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1년 4월 21일 브레멘에서 공개 처형된 게쉐 고트프리트는 몇 년에 걸쳐 두 명의 남편과 두 아이, 아버지, 어머니, 형제와 친구들을 포함한 15명을 쥐약으로 독살했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연극대본으로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던 파스빈더는 범죄 자체보다는 게쉐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 동기에 초점을 맞춰, 19세기 전반 극도로 억압적인 사회, 남성중심사회에서 탈출하고 자아를 실현하기위해 사랑과 자유를 얻고 자기실현을 하기 위해 범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성의 비극을 통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극단 프라이에 뷔네에서 1978. 6월 장소 : 3.1로 창고극장에서 공연(한국초연)한 작품으로 김상열이 번안했다. 제목도 <커피속의 일곱 얼굴>로 바꿨고, 등장인물도 주인공 미란을 비롯해 둘째 남편 동수, 친구 자영 등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이름을 바꿨고, 특히 시대를 당시 현대(1970년대 중반)으로 설정해 놓았다. 그래서 원작의 19세기 중반 독일, 브레멘이라는 흔적은 지웠지만 다소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는 괴리감을 느낄 수 있다. 그냥 원작 그대로 공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그 당시는 극심한 남성중심의 사회이기에 여성이 홀로 가정을 지키고 남편 뒷바라지하는 억압된 생활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게 보일 듯하다. 아무튼 이 여인은 자신을 버리거나, 배신하거나, 자기와 뜻이 안 맞는 여러 사람(남편들, 친구, 부모)에게 마지막 커피(독약이 든)를 타주며… 자유, 특히 여성의 자유를 몸소 실천하려 하는 여인의 이야기가 현재 보다는 19세기에는 얼마나 더 극적(劇的)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처음과 마지막은 동일한 시퀀스로 법정최후의 진술로 보인다. “너에게 자유를 준다!”라는 말 뒤에 올가미가 내려오며 즐겨 부르던 노래와 배막엔 비둘기가 날아간다. 진정한 자유를 얻은 느낌이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 1945~1982)
뮌헨의 한 소극장에서 연극배우로 시작해 38세에 요절할 때까지 연극, 영화, TV 시리즈, 라디오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13년간 30여 편을 연출하는 광기 어린 창작력을 보였다. 파스빈더는 이 시기의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양식화된 영상 필체를 남긴 뉴저먼시네마의 핵심 인물이다.
1960~1970년대 독일에서 일어난 영화 운동, 즉 ‘아버지 세대의 영화(Papas Kino)’에 사망 선고를 내리고 새로운 영화를 꿈꿨던 뉴저먼시네마(new german cinema)의 심장이다. 그는 나치를 옹호했던 기성세대와 그 이후의 청년 세대 간의 정치 · 문화적 이견을 사회비판적 관점으로 제시하며 독일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코자 노력했다. 파스빈더를 독일의 ‘연대기 작가’로 부르는 이유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동성애에 치우친 젠더 의식과 사도마조히즘적 강박관념으로 점철된 대인관계를 자신의 전작(oeuvre)에 투영시켰다. 파스빈더의 자아 중심적 영화 연출은 그와 그의 팀원에게 일종의 일기 쓰기 혹은 집단적 고해성사였다. 이 특징은 영화의 자기반영성(self-reflexivity)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비평적 토대를 제공한다. 파스빈더의 영화는 결국 공적인 역사 쓰기인 동시에 사적인 자아성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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