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쉐엔 박사는 자기 약혼녀의 초상화를 보려고 화가 슈봐르츠의 화실에 찾아 왔다가 룰루와 룰루의 남편 골 박사와 마주친다. 골은 화가가 룰루의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늘 철저하게 감시한다. 이윽고 쉔의 아들 알봐가 아버지를 발레 "달라이라마" 시연희에 모시고 가려고 나타난다. 두 사람은 골을 시연에 함께 데리고 가는데 성공한다. 골이 없는 사이 룰루는 화가와 수작을 부린다. 슈봐르츠는 제정신을 잃고 룰루를 덮친다. 성급히 돌아온 골은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밀치고 들어오나 뇌일혈을 일으키며 복도에 쓰러져 죽는다.
얼마 후 룰루는 슈봐르츠와 결혼한다. 슈봐르츠는 골의 유산으로 부자가 된 부인 룰루와, 편집장 쉔의 도움으로 일약 유명한 화가가 되어 행복한 생활에 몸을 가누지 못한다. 슈봐르츠는 룰루를 미친 듯이 사랑하지만 룰루는 이런 맹목적인 탐욕에 오히려 고통스러워한다. 화가는 물론 룰루를 사랑하지만 룰루라는 여인은 알지 못한다.
쉐엔박사는 12살의 나이로 거리에서 맨발로 꽃을 팔던 룰루를 데려다 교육을 시키고는 연인으로 데리고 있었으나 자기 부인이 죽자 룰루를 부인으로 받아드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골에게 룰루를 넘겼던 것이고 골이 죽자 슈봐르츠에게 인계한 셈이다. 쉐엔은 이제 좋은 집 안의 규수(첫 장면의 흉상화)와 결혼하기 위해 룰루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한다. 그래서 화가에게 룰루를 좀 더 잘 간수하라고 충고한다. 쉐엔으로부터 룰루가 처녀가 아니었음은 물론, 출신, 과거를 다 전해들은 슈봐르츠는 견디지 못하고 면도칼로 목을 베어 자살한다. 룰루와 결혼할 만한 돈 많은 남자를 불러드리기 위해 쉐엔은 룰루를 발레리나로 만든다. 알봐가 연출하는 발레에서 역을 맡아 춤을 추지만 객석에 쉐엔이 자기 약혼녀와 함께 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룰루는 공연을 중단한다. 분장실에서 두 사람은 거친 말싸움을 하나 쉐엔이 오히려 굴복하고 만다. 룰루는 쉐엔에게 결국 약혼을 파기하는 편지를 약혼녀에게 쓰도록 강요한다. 룰루는 쉐엔과 결혼하지만 쉐엔이 없는 날에는 집안에 많은 연인들을 불러드린다. 그중에는 쉬골흐도 들어있다. 쉬골흐는 가장 오래전부터 룰루에 관한 소위 권한을 주장하는, 신원을 알 수 없는 노인이다. 힘이 장사인 곡예사 로드리고 크봐스트, 고등학생 후겐베르크, 룰루를 동성 연애하는 게슈뷔츠 백작녀 등등. 알봐도 아버지의 부인이 된 룰루의 발에 꿇는다. 이 모든 룰루의 흠모자들을 쉐엔은 벽 뒤에 숨어 권총을 빼어들고 내려다보고 있다. 쉐엔은 룰루에게 자살할 것을 종용하며 권총을 손에 쥐어준다. 정당방위이긴 하지만 얼떨결에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룰루가 진실로 사랑하던 쉐엔을 룰루는 직접 쏘아죽이게 된다.
작품해설
베데킨트의 "지령"과 "판도라의 상자”는 작가가 죽은 지 70년이 지난 후에야 원형의 상태로 공연, 발표되었다. 1894년까지 베데킨트는 "거리 화가”, "사춘기” 등 4 희곡작품 발표했으나, 그 당시 공연된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19세기 말의 독일 연극은 주로 자연주의 연극에 관심이 모아져있었기 때문에 이를 거부하는 베데킨트는 설 자리가 없었다. 베데킨트는 예술 의 실체를 오히려 예술의 병폐로 혼동하는 자연주의 작가들을 비난했고, 그와 마찬가지로 자연주의 작가들부터 상대적으로 비난받게 되었다. 1892 베데킨트는 파리에서 이 "괴기 비극"의 부제로 '보는 극'이 아닌 '읽는 극'이란 꼬리를 부쳤다. 그는 읽혀지는 극작가로라도 인정받으려는 의도에서 그런 부제를 붙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춘기"는 그나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1891년 말부터 작가는 파리에 살고 있었다. 1888년 성황리에 공연된 1막짜리 팬터마임 극인 "룰루"를 보게 되었고, 1892년 말 원래 5막으로 구상했던 "괴기 비극”의 제1막을 완성하였다. 2막과 3막은 1893년에, 제4막은 1894년 1월초에 집필을 끝낸다. 그해 1월말 오랫동안 계획했던 런던여행에 오르고 그 기회에 제5막이 완성된다. 출판하고자 독일과 파리에 출판사를 가지고 있던 랑겐과 협의를 하였으나, 출판사는 작품의 내용상 스캔들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염려하여 "판도라의 상자”의 출판은 계속 지연되었다. 더구나 5막에 등장하는 잭 더 리퍼는 런던의 연쇄 여인 살인자로 경찰이 계속 찾고 있는 사건의 인물이었으니 출판사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베데킨트는 개작을 하기에 이른다. 1895 드디어 "지령. 비극"이 출간된다. 4막과 5막을 삭제하고 대신에 3막 앞에 새로이 3막(극장분장실)을 써 넣었다. 1902년 "지령"이 베데킨트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라이프치히에서 공연이 된다. 공연 시 이 작품은 작가의 요청으로 "풍자비극”으로 소개되며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03년 많은 부분을 삭제하고 부드러운 표현으로 바꾸는 등 작품 개작을 하여 서곡을 첨가시켜 룰루 2부작이 출간된다. "룰루 2부작. 제1부: 지령. 4막 비극" 5년 후에 괴기비극의 나머지 두 막을 개작하고 새로이 제I막을 첨가 하여 3막 비극 "판도라의 상자”를 완성하여 1904년 출간되었다.
1904년 7월 이 출판물은 검찰에 의해 압수된다. 베데킨트와 출판사는 1905년 음란물 유포 죄로 고소를 당하여 3번에 걸쳐 재판을 받게 된다. 베를린 제1심 지방법원에서는 피고인의 무죄와 출판물의 배포를 허용하게 되지만, 라이프치히 고등법원은 아무리 작품이 예술성과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이라 하더라도 음란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하여 제1심의 판결을 기각 한다. 제2심 베를린 지방법원은 고등법원의 판결에 따라 피고는 무죄를 인정하나 출판물은 폐기판결을 내린다. 재판과정에 참고인으로 극작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하우프트만, 연출가이며 비평가이던 바르(H. Bahr)등이 출석하여 작품의 예술성이나 주제를 진단하였다. 베데킨트는 "판도라의 상자”(1906)의 서언에서 자세히 재판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서곡 에서는 풍자적으로 이를 극화시키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 초고는 1988년 페터차데크(Peter-Zadek)의 연출로 함부르크에서 공연할 때까지 한 번도 무대에 오른 적이 없었다. 베를린의 판결은 그 영향력이 그렇게 오래 지속되었던 것이다. 파리의 초고 "판도라의 상자”와 1913년 베데킨트 전집의 룰루 2부작은 상당부분 차이점이 보인다. 5막으로 된 초고에서 파리장면인 4막은 거의 프랑스 말로 대화를 나누고 5막의 런던장면은 영어 위주로 되어 있다. 1913년 전집 즉 제1부, "지령“(4막 비극)과 제2부 "판도라의 상자(3막 비극)로 나뉜 개정판에서는 모두가 독일어로 바뀌어있다. 초고인 파리판 "판도라”의 마지막 장면에서 룰루의 음부를 도려내 주머니에 넣고 의학적 명성에 관해 묘한 말을 지껄인다. "내가 죽고, 나의 수집품이 경매에 붙이게 되면 런던 메디컬 센터는 이 귀한 것에 300파운드는 지불할 거야. 오늘밤은 횡재한 셈인데. 의사들이나 학생들은 이렇게 말할 거야, 이거 정말 놀라운 물건이군!" 1913년에 발간된 베데킨트 전집에는 이 부분이 "제법 힘든 일이군! 나는 재수가 좋은 놈이란 말이야!”으로 바뀌었다. 룰루의 음부가 갖는 의학적 가치의 상징성이 사라지고 새디스적인 살인 동기만이 남게 된다.
알봐와 룰루의 식사장면에서(초고의 3막 6장, 전집의 4막)초고에서는 아버지 쉐엔이 몰래 내려다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식사를 하면서 옷을 벗기며 처절하게 사랑을 속삭인다. 전집에서는 룰루가 알봐에게 손을 내밀어 오래 동안 키스하도록 내버려둘 뿐이다.
초고에서는 쉬골흐가 룰루의 치마 속을 더듬는데 반해 1902년 개정판 “판도라"에서는 룰루의 다리위에 손을 얹어 놓고, 전집에서는 발목을 잡는다. 이런 몇몇 장면들만 비교해 보아도 개정판마다의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이는 검열에 대한 작가의 배려가 작용하기는 했어도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작가자신의 생각 또한 바뀐 것으로 보이며 이런 비교 점을 분석하고 작가의 진정한 의도를 찾아내는 것이 베데킨트 연구의 새로운 과제일 것이다.
룰루는 흔히 말하는 창녀가 아니다. 여자를 정숙한 가정부 아니면 창녀로 낙인찍는 그런 사회의 규범에 따르면 물론 창녀이다. 베데킨트는 룰루를 사랑을 지배하는 여인으로 전형화 시켰다. 모두로부터 찢김을 받기 때문에 룰루는 모두를 파멸시키는 여인이다. 시민 사회에서는 여성의 특성을 죄악으로 못 박는다. 시민사회는 가정생활이 추구하는 理想의 정 반대 개념으로 창녀를 들먹인다. 베데킨트가 규정하는 창녀는 여자에 군림하려는 남성 세계를 파괴하는데 상징적으로 등장한다. 남성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에 적응만 하려는 여성해방 가들과는 베데킨트는 상당히 차이점이 있다. 여성해방 가들은 남녀평등에(바지를 입는다던가, 담배를 핀다던가)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베데킨트는 성의 제한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성의 해방을 요구한다. 베데킨트의 여성해방은 사회변혁의 문제이다. 여성해방은 여성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자체의 해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룰루-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이름과 사회적 지위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룰루와 쉬골흐는 예외이다. 두 사람은 어느 곳인가 "저곳"에서 찾아왔다. 쉬골흐와 룰루는 모녀의 관계이기도하고 때로는 연인의 관계로도 보인다. “룰루 : 저 곳에서 아빠를 잊었다고 생각하나보네요." 쉬골흐만이 룰루의 마력에 휘말리지 않고 살아남는 존재이다. 룰루는 성도 없고 출생도 막연하다. 남자들 마다 룰루를 다르게 부른다. 룰루는 여성의 몸으로 이런 시민사회에서 자신의 속성을 실체화 시키려한다. 이 시민사회는 룰루를 "영혼이 깃들지 않은 짐승”으로 취급한다.
남자들마다 룰루를 다르게 부른다. 룰루, 미뇽(Mignon),넬리(Nelly), 에바(Eva) 등... 룰루는 남자들에게는 항상 새롭게 보이며, 그때마다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름을 룰루는 아주 오래된, 전생의 것으로, 노아의 홍수 이전의 것으로 받아드린다.
“룰루 : 인간의 이성이 생겨난 이래로 내게 룰루란 이름은 없어요."
서곡에서 작가는 "아주 거칠고 아름다운 짐승으로, 영혼이 깃들지 않은 생명체, 초인적인존재”로 룰루를 묘사하고 있다. 룰루 스스로도 자신을 "기적의 아이"로 부른다. 사내들 사이에서 룰루는 천사와 같은 여인으로, 때로는 악마의 아름다움을 지닌 존재로 받아드린다. 사실은 그 모두도 아니다. 베데킨트의 말대로 룰루는 니체의 초인적인,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여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룰루는 숙명적이고 원초적인 특성으로 실체화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룰루의 절대적 속성은 바로 절대적 도덕성과 일치한다. 룰루는 바알과 같이 선과 악의 한계를 뛰어넘어 존재한다. 그러므로 룰루의 도덕성은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가 없다. 화가 슈봐츠가 "창조주를 믿으시오?”라고 묻자, 룰루는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한다. 세속적인 믿음이 룰루 자신이며 정의 내릴 수 없는 속성 그 자체이다. 사랑에 대해서도 룰루는 아는 바가 없다. 쉬골흐가 말하는 것처럼 “룰루의 삶은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에 룰루는 사랑으로 살아갈 수는 있는 것”이다. 여기서 베데킨트는 시민사회가 정해놓은 거짓 도덕성과 진정한 인간적인 도덕성 사이의 차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룰루의 도덕성은 우주세계와 인간의 가장 뿌리 깊게 형성하고 있는 근원적인 도덕성을 간접적으로 표시한다. 룰루는 현제 자신의 존재 이외는 달리 누가 생각해 주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적 평가가 어떠하던 개의치 않는다. 룰루의 속성을 누구나 접할 수는 있지만 이를 이해하거나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시민사회의 기준에 따르면 룰루는 환상적인 성적 존재이고 낯설고 혼자이다. 관객 앞에서 춤추어도 룰루는 관객을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춤을 추는 것이다, 특히나 쉐엔의 약혼녀를 위해서(앞에서) 룰루는 춤을 출 수는 없다. "에쎄르니 : 저 여자가 혼자 솔로를 출 때는, 자기 자신의 독특한 아름다움에스스로 심취해버립니다.- 저 여자 스스로가 그 아름다움에 빠져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룰루-비극에서 베데킨트는 언어의 역할을 룰루의 몸을 통해 그려 내었다.
룰루는 남자들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 룰루 때문에 파멸하지만 남자들은 그 이전에 도덕적으로 파멸되어있기 때문이다. 룰루는 늘 그대로 머문다. 다른 남자에게 매달려 몸을 팔지 않는다. 룰루의 비극은 절대적인 사랑 그 자체이다. 슈봐르츠와의 결혼생활에서 룰루는 다른 여자와 자신을 구별해 주기를 바란다. 그것을 룰루는 자연스런 사랑이라 생각한다. 룰루의 자기성취는 바로 죽음이다. 형무소에서 나온 다음 룰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몇 밤씩이나 꿈을 꾸었어요, 변태 살인자의 손에 내가 죽는 꿈을 요." 룰루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다. 사랑 그 자체인 룰루의 속성 때문에 사회적 조건 속에 연루되어 있는 남자들과의 싸움에서 룰루는 항상 승자로 남는다. 그러므로 룰루가 파멸하게 된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속성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룰루는 변태적인, 살인을 취미로 삼는 잭에게 죽음을 당하게 된다. 죽음은 바로 룰루에게는 최고의 기쁨이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의 룰루의 죽음은 그런 기쁨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룰루의 죽음은 자기 理想의 승리도, 실현도 아니다. 룰루는 비극의 여주인공처럼 희생당하는 것이 아니라 한낱 보잘것없는 짐승처럼 죽게 된다. 룰루의 속성은 변태살인 "잭"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모두 파멸되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룰루는 자신의 몸을 팔도록 강요를 받는다. 몸 팔기에 총 지휘자는 물론 룰루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결국 총으로 사살하게 되는 쉐엔이다. 쉐엔은 룰루의 사랑 때문에 룰루를 속이고 끝내는 자기 자신마저도 기만하게 된다. 쉐엔에게 권총을 쏘기 전에 룰루는 다른 남자들을 끌어 들이고 쉐엔을 속인이유를 단호하게 설명한다. 룰루를 단죄하는 쉐엔은 마지막 순간 비겁하게 스스로 총을 쏠 수가 없다. 살인자로서의 두려움뿐 아니라 쉐엔은 룰루보다는 자신에게 더 책임이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룰루가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어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쉐엔의 아들, 법적으로 룰루의 아들인 알봐이다. 알봐는 룰루를 지배하려는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다. 제1부 "지령" 속에서 알봐는 "지령”을 쓰는 작가로 스스로를 소개하며, 알봐는 베데킨트 자신이다. 제2부 "판도라의 상자"의 1막에서 알봐는 "지령이란나의 작품 속에서 벌써 나는 온갖 힘을 다해 이런 원칙에 입각하여 작업해 보려고 시도해 보았던 것입니다. 그 작품주인공의 모델이 되었던 여인은 지금 6개월째 철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칙이란 책 한권 읽어보지 않은 독자를 위해,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을 위해 글을 쓰겠다는 알봐의 말은 자연스런 동물적으로 때 묻지 않은 순수예술을 창조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을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알봐는 즉 베데킨트는 "내 직업의 순교자”라고 고백한다. 알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난 한 줄의 시도 쓸 수가 없었다.: 알봐는 룰루 비극을 쓰는 대신 그 비극을 함께 체험하며, 룰루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룰루의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룰루와 함께 파멸한다. 알봐의 정신적 세계는 룰루의 사랑의 한계를 넘어 존재한다.
룰루의 연인이며 때로는 아버지이기도한 이 작품에서 가장 그 정체가 분명치 않은 쉬골흐는 룰루를 늘 룰루라고 부른다. 쉬골흐는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 살아간다. 살아있는 이 시체는 결국 모두가 파멸되는 가운데서 도 혼자 살아남을 수가 있다. 2막에서 쉬골흐는 돈을 뜯기 위해 룰루를 찾아온다. 이 장면은 초현실주의적 의미를 갖는 난해한 부분이다.
"쉬골흐 : 우리는 썩은 육체란다....저 아래 땅 밑에는 벌레들이 요란한 잔칫상을 차려 놓았단다.
룰루 : 아빠 정도면 별로 뜯어먹을 것도 없겠네요.
쉬골흐 : 아서라, 애야! 너를 추모하는 남자들도 네 그것을 영원히 소중하게 모시지는 않는단다. 고것이 탄력이 넘치는 동안은 아름다운 꿀단지 소리를 듣지. 그렇지만 그 다음에는? 동물원에도 그런 것을 들여 넣어주지 않는단다. (일어나며) 아무거나 잘 먹어대는 야수들도 배탈이 날 테니까.’' 이 대화에서 쉬골흐는 사내들이 룰루의 육체를 탐내지만 한시적이며 언젠가는 룰루도 썩은 육체가 되어 동물원의 짐승도 먹지 않을 것이라 풍자적으로 예언하며 룰루에게 이 세상에서 낯선 존재로 남을 것을 충고한다. 그래서 쉬골흐는 이미 이 세상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기로 마음먹고 "다른 얼굴로 변했고" 또 "죽음에 대해 두려움 따위도 없는” 것이다. 쉬골흐는 이 세상을 잘 알고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는 송장이나 다름없는 쉬골흐만이 살아남게 된다. 쉬골흐는 룰루와 얽힌 갈등에 끼어들지 않으며 모든 비극적 상황을 미리 꿰뚫어 보면서도 손을 쓰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 비극에서 가장 잔혹한 인물이다.
쉐엔은 유일하게 룰루가 사랑하는 남자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룰루를 창녀로 만든 사람이다. 쉐엔은 룰루의 사랑을 받아드리지 않는다. 여기에 쉐엔의 비극이 있다. 룰루를 진정으로 사랑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규수와의 결혼을 계획하고 그 신부를 사랑한다고 스스로를 속이는데 비극이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쉐엔은 모순 속에 살고 있다. 쉐엔도 룰루를 통하여, 룰루의 조건 없는 사랑을 통하여서만 자기 성취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쉐엔은 룰루를 통하여 자신의 사회적 지위는 물론 정신세계마저도 파괴된다고 두려워한다. 룰루는 이점을 잘 안다. 결국 골이나 슈봐르츠의 죽음은 쉐엔하고 무관하지 않다. 쉐엔은 슈봐르츠에게 룰루가 시민사회의 도덕관에 맞는 여인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도덕성을 지닌 여인임을 자각하도록 설득한다. 이점이 바로 쉐엔이 스스로 인식해야 될 문제이기도 하다. 맹목적인 사랑을 생명으로 여기는 슈봐르츠는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쉐엔은 시민사회가 규정하는 도덕성과 인간적인 도덕성 사이에 차임점이 있음을 잘 안다. 시민사회의 통념과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쉐엔은 자신은 룰루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진실을 외면한다. 룰루는 이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쉐엔에게 오히려 사형집행과 다름없는 파혼의 편지를 쓰도록 강요할 수가 있다. 룰루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룰루를 사랑할 능력이 없다. 알바, 후겐베르크, 게슈뷔츠의 사랑은 자신들의 속성에 맞지 않는다. 맹목적인 알봐의 사랑, 열광적인 고등학생 후겐베르크의 사랑, 비정상적인 게슈뷔츠의 사랑들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골은 룰루를 값진 소유물로 여기며 보호한다. 골은 처음 장면에서 룰루를 사열대에 서서 보듯 룰루의 몸뚱이를 관찰하고 즐긴다. 정의내릴 수 없는 룰루의 특성이나 속성이 관찰의 대상이 되며 나름대로 가치를 평가받으며 정의의 대상이 된다. 룰루가 사내들의 관찰대상이 되기 때문에 룰루도 남자들을 낯선 사람으로 관찰한다. 알봐의 간청에 못 이겨 잠깐 룰루를 화가와 단둘이 남게 하자, 룰루는 그 순간 화가의 목표물이 되고 만다. 슈봐르츠가 룰루를 덮치고 키스하며 시간을 묻자 룰루는 놀이하듯 시계를 던지며 딴청을 부린다. 모든 행위가 룰루에게는 놀이인 것이다. 골이 갑자기 죽었을 때도 룰루는 놀라울 정도로 골의 죽음을 무덤덤하게 받아드린다. 2막에서 슈봐르츠와 결혼하지만 룰루는 언제나 슈봐르츠에게는 손에 잡히지 않는 낯선 존재로 남아있다. 피에로 의상을 입은 흉상화는 룰루의 속성을 잘 나타내준다. 골 박사의 주문으로 첫 장면에서 화가 슈봐르츠가 그리는 이 룰루 흉상화는 극이 끝나는 2부의 3막에 다시 등장한다. 이 흉상화는 바로 룰루 자신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목과 두 팔에는 젊은 육체가 터져 나올 듯이 표현되고 두 눈은 천진난만한 순진함이 베어 나온다. 이러한 순진성은 룰루가 창녀로 전락한 마지막 장면에까지, 그간 많은 어려움을 겪은 룰루지만 흉상화에 그려져 있는 순박함은 잃지 않고 있다.
피에로 의상을 입은 이 초상화의 모습은 바로 시민사회에서의 룰루의 역할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어릿광대인 피에로는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고 천박하지만 근본은 순박하며 변함이 없다. 여러 사람의 노리개가 되고 웃음을 사지만 속성 자체가 변화하지는 않는다.
프랑크 베데킨트 (Frank Wedekind)는 19세기 말 당시 유행 하던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실적인 자연주의 기법에서 벗어나 독특한 형식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쳤던 작가이다. 생존 당시에는 하우프트만 (G. Hauptmann)을 비롯한 자연주의 작가들의 주위에서 당시 타부 시 되었던 성(性)에 관한소재의 선택이나 독특한 표현주의적 기법을 사용한 극작법으로 나중에 표현주의 작가들로부터 그들의 선구자로 추대 받았다. 당시에는 자신의 독특한 문학형태 때문에 사회로부터는 외면당하고 다른 작가들로 부터는 소외당했으며 외톨이로서 그의 당대에는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던 작가였다.
베데킨트는 東 프리스 출신의 의사였던 아버지와 캘리포니아로 이주 했던 헝가리인의 피를 이어받은 여배우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1864년 7월 24일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나 1918년 3월 9일 뮌헨에서 죽었다. 어린 시절을 스위스의 룬첸베르크에서 보냈으며 그곳에서 초등학교와 아라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유년시절의 시는 괴테와 하이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또한 학창시절에 대한 회상은 특히 청소년비극 "사춘기” (Friihlings Erwachen, 1891)에서 그때 그 시절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부친은 베데킨트가 법률학을 공부하기를 원했으나 1884년 뮌헨에서 문학과 예술을 전공한다. 이로서 父子간에 불화가 생겼고 작가는 학업을 중단하고 식품회사 마기(Maggi)의 선전부장을 역임하게 된다. 부자간의 타협으로 베데킨트는 아버지의 요청을 받아들여 취리히에서 법률학공부를 1858년 시작하게 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그의 아버지는 곧 세상을 등지고 만다. 작가는 아버지의 어마어마한 유산을 물려받아 전업 작가의 길을 택하게 된다. 하우프트만과의 친교를 통해 제국의 중심지였으며 자연주의 문학운동의 중심지인 베를린으로 와서 그곳의 문학계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했으나 프로이센 경찰청은 그가 하노버에서 출생은 했지만 그의 부모들이 미국국적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베를린체류를 연장해 주지 않아 베를린에서 작가로서 뼈를 묻으려하던 소망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1889). 그 후 뮌헨으로 돌아와서 많은 문학 활동을 하지만 결국엔 1891년 파리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여류작가 플뤼마허 (Olga Pliimacher)를 통해 잘 알게 되었지만 특히 니체의 철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베데킨트는 독일 자연주의에 대해서 아주 비판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자연주의 작가들의 삶을 표현하는 문학적인 숙명론에 베데킨트는 인간의 삶에 대한 위대한 집착을 통해서 반대했다. 그의 처녀작 "거리화가" (Der Schnellmaler, 1889)로 베데킨트는 민중해학과 멜로드라마의 형식을 고전비극과 자연주의 드라마의 형식과 결부시키려고 노력했다. 이에 자신의 4막짜리 희극 "아이들과 바보들” 로 신랄하게 비판했던 비예술적인 사실주의에 등을 돌렸다. “사춘기” 역시 독일 자연주의에 대조적인 입장으로 내놓았으며 여기에서 비극적인 삶이 신분이 높을수록 더 비극적이라고 하던 "비극의 낙차”에서도, 고전적인 드라마의 규칙에서도, 더군다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복사해놓은 사실주의의 규칙 여하에도 달려 있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자연주의 작가들이 하층민들을 작중인물들로 선택해서 애처로운 삶을 통해서 동정을 구하려고 노력했다면 베데킨트는 보헤미안, 창녀, 서커스 단원들, 범죄자들을 작중인물들로 선택해서 대중을 놀라게 하였다.
망명자, 모험가, 방랑자, 작가들이 19세기의 문화,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모여들었다. 이에 베데킨트도 빠질 수 없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베를린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뮌헨에서도 특별히 재미를 보지 못했다. 베를린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를 말렸으며", 뮌헨은 "작품 활동과 삶 그 자체는 순전히 향락의 소굴” 같았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맞이한 파리는 열광의 도가니 같았고 베데킨트도 이 19세기의 중심가로 가고자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베데킨트를 19세기의 중심지였던 파리로 이끈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파리가 그에게 협소한 지협적인 예술영역이 아닌 유럽예술무대를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파리의 예술무대는 전위예술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고 또한 많은 이야기의 소재들을 부여했다. 파리에서의 체류기간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배웠으며 체험합수 있었으나 베데킨트는 항상 이방인 이라는 느낌을 가졌었다. 이곳에서 독일어와 불어로 쓴 “고통의 춤” 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1892년에서 1894년까지 怪奇悲劇 "판도라의상자”(Die Buchseder Pandora)를 집필하면서 또 다른 작품들을 구상하며 극작가로서 부각을 나타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자신의 괴기비극을 3년간의 파리생활을 마감하려던 쯤에 출판인 랑엔(Albert Langen)을 만나게 되었다. 랑엔은 어느 재벌가의 아들이었으며 당시의 가장 현대적인 문학작품들을 출판하는 국제적인 규모의 출판사를 세우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집요한 요구로 베데킨트는 검열에 심열을 기울이며 이 괴기비극을 "지령”(Der-Erdgeist)으로 부분으로 수정하여 베를린에서 1895년 출판하게 되었다. 별 다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1898년 이 작품은 작품들 중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1895〜1905년 사이에 그는 베를린,뮌헨,취리히,드레스덴,라이프치히를 오가며 정처 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생활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던 이 시기에도 많은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루쌀카 영주부인"(DieFurstinRussalka.1897). 시집 사계절”(DieJahreszeiten.1899), "케이트 후작”(DerMarquisvonKeith.1901)" 판도라의 상자. 인생이란 그런 거야'' (Die Buchseder Pandora, Soistdas Leben.1902). 이 시기에 “심플리치 씨무스”(Simplicissimus)의 주필로 일했으며 연극평론가, 연극인으로서 일하기도 했다. 사소한 일 때문에 1898년 불경죄에 걸려 수배령이 내려졌고 1899년 자수하여 8개월 간의 교도소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 뒤 "인젤‘'(DieInsel) 주간지에서 일하게 되었고 1901년부터는 뮌헨 “11人의망나니들”이란 카바레에서 자신의 시를 읽기도 하고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때 에헤르덴(M.Herden), 솜바르트(W.Sombart),케어(A.Kerr),크라우스(K.Kraus)등을 사귀게 되었다.
1906년부터 베데킨트는 본격적으로 드라마를 쓰는데 전력을 다한다. 그러나 작품들은 빌헬름 정권에 의해 가차 없이 난도질올 당하는 게 일수였다. "판도라의 상자"의 초고는 1906년 법원의 판정에 따라 유포되는 것이 금지되었고 잔여분들은 폐기처분되고 말았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난 뒤 그의 작품들은 거의 무대에 올려 지지 않았다.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많은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風俗劇인 "음악" (Musik. 1908),단막극 "검열“ (Die Zensur. 1908), 문학회극인 "오오아" (Oaha. 1908),일명 "귀신 쫓기”라고 하는 "賢者의 돌" (Der Stein der Weisen. 1909), 연극적인 詩라고하는 “시몬 혹은 치욕 그리고 질투” (Simon oder Scham und Eifersucht. 1914),검열에 걸려서 상연은 금지 된 史劇이긴 하지만 독일문학에 있어 최초의 역사극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재상 비스마르크" (Bismark. 1919년)등이 발표되었다.
베데킨트는 재치가 풍부한 사회 풍자적이며 별난 극작가로서 그의 작품의 문체상으로 보면 자연주의와 표현주의의 중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反부르조아적인 보헤미안과 도덕주의자의 빈정거림과 냉소적인 태도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가이다. 베데킨트는 우스꽝스럽고 괴이하게 희화화한 정신과육체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호했다. 작품을 통해 중산층들에게 경악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아주 공격적으로 사회의 몰락현상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고 있으며 인습에 얽매여 마치 중산층들이 性을 적대시하기라도 하는 듯한 위선적인 도덕관을 부도덕한 것으로 질타하고 있으며 또한 위선적인 도덕관을 지닌 그들의 관능적인 쾌락과 육체의 아름다움과 정사에 대해 즐거움을 갖는 방탕한 생활을 육체의 해방으로 대치시킨다. 베데킨트가 사회의 소수집단 즉 보헤미안, 창녀, 서커스 단원들, 범죄자, 고단수의 사기꾼들이 이것을 대변해주는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그렇게 해서 편협하고 고루한 중산층들과 중간층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흑백론이 베데킨트의 작품세계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게 되고 그 결과 소위 부도덕한 장면들 때문에 끊임없이 검열의 고통을 겪게 되었다.
문학사 적으로 볼 때 베데킨트의 중요성은 뒤따르는 표현주의 연극의 문체형태나 구조 형식을 보다 먼저 사용했다는 것과 "질풍노도”와 G. 뷔히너의 문체를 채택했으며 자신을 따르던 많은 극작가들의 우상이었으며 특히 브레히트 (B. Brecht)의 스승으로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에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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