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10월 동랑레파토리 극단에서 초연 (연출: 안민수)
초혼은 그간 연출가로만 활동 해온 안민수의 첫 희곡작품이다.
'태' '하멸태자'의 무대에서 그가 추구했던 테마가 이 작품에선 자신의 글로 표현된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이 구사하는 대사가 거의 “아이고”뿐이다. “아이고”는 장례 때 하는 곡(哭) 소리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슬픔을 하나로 집약한 추상(抽象)의 전형이다. 이렇게 응축된 표현을 갖고 80여분을 이끌어가는 작품이 바로 <초혼>이다.
단 3음절의 대사 “아이고”로 과연 연극이 성립할 수 있을까? 확인 결과 그것은 가능했다. 원래 아주 작은 것에도 집중하고 집중하면 그것이 어느새 거대한 우주로 확산되는 법이다. 꼭 나노(nano)예술까지 안 가더라도 우리 일상에서도 그런 경험은 얼마든지 해볼 수 있다. 아마 길 옆에 우연히 난 잡초 한 줄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난생 처음 보는 오묘한 모습을 발견하고 감탄하게 될 것이다. 관객들은 더 이상 복잡한 의미 해석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배우들로부터 출발하는 슬픔을 받아 같이 공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말을 절제하고 절제하면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슬픔이 응축된 표현 “아이고”는 바로 시와 노래가 되고 슬픔을 표출하는 몸짓은 바로 무용이 된다. 그래서 결국 일상의 말보다 수백수천만 배 강렬하고 밀도 높은 슬픔의 블랙홀이 된다.
“아이고”가 어찌 죽은 이들만 위로하겠는가? 망자를 애도하며 산 자들은 슬픔을 토해 놓는다. 그렇게 위로받은 망자의 혼은 편하게 이승을 떠난다 한다. 하지만 어찌 보면 장례란 죽은 이보다 산 자들을 위한 절차일 수도 있다. 짙은 슬픔을 토하고 나면 정화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점에서도 죽음과 연극은 통하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죽음의 순간부터 상여가 나가고 옷을 태우는 장례의식이 끝나기까지 대사는 오로지 어이고, 어이고 뿐이다. 한참 듣자니 이 소리는 독창에서 합창으로 이중창으로 여러 곡성이 다양하게 화음을 이루기도 하고 불협화음으로 들리기도 한다. 촛불, 죽은 이를 둘러싼 가족들, 되풀이되다가 끊어질까 싶더니 어느 순간 새로 시작되는 곡성, 죽은 이의 저고리를 가지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 북녘을 향해 휘두르며 외치는 축문 등의 구성으로 무대가 열리고 의식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축문 읽는 소리, 여러 가지 곡성과 상도 꾼의 어화소리, 선소리는 당김의 음색으로 극을 고조시켜 이끌어간다. 향탕수를 죽은 이의 몸에 붓고 방향을 바꿔 곡을 하는 몸짓, 제기의 등퇴장과 제주를 따라 붓는 일, 상여를 따라 움직이는 행렬까지 극의 진행은 장례의 격식을 따른다. 끊임없이 곡하고 절하고 마시고 하는 행동의 반복 뒤 이곳저곳에 상복이 쌓이고 주상은 쌓인 옷에 불을 지른다. 활활 불길이 일면서 극은 절정에 이르고 불길이 닿은 곳엔 천지간에 위폐만 가득하게 떠돌고 길고 센 바람소리와 어둠으로 극은 끝난다.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수식 없이 존재의 저 밑으로 자꾸 헤집고 파 들어가 보니까 남는 것이 이것뿐이었다." 고 말한다.
안민수
출생 1940년 1월 30일
학력 하와이대학교대학원
소속 동국대석좌교수, 전 서울예술대학장
수상 한국연극상(한국연극협회), 한국 연극영화예술상(한국일보), 서...
경력 동랑 유치진이 설립한 드라마센터에 입단하여 배우로 활동 드라마센터 동랑 레퍼토리 극단에서
연출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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