘 못하고, 몸도 성치 않다. 하지만 반쪽이는 누구보다 우직한 마음과
꽃님이를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우에게 홀려 산에서 길 잃은 덕보는 어떤 스님을 만나게 된다.
덕보는 스님에게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가르쳐 달라지만,
스님은 "니깟 놈이 마을에 내려가서 살면 뭘 하나"며 호통을 친다.
겨우 산에서 돌아온 덕보는 어쩐지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덕보는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자신의 미래와 꿈,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반쪽이는 반쪽이 대로 패잔병 출신의 꽃님아비에게
전쟁터에 가면 별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꽃님이를 위한 별이 되기 위해
전쟁터로 가기를 결심한다. 마침내 덕보와 꽃님이의 혼례날
반쪽이가 찾아와 전쟁터로 떠나겠다고 한다.
덕보는 꽃님이의 만류를 뿌리치고 반쪽이와 함께 전쟁터로 떠난다.

전쟁터에서 승승장구하던 반쪽이와 덕보는 적군의 기습으로 위기에 몰린다.
반쪽이는 덕보를 대신해서 적군을 유인하다가 칼에 찔린다.
반쪽이는 단 한 명도 죽이지 못했지만 그래도 덕보의 목숨을 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며 죽고 만다. 반쪽이가 죽은 후 덕보는 신들린 사람처럼 적군들을 죽인다.
덕보는 그 공로로 장군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여인을 만나게 된다.
덕보는 자기가 죽인 원혼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전쟁터를 빠져나오지 못한다. 덕보는 괴로움을 술로 달래며 살아간다.
다른 장군들은 그런 덕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급기야 덕보를 제거하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여인은 덕보에게 이곳을 떠나서 시골의 촌부가 되어 살자고 하지만,
덕보는 이에 응하지 않는다. 결국 여인은 덕보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장군들을
독살하고 자신도 죽고 만다.
이제 모든 것을 다 잃은 덕보는 홀로 황야를 방황한다.
고향으로, 질마재 마을로, 꽃님이를 만나러 가고 싶지만, 길을 찾을 수 없다.
덕보는 그렇게 또 다시 길을 잃고 만다.
스님이 다시 나타나지만 길을 가르쳐 주지 않고 가버린다.
그때 반쪽이가 나타난다. 덕보는 반쪽이를 따라 꽃님이가 있는 곳으로 온다.
꽃님이는 덕보가 떠나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 혼례복을 차려 입고 앉아있다.
이제, 질마재 마을도 다 사라졌다는 말에 덕보는 다시 밭을 일구면 된다고 말한다.
꽃님이는 서서히 재가 되어 사라지고 만다.

서글프고 아름다운 신화 속 이야기 <질마재 신화>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라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새를 못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버렸습니다. 문짝귀에 걸린 옷자락이 떨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쓰겠다며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내려앉아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버렸습니다.
- 미당 서정주 시집 <질마재 신화> 중 신부. (1975)

조현진 작가의 글 -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쓰고 싶었다
모든 것은 그저 어두운 밤 내 작은 방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서정주 선생님의 시집 <질마재 신화>를 읽고 있었는데, 신부라는 시를 읽고 뭔가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첫날밤에 왜 신랑이 도망갈까. 도망간 신랑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 설화는 우리나라에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 하나이며 다른 나라들에서도 유사한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익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시, 그저 애틋한 이야기, 불쌍한 여인의 이야기라 생각했던 시. 그날, 나는 서정주 선생님의 시 '신부'를 새롭게 만났다. 그때 나는 오랜 시간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써왔던 것들에 회의를 느끼면서 뭔가 지금까지 썼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들을 다른 방식으로 써보고 싶었다. 특별한 시대의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써보고 싶었다. 신화, 낭만주의, 거대 담론, 한국적 서사시 등의 낱말이 항상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욕심만 앞섰을 뿐,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하는지 감은 오지 않고 벽만 느껴졌다. 도망간 신랑의 이야기를 그때 내가 몰두해 있던 '신화 서사시로 풀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면서 정말 영화처럼 머릿속으로 그들의 인생이 스쳐지나갔다. 몇 달을 고민했던 화두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역시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나는 수없이 많은 벽들을 깨야만 했다. 손에 익어버린 그래서 타성에 젖어 유형화 되어버린 잘 다듬어진 극작술은 어느 순간 내 손을 묶는 사슬이 되어버렸다. 그저 툭툭 던져 놓듯이, 굵직하게 선을 그으며 수묵화를 그리듯 써야 하는데 그것이 너무도 힘이 들었다. 그렇게 나오게 된 작품은 처음 쓴 희곡처럼 어딘지 엉성해 보였고 부족해보였다. 작품의 이러한 어딘지 빈 듯한 느낌, 여백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극과 극이었고 공연을 만들어 감에 있어서도 때때로 배우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부족함이야말로 내가 진정 원했던 것이었고 만약 단지 시를, 설화를 극화할 것이었다면 적어도 내게는 의미가 없었으리라 확신한다. 그렇게 때때로 작품에 대해 회의적 평가를 받기도 하였기에 처음 공모전 입상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쓴 이 작품의 의미에 대해 확인 받고 싶은 불온한 마음이 있어 내긴 했지만, 입상할 것이라고는 나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자리를 빌어 미숙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독해 때 연출을 맡아주셨던 송은주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다시는 없을 행운으로, 알아주는 이들을 만나고 공연까지 하게 되어 나는 아직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그저 다른 것을 한번 써보고 싶은 조금은 치기 어린 마음에서 시작한 작품이 여기까지 온 것이 참으로 꿈과 같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사랑하는 이와 질마재에서의 이 꿈을 계속 꾸고 싶다.

2004 국립극단 창작극 공연
동국대 국어국문학부 졸업. 제7회 국립극단 신작희곡페스티벌 당선.
2000년 동국대 국어국문학부 희곡분과 공연 <비나이다 비나이다>의 희곡을 썼고,
동국대 연극학과의 <헤다 가블레르>(2002), <밑바닥에서>(2003) 공연의 드라마트루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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