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밥 묵고가소"는 부모님과 할머님 제사를 모시는 찌지리 가난한 둘째의 이야기다. 형은 연극한답시고 집안은 돌보지도 않고, 게다가 교회 다니느라 제사를 모시지 않겠다는 거다. 그래서 부모님이 물려주신 집에서 사는 둘째가 임신 4개월의 아내와 함께 제사를 지낸다. 형은 이런 자신의 입장이 불편해서, 술에 취해 기일 날 동생 집에 찾아오고, 현실적인 형의 아내는 오직 '주님'만 믿는 이 시대 대표적인 '아줌마'다. 가난한 이들의 삶이 정겨워 보였는데, 죽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 이렇게 함께 죽은 세 귀신이 멧밥 얻어먹으려고 이 집에 나타나면서, 형과 동생의 갈등과 싸움이 증폭된다. 우리 시대 북과 남의 투쟁처럼, 여와 야의 그치지 않는 공격처럼, 형과 동생은 주먹다짐까지 한다.
조상을 섬기는 우리의 전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그런 문화가 사라져 가는지? 작가인 최해주는 구성지게 잘 풀어 놓았다. 정말 리얼했다. 연기도 뛰어난 앙상블과 개인기를 잘 보여줬지만, 극중의 상황과 대사, 갈등의 요소가 완벽할 정도로 구성이 잘 되어 있었다. 관객도 극이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갈등이 증폭될수록, 정말 그럴듯한 김재구의 내면적 연기가 무르익어 갈수록, 훌쩍이는 소리가 잦아졌다. 나 역시 콧등이 시큰해 졌다. 부모님들이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길러놓고, 돌아가시면, 멧밥이나 한 그릇 얻어먹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그 젯상마저 엎어버리는 경우가 생긴 "멧밥 묵고가소"의 공연은 20년도 훨씬 전에 본 이윤택의 "오구"와 정말 완전히 다른 편에 서있었다. "오구"가 죽은 사람을 상징화, 의인화해서 한국적 제례의식을 희화화 했다면, "멧밥 묵고가소"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경제적 관점'과 '종교적 혼돈'으로 정교하게 풀어내고 있다. 웃기는 연극인 "오구"와 가슴이 징하게 아픈 연극 "멧밥 묵고가소"는 20년의 차이를 두고, 결국 진화하는 우리 연극의 모습이다. 불행한 한국인의 과거와 갈등과 투쟁으로 개판이 된 오늘날 한국의 '전통'과 '현실'의 싸움터에 장밋빛 미래를 꿈꿀 수는 없어도, 관객 모두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둘째아들의 마지막 대사이자 이 연극의 제목인 '멧밥이나 묵고 가소'는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음을 예견하도록 해서 뿌듯했다.
작가의 글 - 최해주
어느 여름. 모기에 물린 자국을 보며 문득 가족이 떠올랐습니다. 내 몸뚱아리에 자리 잡고서는 나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이 녀석을 보며 가족을 떠올렸습니다.
잊혀질만하면 간지럽고 그래서 긁고 나면 순간 시원하지만 더욱 그 크기는 커져만 가고 너무나 짜증이 나서 성질을 부리며 마구 굵어대면 그럴수록 상처는 더 깊어지는 모기자국. 하지만 그냥 놔두고 시간에 맡기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또 다른 곳에 생겨나는 수많은 모기자국. 매년 반복되는 그 모기자국을 보며 어쩌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가족끼리의 갈등과 상처도 그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가족의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창끝을 겨누고 결국 그 창끝에 자기가 상처를 입으면서도 해 결될 수 없는 가족의 관계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모기 자국과 끊임없이 계속되는 가족의 관계처럼 이 작품이 오랜 시간 공연되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20대 중반에 연극을 하기위해 서울로 올라오며 어떤 것도 보장되지 않은 제 미래에 한 가지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서른 될 때까지 치열하게 도전하고 그래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이다' 평생을 연극에 이바지하시는 선생님들의 시선에 어쩌면 고작 몇 년을 연극에 투자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마음먹는다는 것이 다소 건방지게 들리실 수 있지만 제게 연극은 그만큼 도전하기 어려운 예술 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이번 당선은 제게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상경하며 다짐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즈음 주신 이 기회는 이제 몇 년이라는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 인생 속에서 목표를 재설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저도 연극 속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 당선은 제가 제 길을 확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데 큰 기쁨을 가집니다. 지금 제가 가지는 기쁨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연극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연극인이 되도록 정진 하겠습니다.
이번 당선의 기쁨을 주신 여러 선생님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먼저 다소 거칠고 정리되지 못한 글을 흥미있게 바라보시고 인큐베이팅이라는 특성을 고려 가능성을 봐주신 이송 선생님을 비롯한 관계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제자에게 여러 기회를 주시며 단점을 하나씩 차근차근 채워주시는 윤우영 선생님, 창작의 중요성을 말씀해주시며 창작을 독려 해주신 박근수 선생님, 항상 가까이서 제자의 한걸음 한걸음을 흐뭇하게 바라봐주시는 김광선 선생님, 제게 극작의 세계로 인도해 주신 엄국천 선생님, 항상 저의 창작활동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박형재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바쁘신 와중에도 정리되지 않은 제 글과 생각의 장점을 봐주시고 그 장점을 구체화시키고 단점을 보완해주신 튜터 김재엽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바칩니다.
마지막으로 힘들 수도 있는 창작의 길을 기꺼이 같이 걸어가 주는 우리 '광대모둠' 식구들과 기쁨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상경하며 마음먹었던 다부진 각오로 이제 더 큰 세상을 바라보며 여러 선생님들 이 걸어가셨던 그 길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따라가겠습니다. 훗날 훌륭한 극작가 및 연출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선생님들의 많은 질타와 격려 부탁드리겠습니다.
튜터의 글 - 김재엽.
이번 창작희곡 인큐베이팅 프로젝트에 튜터를 맡으라는 연락을 받고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고사했습니다. 솔직히 2002년 신춘문예로 등단 한지 벌써 9년째가 되어 가고 연극판에서 작품을 쓰고 연출한지도 벌 써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정말 완성도 높은, 제대로 된 희곡 한 편을 써 본 적이 있는지 자문해보면, 아직 써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듭니다. 그러니, 누굴 가르치거나 조언을 하기에 앞서 내 스스로가 좋은 희곡 한 편을 완성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새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 탓인지, 더 이상 변명은 지어내지도 못하고 작품 한 편을 배정받게 되었고 덜컥 선정 작품이 담긴 메일이 보내지고야 말았습니다. 남의 작품을 읽고 그 작품의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한 다는 것은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이고 또한 책임지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메일을 열어보는 순간은 참으로 고역이었고 끝까지 거절하지 못한 내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작품은<당신 집안의 제삿날은 조용하십니까?>라는 제목처럼, 다소 순진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제목처럼 그 작품은 소박하고 순수했으며, 작품을 읽을 때마다 이 작품을 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연극에 대한 순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화끈하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가득한 이 작품은 최해주 작가가 처음으로 제대로 써 본 자신의 첫 창작 희곡입니다. 작품 안에서 경상도 어느 지역의 제삿날의 풍경 속에서 애끓는 가족들의 애증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러한 가족애를 애절 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어 오늘날의 제사의 풍속도와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드는 펄떡거리는 힘이 느껴지는 젊은 연극이었습니다. 덧붙여 작가는 책상물림으로 희곡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무대에 서 배우들의 입을 통해서 길러진 언어에 대한 감각으로 희곡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머리로 쓰는 글이 아니라, 귀로 기억해내는 글을 쓰는 이 젊은 작가에게 점차 호감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상대로 작가는 연출을 겸하는 연극작가로서의 자기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점은 저 자신과 비슷하여 극작/연출을 동반하는 연극작가의 기능성과 그에 못지않은 한계를 동시에 이야기해 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최해주 작가와 저는 수차례에 걸쳐 여러 카페와 바를 전전하며. 이 작품의 장단점, 그리고 작품의 최초의 의도에 대해서 논의를 거듭하였습니다. 결국 이 작품이 연극으로 무대화되었을 때, 관객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추적해 보았습니다. 그리 고 그 말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으로 말할 것인지를 결정해야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좋은 희곡 작품이 되기 위해서 작가의 직접 적인 목소리를 없애고 살아있는 캐릭터로서 말하고 행동하는 연극적인 글쓰기를 모색해 보았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최해주 작가는<멧밥 묵고 가소>라는 개성적인 새로운 제목의 수정 본을 보내 왔습니다. 최해주 작가는 처음 써 보는 희곡임에도 불구하고 극작가나 연출가의 목소리보다는 배우와 관객에게 좋은 설계도를 제공하는 올바른 연극적인 글쓰기에 대한 주문을 이해하고 열정적으로 모색한 끝에 매우 간결하고 명확한 수정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초고에서 지적되었던 동어반복이나 설명적인 대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행동을 이끌어내는 대사들로 역동적인 에너지를 보여주었으며, 무대에서 보여 지는 개별 장면 하나 하나의 응집력, 그리고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개성 있는 성격구축에 많은 진전을 보였습니다. 수정본을 읽는 순간은, 지금 제 기억에, 내심 최후에 남는 두 작품으로 선정되어 무대에 올라가는 행운을 기대해 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흑심을 품게 만든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흑심은 현실이 되어 좋은 공연으로 이어지길 고대하면서 연습이 진행 중입니다.
열려 있는 마음으로 어설픈 튜터의 얘기를 들어준 최해주 작가와의 인큐베이팅 과정은 매우 냉철하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자 신의 것으로 만드는 영리함은 최해주 작가가 공동체적인 작업에 잘 맞 는 좋은 연극작가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낭독공연이 끝난 후, 함께 한 선후배 배우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순정파 연극작가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여기 한국연극에 자신의 순정을 바치면서 새로운 지각변동을 일으킬 새로운 젊은 연극작가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미래의 관객 여러분들께서도 그의 작품을 통해서 사람 냄새나는 인물들 의 향연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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