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조지 버나드 쇼 '바람둥이'

clint 2015. 11. 1. 08:19

 

 

 

 

 

쇼의 『바람둥이』에 나타난 핵심 주제는 먼저, '여성답지 않은 여성' (unwomanly woman) 즉 '신여성'(new woman)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생명을 창조하는 데 있어서 여성의 기능이 남성보다 더 위대하고 중요하다고 생각 하여 여성에게 큰 관심을 경주하는 동시에,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고심하였다. 따라서 쇼의 관점에서 볼 때 불합리한 전통과 관습은 인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이처럼 진보적인 쇼는 억압을 받아온 여성의 편에 서서 약자들을 옹호하였으며, 작품 속에서 전봉과 관습에서 탈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는 여성을 보여줌으로써 여성의 위상 제고에 크게 기여하였다.
쇼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그의 상상 공간 속에서 자신들의 성스러운 과업을 자각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인물들은 인습과 교육이 재단해준 의상 아래서 항상 변화하는 모험의 세계에 도전하는 적극적 인물들이다. 그의 작품 속에 여성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빅토리아 시대의 가치관에 순응하는, 즉 가정 밖의 문제는 해결능력이 거의 없는 여성이다. 다른 하나는 실제의 여성보다 더 과장된, 지나치게 자신만만하고 당당하며 거칠고 아름다우며 지적인 인물로 현실감은 부족하지만 남성적인 특성이 두드러지는 새로 운 유형의 여성이다. 쇼는 이와 같이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일반적인 성격인 '여성다운 여성'라는 상치되는 '신여성'을 창조하여 그의 독창적인 여성관을 제시했다. 신여성은 여성에 관한 관례적인 것을 거부하고 남성들이 정해놓은 여성으로서의 행동규범을 따르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법적으로나 지적으로 사회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있는 것을 거부한다. 이와 같은 신여성들은 가족의 이상, 의무감, 자기희생에 반대하는 주장을 한다. 이런 신여성들은 대변혁을 상징하고 성의 영역을 분해하며 어머니다운 여성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부정한다.

 

 

 

쇼의 작품 속에 묘사된 '신여성'은 언제나 작품의 중심에 서서 창조적이고 불요불굴의 힘으로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인물이다. 그러한 신여성은 종래의 여성과는 다른 사회적 지위와 창조력을 가진 것이 특징이므로 기존 사회의 질서와 필연적으로 갈등을 겪게 되나, 이는 파괴나 부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더 좋은 세상을 전제로 한 창조적 진화를 위한 갈등이고 바로 이 점에서 그의 신여성관은 '생명력' 사상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쇼의 여성은 확고한 사회적 지위와 능력을 소유한 독립적 주체로서 힘찬 '생명력'을 가지고 창조적 진화 과정을 수행해 나감으로써 이상적인 사회를 이룩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하고 나아가 인간과 사회의 각성과 구원을 주도하는 새로운 여성이다. 한 마디로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난 여성의 역할은 사회제도의 모순과 부조리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그의 사상을 효과 적으로 전달하는데 가장 필요한 대변자일 뿐만 아니라, 전통과 관습을 탈피해 독립적이고 강한 의지를 지닌 활기찬 움직임으로 극을 주도하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내용은 『바람둥이』에서 차터리스의 첫째, “입센 클럽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참가자가 여성이면 여성답지 않고 남성이면 남성답지 않음을 보장하는 남성과 여성 양쪽의 추천이 있어야만 가입할 수 있습니다” 둘째, "여성스럽지 않은 여성들은 그늘의 삶을 위해 일하고 그들 스스로 자신을 보살피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습니다.”의 대사와, 커스버트슨의 첫째, "흡연실은 항상 여성들로 붐비지” 둘째, “이 클럽에선 내가 맘 놓고 파이프 담배 한 대 즐길 곳이 없어. 항상 여자들이 드나들며 담배를 피우곤 하지”의 대사, 그리고 줄리아의 첫째,"어떤 식으로든 여성이라고 돌봐주면 클럽 규칙에 어긋나는 것을 아시죠.' 둘째,"선생님 차터리스는 그들이 여성이란 것에 결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들에게 저나 다른 사림에게 말하는 것처럼 대하죠, 그게 선생님의 성공 비결이에요. 선생님은 그 들이 성 때문에 대우 받는 걸 얼마나 불쾌하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있지요”라는 대사에서 두드러지게 표출되고 있다.

 

 

 

쇼의 『바람둥이』에 나타난 핵심 주제는 다음으로, 작품의 제목이 되고 있는 "바람둥이”이다. 이러한 내용은 차터리스의 첫째, "그럼 내가 만난 여자 중에 절반이 날 좋아하게 되는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요? 내 잘못이 아니에요 난 싫어요, 지루해서 딴 생각을 할 지경이죠. 처음엔 우쭐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지만, 줄리아가 처음으로 과감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내가 사랑 고백을 하게 된 거죠, 그렇게 된 거에요 그렇지만 곧 지겨워졌죠. 여자들이 날 따라다니며 귀찮게 한 것이지 내가 먼저 다가서서 여자들을 따라다닌 게 절대로 아니라오. 절대로” 둘째, "알다시피, 나는 전에 수도 없이 바람을 피웠고 그리고는 그들과 해어진 후 그녀 줄리아에게 돌아갔으니까요" 셋째,"이제 내 권리를 주장하겠어. 내가 원할 때 당신 줄리아와 헤어질 권리 말이야. 줄리아, 진보적 관정에는 진보적 의무가 있는 거야. 남자를 발밑에 두려고 하면 진보적 여성이 될 수 없어. 남자의 의지에 상관없이 그렇게 붙잡아 두는 건 인습에 빠진 여자들이나 하는 거야. 진보적인 사람들은 멋진 우정을 만들지. 인습에 빠진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결혼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그 첫 번째 의무가 신의 이지. 우정은 일부 사람민이 알고 그 첫 번째 도리는 상대의 마음이 변하면 그걸 알아차려 주저 없이, 그리고 불평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야”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조지 버나드 쇼
영국의 극작가 겸 소설가 이자 비평가로 《인간과 초인》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라는 묘비명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출생인 그는, 소설가이자, 희곡작가, 비평가이자 사회주의 이론가였다. 1876년 런던에 나와 점차로 사회문제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 온건좌파 단체인 '페이비언협회'를 설립했다. 1893년에는 매춘부를 다루어 여성의 입장을 변론한 『워렌 부인의 직업』(1893)을 쓰고 비로소 극작가로서의 지위가 확립되었다. 그 후 희극 『캔디다』(1894), 『시저와 클레오파트라』(1898), 『악마의 제자』(1898) 등 10여 편의 희극을 써냈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앞서 설명한 그의 최대걸작인 『인간과 초인』(1903)을 써서 세계적인 극작가가 되었다.
그의 희곡 속 인물은 거의가 작가의 대변자이며 그 작품은 자기 사상을 진술하는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비난, 혹은 그와 반대로 쇼는 단순한 감상적인 오락작가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적지 않지만 표면적 사상 선전극 및 오락극 내부에 깃들인 참된 아이러니스트로서의 쇼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의 반쪽만을 알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나의 전 작품을 적어도 2회 이상은 읽고 그것을 10년 동안 계속해달라."라고 말한바 있는 조지 버니드 쇼는 스위프트 이래로 가장 신랄한 격문의 저자였고, 영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악평론가였으며, 그 당시 가장 탁월한 극비평가였으며 정치학·경제학·사회학에 관한 비범한 연사이자 평론가였고, 가장 많은 편지를 남긴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