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혜순 '이봐요!'

clint 2015. 10. 31. 09:44

 

 

 

 

 

2010 창작희곡작품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선정된 이 작품은 칠십 평생 가정이라는 짐 하나를 등에 지고 살아온 엄한 아버지이자 무뚝뚝한 남편인 천한필이 칠월칠석날 평생 안하던 일을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인과 딸에게 온정을 베풀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이별의 칠석비가 내리는 새벽에 노부부는 민들레 홀씨가 나부끼는 먼 길을 떠난다. 잔잔하면서도 정감 있는 내용으로 작품을 환상적으로 이끌어가면서 감동을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작가의 글- 김혜순
<그 다음 역>공연 끝난 후 윤용호교수님, 서종택 교수님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문정희 선생님은 수의에 대한 시 '베개'를 들려주셨다. 수의와 배넷저고리를 소재로 희곡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작품은 우연한 만남에서 살들을 채워나갔다. 화장터는<힘>을 쓸 때 처음 갔었다 화장하는 시신이 없어 발길을 돌리려고 할 때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던 20대 초반 공익근무요원이 다음에 오라면서 영혼편지(망자에게 보내는 인터넷편지)를 묶은 책을 주었다. 등단 후 작품이 실린 책을 들고 화장터를 다시 찾았는데 그날도 이상하게 화장을 기다리는 시신이 없었다. 그 공익근무요원은 영혼편지 책이 새로 나왔다며 또 한 권을 주었다. '이봐요 할멈'에게 보내는 할아버지의 편지는 그 책에 실려 있었다. 영동에는 포도농사를 짓던 키 작은 노총각 명수 아저씨가 살았다. 그가 시 "아버지의 논"을 꼭 읽어보라고 권했지만 읽지 않았다. 다음 해 여름, 팔순 노모와 수확을 앞둔 포도밭을 남기고 그는 갑자기 먼 길을 떠났다.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듣고서야 그 시를 찾아 읽었고 작품에 인용하게 되었다. 사채업자에게 끌려가 10년 넘게 돌아오지 않고 있는 가장의 이야기는 지아 어머니가 들려주었고 부산사투리는 신들샘이 도와줬다. 도서관에서 작품을 수정하는 동안 우리 집 '이봐요' 씨는 묵묵히 빨래를 개고 청소기를 돌렸다
까치가 하늘을 날다 떨어진 작은 나뭇가지를 물어다 집을 짓는 걸 본 적이 있다. '이봐요!' 그렇게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우연히 만나 만들어졌으나 집은 우연만으로 완성될 수 없었다. 이 집을 짓고 나면 정말 쉬고 싶었다 내가 쓴 글이 나를 부끄럽고 우울하게 만드는 순간은 수시로 찾아왔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이 시간이 꿈이면 어쩌나 싶다. 항상 든든한 후원자인 남편과 아이들, 작품지도와 공연을 위해 애써 주신 신동인 연출님, 신춘문예 작가에게 『봄 작가 겨울 무대』를 마련해 주셨던 최용훈 연출님, 극작을 가르쳐주신 홍창수 교수님, 독문학과 인생의 그윽함을 가르쳐주신 윤용호 교수님, 친언니처럼 끌어 준 정경진 작가님, 워크샵 10기 동인들, 그리고 용기와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튜터의 글 - 신용인
몇 년 전에 연출가협회에서 진행한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던 나는 한 원로연출가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뜩 났던 기억이 있다. ''연극은 태생이 우주적인 것인데 요즘 한국연극의 시선은 안방에 머 물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세미나가 끝나고 캔 맥주 하나 사들고 그냥 낙산공원에 올라갔다. 대학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멍하니 대학로의 많은 지붕들을 쳐다보고 있자니 그 많은 극장들이 어디 있는지 제대로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그날 이후로 나는 "연극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나는 왜 연극을 하는가?”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연극을 전공하면서 1학년 때부터 줄곧 입에 달고 다닌 말이었지만 정작 그걸 고민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몇 개월간의 튜더 작업을 진행하면서 김혜순 작가와 함께 고민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김혜순 작가의<이봐요?>초고를 읽고 처음 만난 자리에서 물었다. "왜 이 이야기를 굳이 연극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세요?” 그리고 희곡<이봐요!>가 연극적인 형식으로 발전함 수 있는 길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나는 희곡이 연극의 형식을 지향한다면 연극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리는 것이 희곡을 연극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희곡 속에서 공룡이 나와도 상관없다. 어차피 연극은 우주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TV가 나온다면 공연장에 온 관객들은 재미없어 할 거다. 요즘처럼 스마트한 시대에 연극이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불가사이는 무엇일가? 나는 연극이 불편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여행이 코앞에 있는 시대에 우리는 비오는 날 자연스럽게 우산을 쓴다. 그리고 우산을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혜순 작가가<이봐요!>를 통해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눈물과 삶의 기쁨을 노래해줄 수 있는 멋진 극작가로 성장해나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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