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앤 머니’는 사람과 사랑보다 돈이 중요해진 물질만능시대에 돈에 구속된 사람들이 파멸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극의 중심에는 결혼 2년 차 신혼부부인 남편 데이비드와 아내 제스가 있다. 쇼핑 중독에 걸려 수많은 빚을 떠안게 된 제스 때문에 데이비드는 핸드폰 영업사원 일에 뛰어든다. 자존심을 구기고 옛 애인에게 찾아가 원하지도 않는 일을 떠맡게 된 데이비드는 현실 앞에 절망하지만, 돈을 얻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비용이 있음을 깨닫고 마음을 다잡는다.
어느 날, 꿈에 그리던 ‘드림 카’ 아우디를 시승한 뒤 벅찬 가슴으로 집에 돌아온 데이비드는 자살을 시도한 채 쓰러져있는 제스를 발견한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아내를 본 데이비드의 머릿속에는 ‘살려야겠다’는 다급함보다 ‘빚을 청산할 수 있겠다’는 욕망부터 떠오른다. 그렇게 돈에 눈이 먼 데이비드는 헐떡거리는 제스의 입에 독한 술을 들이붓고 숨이 멎기를 기대하기에 이른다. 죽어가는 사람 앞에까지 숫자 계산을 하는 데이비드의 모습 위로 이미 뉴스를 통해 수도 없이 들어온 각종 패륜 범죄들의 소식이 오버랩된다. 그리고 곪을 대로 곪아 병적인 수준에 도달한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마주하게 된다.
데니스 켈리(Dennis Kelly)의 2007년작 <Love and Money>은 현대 금융자본주의 세계가 조장하는 소비문화와 빚의 노예들로 전락한 주인공들인 데이빗과 제스, 그리고 그들 주변 인물들을 통하여, 현대 인간들을 지배하는 결핍과 욕망, 사랑과 돈의 역학 관계에 대하여 질문하고 있다. 한 인간의 정체성 확립은 그와 그를 둘러싼 환경, 특히 타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사랑만큼 하나의 자아를 충만시켜 주는 매개 요소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상상도 못하는 희박한 확률로 모든 것들이 맞아 떨어져서 형성되는 신이 내린 기적과 같은 것이다. 마치 우리가 사는 별이 생겨날 확률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주인공 제스의 대사처럼,
“이 원자들이 갖고 있는 중력들끼리 서로를 당기고 밀고 하며 별을 만들어 내고, 다시 별들 끼리 밀고 당기고 해서 더 많은 원자와 더 큰 별들을 만들어 내는 거죠 (…) 그것은 10의 12승의 10의 12승의 10의 12승의 10의 12승의 10의 12승의 10의 12승의 10의 12승의 10의 12승의 10의 12승분의 1이래요. 이건 우연일 수가 없잖아요.”
다시 말해 타인과 타인이 만나 하나의 지구를 이루는 것과 같은 사랑은 숫자나 수치로의 환원 혹은 계산이 불가능하고, 그러는 시도조차가 무의미한 절대적인 그 무엇이다. 하지만 돈의 수치로 모든 것들의 가치가 매겨지고 더 나아가서 인간의 본질적 결핍에 더욱 더 텅 빈 구멍을 내는 빚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사랑의 절대적 기능, 즉 온전한 자아로서 인간이 자리매김하기 위해 필요한 이 힘은 무력해 진다. "나도 한때 너 같았어. 이제 다 지나가서 기쁘다. 그건 사랑 같았어"라는 5장에서의 던칸의 대사처럼 사랑은 때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동력이 아닌 걸림돌로 전락해버린 듯하다.
데니스 켈리(Dennis Kelly)는 냉소와 은유를 통한 자기 고백적인 구어체 대사들과 속어들로 과거와 현재, 인물들의 황폐한 내적 풍경, 결핍과 욕망으로 굴곡된 자아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현실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로운 드라마 형식을 창출해냈다. 그리하여 빚에 잠식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망하는 타자와의 진정한 교류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그것의 예정된 파국의 형상에 대하여 밀도 있게 탐구해 나간다. 그러면서 작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21세기 현대인들의 삶의 가치 척도인 돈과 사랑의 본질에 대한 고찰과 그것들의 실울타리에 엉켜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도록 깨어진 거울을 들이대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현대인들의 불안한 삶의 조건들에 대한 자각을 뛰어넘은 적나라하고 불편한 직면에 대한 체감을 전달한다.
2006, 〈가디언〉, 린 가드너 - “빚과 욕망, 살아가면서 치러야 하는 높은 비용, 그리고 우리가 삶 속 공허를 채우기 위해 사들이는 것들에 대한 현대적 도덕극이다."
영국의 주목받는 극작가 데니스 켈리(Dennis Kelly)의 〈Love & Money>은 물질만능주의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사랑과 돈의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본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 사랑 이전에 돈이 중요해진 시대에서 돈이 모든 것을 움켜쥐고 또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크게 헛되어 보이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 <Love & Money>는 물질만능주의 사회에 돈에 눌리고 물질에 구속되고 거기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어떻게 사랑이 돈에 의해 파멸되어 가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사람의 죽음 앞에서 돈에 대한 계산이 떠오르고 가방, 차 등으로 자신의 가치와 존재감을 확인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물질만능주의의 현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사랑과 돈 그리고 진정한 행복에 대한 의미를 다시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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