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막 1896년 이른 봄, 손탁호텔
물밀듯 밀려온 외국세력앞에 일본과 더 시아의 세력쟁탈장이 된 우리나라에 제나라의 이권을 위해 찾아온 많은 외국인이 손탁호텔을 그들의 사교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호텔에는 미국인 모오스, 러시아인 브리네르가 철도부설권 문제에 인증해있고 호텔주인 손탁도 자연스럽게 이들의 대화에 응대한다. 한편 임철규는 초조하게 서재필을 기다리고 있다. 이때 일본 신문기자 기꾸사마 겐죠가 들어와 호텔의 투숙을 원하나 지배인 천주는 그가 일본사람 임에 방이 없다고 거절하자 기꾸시마는 크게 분통을 터뜨리고 나간다. 곧이어 들어선 서재필과 이상재를 만난 임철규는 우리의 무능한 조정과 외국 세력의 각축에 동분하자 서재필은 나라를 개척하는데 힘이 될 독립신문 창간계획을 밝힌다.
제2막 약 2개월 후, 러시아공관 내 고종의 어소.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온 고종과 세자는 커피를 마시며 악몽 같던 지난 일에 다시 한번 몸서리를 친다. 세자는 손탁호텔에 보이는 사람들이 고종의 아관파천을 비난하고 있음을 알리자 고종의 심사는 불쾌하기만 하다. 한편 민영환의 전보를 가지고 등장한 이범진과 이완용으로부터 고종은 로마노프와의 5개 조약에 관한 보고를 받는다. 일본과 러시아의 양 세력이 서로 대립. 반복하면서 이권을 차지하기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위급한 때를 당하여 일시의 위험을 면하기에만 급급한 고종의 번민은 더욱 커진다. 뒤늦게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발행하고 있음을 안 고종은 독립신문의 내용을 알고자 한다. 그러나 고종의 환궁을 애타게 간청하는 신문 사설에 고종은 또다시 고민에 빠진다.
제3막 제1장. 약 2주일 후, 손탁호텔
독립신문의 여론으로 외국 상인들은 그 눈의 사업이 여의치 못하게 되자 모오스는 떠날 채비를 하며, 브리네르는 독립신문 주동자 서재필에 대한 극도의 불만을 터뜨리지만 손탁은 냉담한 분이다. 이때 호텔에 나타난 서재필에게 브리네르는 욕설을 붓고 정면충돌한다. 서재필은 독립신문 3천 부 돌파 기념축하회를 손탁호텔에서 개최하려는 뜻에 손도 쾌히 응한다. 그러나 홍종우를 주축으로 한 독립신문의 방해 손길은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한편 웨벨도 손탁에게 축하회를 갖지 못하게 강경하게 협박하지만 손탁은 진로세력을 몰아내고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서재필의 뜻에 합심하여 굽히지 않고 모든 계획을 진행할 것을 각오한다.
제3막 제2장 닷새후, 손탁호텔
독립신문 기념축하회가 한창이다. 서재필은 독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좀더 구체적인 행동으로 독립협회 발족과 독립문 설치계획을 발표하자 군중들은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다. 이때 반대세력인 홍종우는 서재필의 사업에 반박하며 서재필이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것을 트집잡아 조선 땅에서 떠나라며 난동을 부린다.
제4막 1897년 가을, 경운궁안 고종의 어소
독립신문의 끈질긴 여론의 힘으로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여러 대신을 모아놓고, 시정의 어지러운 상태에 불안해한다. 대신들은 독립협회의 힘을 꺾는 길은 또 다른 압력단체(황국 협회)를 만들어 견제하고 방해하여 그 힘을 분산시키는 일이라고 몰아친다. 그리하여 이 일을 암암리에 추진해온 홍종우로부터 힘으로는 보부상인들을 이용하고, 서재필을 미국 정부로부터 소환하는 합법적 방법 등을 듣게 된 고종은 크게 만족해한다. 홍종우는 자신의 충성심의 표시로 자신이 살해한 김옥균의 머리카락을 고종에게 바친다.
제5막 제1장 1898년 봄,
손탁호텔 한산한 싸움에선 현주와 임철규가 독립신문을 읽으며 담소하고 있다. 한편 웨벨 공사로부터 서재필의 소환을 전해 들은 손은 크게 상심한다. 잠시 후 서재필과 독립협회 원들이 폴리와 소환장에 대해 반대시위를 하겠다고 흥분하자 서재필은 자신 한 사람이 떠난다고 조선의 민권투쟁이 중지될 수는 없다 하며 출국을 결심한다. 이때 회원들이 달려와 홍종우 일당들로부터 신문사가 습격당했음을 알려온다.
제5막 제2장 같은 해 가을, 손탁호텔.
폭풍이 지나간 뒤의 적막과도 같은 손탁호텔, 독립협회 습격 이후 서재필은 미국으로 돌아갔고 현주도 어디엔가 몸을 피해있을 임철규를 찾아 무작정 떠난다. 잠시 후 기세등등하게 들어온 기꾸시마는 이등박문이 머무를 방을 예약한다. 앞으로 조선에 일본의 시대가 올 것이고, 또다시 새로운 시류가 흘러가고 있을 뿐인 손의 마음... 이제 이 땅에는 러시아 세력의 종말을 말하는듯, 브리네르도 마지막 작별인사를 남기고 떠나간다. 창밖에는 낙엽이 지고 이곳 손탁호텔에도 또 손탁의 가슴에도 슬픈 낙엽들이 무겁게 내려와 쌓이는 듯 서서히 막이 내린다.
작가의 글 - 차범석
역사란 사실의 기록이며 문학이란 가능성의 표현이다. 상식적인 이야기로말 하자면 歷史란 하나의 현상으로서의 사실의 누적이요, 文學은 보편성을 내포한 조직화된 표현이다. 그리고 歷史는 일정한 기간 내에서는 그 시점에서 시작도 있고 끝도 있고 그리고 중단도 있으며, 모든 사건이나 사실은 반드시 최종적인 결말을 가져 온다고 볼 수는 없다. 말하자면 인과율에 있어서는 매우 불안전하고도 산발적인 무질서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어느 의미로 봐서 歷史는 시작도 결말도 없다. 그것은 오직 사실 그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까다롭고도 복잡한 歷史的 실상을 소재로 하여 작품화하는 작업은 희곡보다는 소설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小說은 어느 의미로 봐서는 그 시작과 끝이 아무런 제한을 안 받는 무한정한 자유를 보장받은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곡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어떤 歴史的 사실을 소재로 하여 창작하는 경우 마치 경마장에서 펼쳐지는 競馬와 흡사하다. 출발점에 서 있는 여러 말과 騎手들은 이를테면 역사상에 나타난 인물이요 사건이며 그것은 서로가 어떤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경우에는 결과가 있으며 그에 대해서 관중들의 예측이나 독단은 그 누구도 할 수가 없다. 어느 말이 우승을 할 것인지 어느 말이 중도에서 이탈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체 예측을 불허로 한다. 다만 극작가만이 이 모든 조건을 알고 있고 또 제기된 여러 조건을 빠짐없이 충족시켜 줘야 하고 그 끝막음이 어떻게 될 것이며 인과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져야할 것인가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史劇이란 말 자체는 근본적으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歷史가 지니고 있는 이 모순을 史劇에서는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차라리 사실대로 서술을 해나가는 작업이 얼마나 순탄하고 그리고 부담이 없는 길인지 모를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史劇을 쓰는 경우 그 素材의 선택은 이와 같은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문제가 되겠지만 옥석을 가려내는 가치관의 정립도 또한 중요한 골자가 된다. 모든 사실이 다 연극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손탁호텔>을 쓰기 시작하면서 탈고할 때까지 몇 번이고 후회를 했고, 또 좌절감에 빠져 들어간 것도 바로 이점이었다. 그것은 소재 자체가 너무나 거창하고 무한대하고, 그리고 난맥상을 이룰 정도로 복잡한 時代的 배경과 歷史的 사실에서 오는 강박 관념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코 史劇을 쓰는 것이 아니라고 우겼다.
<손탁호텔>은 歷史의 한 부분을 오려낸 한 장의 풍속화에 불과하다. 歷史는 이미 그곳에서 정지되어 있다. 나는 다만 그<손탁호텔〉이라는 장소를 빌려서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내 나름대로의 의상과 성격과 대사를 주어서 연극을 꾸며 보기로 했다. 이것은 歷史的 사실이라기보다 언제든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고 어느 시대이건 체험할 수 있는 미움과 사랑, 고독과 배반, 개인과 조직, 그리고 시류를 타고 표류하는 군상을 그리면서 오늘과 내일을 잠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따라서 어떤 史家나 고증가가 이의를 제기하면 나는 곤경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원하는 사람은 韓國史를 숙독하면 족하다. 나는 오직 그 時代를 살아가는 젊은이를 상상하고 내일을 살아가야 할 현재의 내 자신을 위해 내 나름대로의 모험을 즐기기로 한 것이다. 도도히 흘러내리는 물줄기 속에서 꿋꿋하게 키를 잡고 서있는 젊은 船長을 생각하면서<손탁호텔>을 써왔다. 史劇을 쓰면서도 스스로 史劇이 아니라고 우기는 모순은 作家만이 가지는 特權이다. 그러나 그것이 獨善과 방만과 태만이 아닌 현실을 조준하는 겸손과 성실에서였다면 누군가가 나에게 미소를 던져 주리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戯曲 〈손탁호델〉에는 허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하나의 可能性과 보편성을 作家 나름대로의 상상력에 의해 구축해 보기로 했다. 예컨대 이 作品의 주인공인 徐載弼과 손탁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徐載弼에 관해서는 比較的 소상한 資料가 남아있다. 그러나 손탁이라는 외국 여성에 관해서는 떠돌아다니는 풍설이나 막연한 추측만이 있지 활자화 되었거나 정설이라고 할 만한 자료가 없었다. 근거가 없으니까 작품을 쓰기에 불편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自由스런 想像의 날개는 그 나름대로 분방할 수도 있었다. 요는 徐載弼도 손탁도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었기에 겪어야만 했던 인간적인 고독감이나 좌절감을 더 심각했었던 것이고,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가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는 事件의 設定도 감히 해본 것이다. 그러나 이 作品은 이 두 사람의 사랑을 그리려는 것은 아니다. 격동하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대를 앞서가고 민중을 깨우치려던 '獨立協會'의 정신적인 바탕과 「獨立新聞」의 역사적인 사명감을 오늘의 우리 삶에다 투영하려는데 그 의도를 찾는다면 사실 손탁이라는 인물은 방계의 인물이 될지도 모른다. 요는 당시의 우리 조정이나 국민이 자주성도 가지지 못했고 스스로를 통제할 이성도 갖추지 못했던 역사적 현실 속에서 자주성과 인간성을 부르짖는 두 인간, 徐載弼과 손탁의 부각은 결코 作爲的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손탁호텔」은 그 당시의 우리 국민의 처지로서는 문자 그대로 異邦地帶였다. 해방 직후의 「조선호텔」이나 「반도호텔」과도 같았을 것이다. 잠자는 나라에 제멋대로 쳐들어 와서 友好니 通商이니 親善이니를 내세우면서 실속을 차리려던 이른바 先進勢力의 압박 속에서 그것을 보다 빨리 느끼고 보다 민감하게 거부 반응을 일으킨 독립협회의 의식 구조와 행동은 확실히 선각자요 영도자적인 자세였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희곡<손탁호텔〉이 오늘의 우리 에게 어떤 시사와 경각과 그리고 반성도 불러 일으켜 주리라는 소신으로 붓을 들었음을 밝히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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