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재현 '바꼬지'

clint 2015. 11. 11. 08:49

 

 

 

분이는 6.25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양부모 밑에서 자란다. 서울 변두리에서 양부모인 윤구, 연화와 셋이 식당을 하며 살아간다. 분이는 항상 아련하게 기억나는 고향 바꼬지를 그리워한다. 불량배의 바꼬지를 찾았다는 말을 믿고 늙어버린 양부모의 돈을 훔쳐 그를 따라 나선다. 남겨진 노부모는 분이에 대한 그리움에 절망에 빠진다. 결국 노부모는 바꼬지가 분이의 고향일 뿐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의 고향이라 생각하며 살아온 집을 떠나 분이를 찾아 바꼬지로 향한다. 서민적 애환이 깃든 삶을 살아가는 양부모와 분단된 현실에서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실향민의 회귀본능을 부각시켰다. 이상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잊혀져가는 순수한 마음의 고향을 되살려보고 진장한 꿈을 간직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의미를 표현한 작품이다.

 

(연화 역의 백성희와 분이 역의 김금지)

 

 

줄거리
서울 변두리에 자리 잡고 있는 시외버스 종점의 한 식당이 무대이다. 식당 주인인 윤구, 윤구의 처 연화, 그들의 양녀인 분이 이렇게 세 식구가 시외버스 운전사들을 상대로 식당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분이에겐 항상 아련히 떠오르는 고향 바꼬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다. 바꼬지를 찾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써보지만 바꼬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분이를 사랑하며 언젠가 바꼬지를 꼭 찾아서 분이와 함께 바꼬지에서 살겠다던 창준이가 차사고로 죽게 된다. 창준의 죽음으로 분이는 절망과 허탈감에 빠지고 노부모 또한 삶의 의욕을 잃게 된다. 또한 그들이 운영하던 식당이 도시계획으로 헐리게 된다. 이때 용팔이가 바꼬지를 알고 있다며 분이로 하여금 돈을 훔치게끔 한다. 결국 분이는 돈을 훔치고 노부모를 남긴 채 바꼬지를 향해 떠나 버린다. 결국 노부모는 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더욱 더 절망과 허탈감에 빠진다. 결국 노부모는 바꼬지는 분이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의 고향이라며 한평생을 살아 온 집을 뒤로한 채 분이를 찾아, 희망일지, 슬픔일지 모르는 여운을 남기며 바꼬지를 향해 떠난다.

 

 

 

거대한 물질문명의 위력과 자본주의적 산업구조에 의해 잃어가고 있는 우리들 마음속에 고향 같이 자리 잡고 있는 그 곳. 그곳은 발전해 가고 있는 현대사회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온 발자취를 조심스레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의 삶의 의미를 제시해 주고 있다. 서민적 애환이 가득한 삶을 살가고 있는 각 등장인물을 통해 그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곧 우리들의 이야기로 바꾸어 느껴 보도록 표출해 보고자 했다. 우리 모두의 고향일 수도 있는 바꼬지. 그곳은 미지의 세계일수도, 환상의 세계일수도, 현세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죽음의 그 어디일 수도 있다. 형상화되어 있지 않은 그곳을 찾아가기 위해 노부모까지 버리고 간 분이와, 분이와 살던 집 모든 것을 잃어 허탈감과 처절함만이 남은 노부모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환타지의 세계를 찾아 나선다. 이상형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 인간의 핏줄과 영혼 깊숙한 곳에 잠재하고 있는 본성을 들추어내어 인생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망각과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인간들에게 잊혀져 가는 순수한 마음의 고향을 되찾아보게 하고 참의미의 꿈을 다시금 생각하며 살아가게 할 수만 있다면 현재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충분히 그 값을 발하게 되리라 생각해 본다.

 

 

 

((작가의 말 : 이재현)) - 하나의 공통분모는 마음의 고향이라 해둘까?
<바꼬지>는 나의 데뷔작일 뿐더러 처녀작이기도 해서 어느 작품보다 내가 아끼고 사랑한다. 누구에게나 첫 자식이 가장 대견하다 지 않는가. 1965년도 국립극장 공모 당선작이었으니 그간 웬간히 시간도 많이 흘렀다. 당시 노부모 역을 했던 박근형, 여운계씨는 지금 방송에만 전념하고 있고 득수 역을 했던 최불암, 용팔이 역의 오지명씨 등은 모두가 이제는 TV에서 톱 탈렌트로 군림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크다.
<바꼬지>는 초연 당시 여러 가지 화제도 많이 뿌렸지만 제일 우선했던 것이<바꼬지>에 대한 개념이었다. 물론 바꼬지는 현존하는 지명은 아니다. 그렇다고(유토피아)라고 꼭 집어서 규정짓는 것도 꼭 맞는 해석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나의 공통분모를 찾아낸다면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의 고향이라고나 해둘까? 아무리 내가 이 작품의 작가라 해도 꼭 집어서 어떤 의미라고 밝힐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겠다. 관객 스스로가 결정 짓는 것이 가장 옳은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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