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아르튀르 아다모프 '핑퐁'

clint 2015. 10. 31. 20:41

 

 

 

 

 

 

 

'핑퐁'은 작가의 전기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을 표시하는 작품이다. 아다모프가 브레히트의 파리 공연에 고무되어 지금까지의 극작술을 부인하고 전격적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발표한 첫 번째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제 작가는 형이상학적인 세계에서 보다 현실적인 차원으로 내려와, 일상속 삶의 어려움들, 사회적, 정치적 삶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설명하는 연극을 쓰고자 한다.
극은 예술학도인 아르튀르와 의학도의 빅토르라는 두 젊은이가 전기 당구대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컨소시움의 수금직원인 쉬테르를 통해서, 이 오락기가 하나의 게임 그 이상의 것이 될 수 있음을,즉 재정적인 이윤보장과 사회적인 명망을 가져다 줄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게이머들의 취향에 맞게 오락기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만 하면 일확천금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때부터 전기 당구대는 아르튀르와 빅토르의 삶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져다줄 새로운 아이디어계발을 위해 자신들의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그들의 발명 중 한 가지가 컨소시움의 대표인 노땅에 의해 받아들여지자, 그들은 더욱 열정적으로 전기 당구대에 매달리게 된다.
극의 중반부에, 그들이 제출한 아이디어 중 하나가 거절되자, 더 이상 가망을 발견하지 못한 빅토르는 자신의 의학공부를 위해 컨소시움을 떠나고 아르튀르만이 새로운 아이디어 계발에 심혈을 기울인다. 아르튀르는 혼자서 전기당구대의 성능향상을 위한 자신의 작업을 계속 이어 나간다. 시간이 흐르고 운도 변해 전기 당구대가 있는 오락실이 국영화된다. 컨소시움의 대표인 노인은 죽고 아네트도 죽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빅토르와 아르튀르는 다시 한 번 만난다. 이번에는 두 노인이 함께 예전에 당구 게임을 했던 것처럼, 진지하게 그러면서 희극적으로 핑퐁을 한다. 빅토르는 쓰러지고 심장 마비로 죽는다. 공포에 사로잡힌 아르튀르는 이제 혼자 남아 공허하게 그의 이름을 부른다. 최후의 시인이자 발명가인 아르튀르만이 살아남는다.

 

 

 

과연 이 작품 속에서 전기 당구대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전기 당구대는 애초에 아르튀르와 빅토르에게 순간의 즐거움을 주는 오락의 수단 이상은 아니었다. 아르튀르와 빅토르에게 그것은 한갓 심심풀이 놀이 도구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들이 전기 당구대라는 기계의 구조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오브제(사물)는 단순한 기계의 영역을 떠나 신봉의 대상이 된다. 신봉의 대상이 되면서 오브제들은 인간들을 자신들에게 예속시키고 그들을 조종하면서 그들의 주인으로 등극하게 된다. 결국 인간의 삶은 자신들이 만든 기계에 의해 가공 되는 것이다. 전기 당구대는 놀이의 영역을 떠나 사회적 차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등장인물들의 행동•언어•생활의 거점이 되고 매혹•숭배•광기의 대상이 되며 나아가 체계• 우주•운명 •종교•철학이 된다. 왜냐하면 온갖 종류의 욕망을 촉발시키는 감정적, 성적, 사회적, 경제적인 다양한 삶의 회로가 당구대를 중심으로 그 주변을 맴돌게 되기 때문이다. 전기 당구대는 모든 이들에게 고주파를 발산하여 세계의 모든 관념을 자신 속에 고정시키고 흡사 마약이나 도박처럼, 일단 자신의 반경 안에 포섭된 인간들을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다 해독제 없는 중독을 유발하여 강박중과 편집중 이라는 병리적 중후들을 몰고 오고 나아가 냉혹하게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현대적 괴물'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당구대는 인간들을 자신의 체계 속으로 끌어 들여 그 메커니즘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킨다. 이 오브제는 단순히 전기 당구대로 그치지 않는다. 오브제는 현대 사회에서 허황된 꿈에 매달려 인생을 탕진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대상의 은유적 형상소이기 때문이다. 아다모프가 “전기 당구대는 분명하게 어느 특정 사회가 아니라 사회의 이미지를 명시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과 상통한다. 이 오브제 기호는 각 시대의 인간들을 매혹하는 그 무엇으로도 전환될 수 있는 기호의 대체 성을 지니고 있다. 놀이의 재미와 더불어 금전적 이득을 줄 수 있는 모든 것, 단순한 오락에서부터 필생의 업으로 전환될 수 있는 모든 것, 하릴없는 소일거리에서 맹종과 맹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모든 것, 상대적인 상실감을 채워줄 수 있는 모든 것, 단 한방에 인생의 국면을 탈바꿈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그것은 복권일 수 있고 도박일 수 있고 주식 투자일 수 있고 경마일 수 있고 그밖에 다른 것일 수 있다. 결국, 이 극이 오늘날까지 가장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오브제가 지니는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이고 상징적인 가치 때문인 듯 보인다.
이처럼, 오브제의 인간화 내지는 신격화의 양상과 인간의 오브제로의 전락, 탈 인간화의 현상이 부각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주장처럼, "일상의 사물들은 중식하고 욕구는 중가하고 생산은 욕구의 탄생 과 죽음을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사물들이 불러일으킨 모든 부정적인 폐단들, 채워지지 않는 욕구의 과다함, 서로 갖고자 하는 욕구의 충돌, 그리고 모든 것을 물질적 이득으로 환산하는 욕구의 비합리성에 기인한다.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이 돈으로 환산되면서, 인간들은 재화의 획득에 몰두하게 되고 그것만을 절대 목표 절대 가치로 신봉하며 광기에 빠지기 때문이다 오브제가 절대적 가치를 띄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인간은 존엄성을 지닌 절대적 가치의 존재가 아니라, 언제든지 교환될 수 있고 거래될 수 있고, 혹은 생명을 앗을 수도 있는 물건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극은 인간의 절대적 가치와 오브제의 상대적 가치가 뒤바뀌면서 인간이 겪게 되는 소외의 극단을 보여준다.

 

 

 

 

작가소개
아다모프는 1908년 8월 23일 러시아 코카서스 지방에서 태어났다 카스피 해 연안에 거대한 유전지대를 소유하고 있던 아다모프 일가는 전쟁이 터지자 독일로 이주하였고 스위스를 거쳐 1924년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피난민의 신분으로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하며 핍박과 멸시의 뼈아픈 고통을 체험한 아다모프에게 있어 이 시기는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두 가지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하나는 평생토록 그를 따라다녔던 신경증의 발병이 이 시기부터 였다는 사실이며, 두 번째는, 피토예프 가와의 가족 간의 교류를 통해 처음으로 연극을 접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문학에의 입문은 초현실주의 시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다모프는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혁명'에 감명 받아 초현실주의 독트린에 열광하고 시를 집필하여 엘뤄아르에게 보내는 열정을 보였지만 브르통의 거부로 인해 초현실주의 서클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만다. (그 이유는 아다모프가 브르통에게 트리스탕 짜라에 대한 그의 경외감을 고백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공식적으로 초현실주의와는 결별하게 되었으나 그의 초현실주의에 대한 관심과 애착은 그의 희곡 거의 전 작품 속에서 초현실주의적 색채가 짙게 묻어 있을 정도로 상당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연극계에 발을 디뎌 놓게 된 계기는 카뮈와 사르트르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 로제 블랭과, 아르토와의 교제를 통해서이다. 여기에 장 빌라르가 1945년에 올린 스트린드베리의 '죽음의 춤'와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리차드 2세'의 공연 관람은 아다모프의 희곡 창작 욕구에 불을 댕겼고, 급기야 아다모프는 1948년 자신의 처녀작 '패러디(La Parodie)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처녀작을 필두로 하여 그의 창작욕은 20여 년 동안 쉼 없이 지속되어, '침입'(1948), '크고 작은 전략'(1950), '타란교수'(1950), '행진방향'(1951), '서로간의 대립'(1953), '예전의 우리처럼'(1954), '재회'(1955), '핑퐁' (1955), '파올로파올리'(1957), '71년 봄'(1959), '쓰레기 정책'(1962), '성 유럽'(1963), '중용선생'(1967), '오프 리미츠'(1968), '여름이 다시 오면'(1969) 둥의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그의 연극적 경향은 크게 보아 세 시기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스트린드베리와 아르토의 자양분을 흡수하면서 몽환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작품 창작에 몰두하며, 베케트, 이오네스코와 더불어 부조리 극작술을 선보인 시기로 1948년에서 55년까지의 '패러디'에서 '재회'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작가의 신경증 표출과 그 치유의 의지가 두드러지며, 실존적인 고독과 소외, 의사소통의 불가능성, 가족 내부의 억압과 굴레의 문제 등이 주제로 다루어진다. 두 번째는 사회적, 정치적 참여의 경향이 두드러지는 작품 군, '핑퐁'에서 '성 유럽'까지의 시기(1955~1963)이다. 아다모프는 1955년 브레히트와의 만난 후, 돌연 이전까지의 자신의 작품들을 부인하고 보다 현실적인 차원으로 내려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모순과 병폐들을 고발하는 쪽으로 작품의 방향을 수정한다. (작가 자신은 이러한 전향의 이유를, 내면세계의 부조리와 악은 치유 불가능 하지만 외부 세계의 부조리와 모 순들은 치유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폐단, 개인에 가하는 집단의 폭력, 금전만능주의 등의 주제가 다루어진다.
세 번째는 이전의 두 경향들을 동시에 보여주는 종합의 시기로 '쓰레기정책'에서 '여름이 다시 오면'까지의 작품 군이 이에 속한다. 이전까지 극도로 혐오해 마지않던 심리주의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 아다모프는 개인적인 것들 속에 사회적인 양상들이 첨예하게 내재되어 있는 융합의 극작술을 시도한다. 한마디로 아르토와 브레히트를, 프로이트와 맑스를 아우르는 연극을 탐구 하는 것이다. 개인의 신경중과 집단의 신경중의 절묘한 혼합, 개인의 욕망과 집단의 욕망의 충돌의 문제들이 다루어진다.
이처럼 아다모프는 개인적인 형이상학적 연극에서 집단적인 역사극까지, 꿈의 연극에서 풍자적 소극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연극적 지평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럼에도 그는 대중들로부터 응분의 대접을 받지 못한 비운의 작가였다.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의 질곡만큼이나 불운하게 연극계의 변방에서 중심을 향한 갈망을 품으며 그 주위를 맴돌던 주변인이었다. 베케트가 196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이오네스코가 1974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회원으로 선출되면서 문학적 영예와 대중의 인기를 동시에 거머쥐며 명실 공히 고전작가의 반열에 등극했다면, 아다모프는 이렇다 할 대중적 명성과 인기를 얻지 못한 채 소수의 대학 비평가과 연출가들에게만 인정받는 불운의 작가로 고통 받았다.
'파올로 파올리'와 '타란교수'를 연출한 로제 플랑송은 후대에는 충만함과 완벽성으로 압도하는 베케트보다는 약간은 엉성한 틈새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종결 없는 개방성으로 연출의 가능성을 증폭시키고 생생한 이미지를 통해서 심금을 파고드는 아다모프가 더 인정받게 될 것이라 확신하면서, 그의 연극은 연극과 글쓰기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교과서가 될 만하며, 시인을 위한 시인이 존재하듯이 연극인을 위한 연극인을 꼽으라 한다면 그가 바로 아다모프라고 공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중들의 지속적인 외면과 무관심은 그의 지병인 신경증을 악화시켰고 신경중의 악화는 세 번의 자살기도로 이어졌고 예순 살이 너머 시도한 네 번째 자살기도는 결국 성공하여 그를 영원한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이처럼 생과 사의 세계를 넘나들며 이어져온 그의 삶은 신경증을 치유하고자 하는 고단한 투쟁의 연속이었으며, 동시에 글쓰기도 이러한 투쟁의 일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