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설유진 '씨름'

clint 2015. 10. 31. 10:40

 

 

마을에서 함께 자란 건만과 웅치는 전쟁터에 끌려왔다가 전투 중 둘만 살아남아 동굴로 숨어든다. 적군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던 건만과 웅치는 배고픔으로 아사 직전에 몰리게 되고, 결국 참지 못한 웅치는 건만을 남겨두고 동굴 밖으로 뛰쳐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고 살아 돌아온 건만은 어릴 적부터 마을의 희망이었던 웅치를 대신해 마을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이장이 되어 마을 사람들과 공납을 바치러 군청에 들렸다가 전쟁터에서 군수의 목숨을 구했던 인연이 밝혀지면서 전쟁영웅으로 칭송을 받게 된다. 퇴락했던 시골마을은 군수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공장이 들어서며 발전해 가고, 웅치의 여자였던 수아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8년 만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웅치가 마을로 돌아온다. 기뻐하는 마을 사람들과 달리 건만은 웅치를 경계하는데…

 

 

 

 

 

극의 주인공인 건만과 웅치는 본의 아니게 전쟁터에 끌려갔다가 살아남아 동굴에 숨어든다. 동네에서 촉망 받던 청년 웅치와 겁쟁이로 놀림 받던 건만은 동굴에서 나오면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되고 서로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6.25 전쟁을 연상할 만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지만 극은 시공간을 특정하지 않은 채 진행된다. 인물들이 동굴과 마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겪는 일화들을 통해 관객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생존의 극한 상황 속 내가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사회의 가혹한 매커니즘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제한적인 시공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역사로까지 확장돼 읽히게끔 하는 데는 전쟁 외에 씨름이라는 소재가 한 몫한다. 어린 시절부터 이 마을 사람들이 익숙하게 접해온 씨름은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며 벌이는 생존경쟁에 대한 한국적인 비유다.

박정석 연출가는 “이 작품에는 정서적인 매력이 있다”면서 “우화적인 부분과 직접적인 부분이 섞여 교묘한 줄타기를 하는 과정에서 작가 고유의 극장 문법이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박 연출가는 경사진 원형 판을 기본 무대로 삼되 무대 뒷편에 단을 두고 회상 장면을 곁들여 한국의 근현대사가 우화적으로 보이게끔 만들 예정이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동굴로 비유되는, 어떤 좁은 공간에 머물다가 그곳에서 탈출하면서 운명이 뒤바뀌는 이야기예요. 사연이 확장되는 셈이죠. 극중 모든 인물은 과거에서 현재로 오며 변화를 겪습니다. 굴곡진 역사를 살아가는 두 사람을 보면서 관객들이 ‘나도 어떤 상황에 몰리면 나를 포장하고 살아가겠구나, 불의인 걸 알면서도 암묵적으로 동의하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나도 나쁜 놈인데 남만 욕하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사는 게 옳은 지에 대해 더 이상 얘기 안 하는 세상에 도덕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 설유진 작가

 

 

씨름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다소 선이 굵은 이야기를 그린 까닭에 경력 많은 남자작가의 작품일 것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사실 <씨름>은 30대 초반인 설유진 작가의 처녀작이다. 처음 쓴 희곡으로 지난해 서울연극협회의 ‘희곡아 솟아라’ 당선작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설유진 작가는 작금의 한국 사회를 전쟁터로 바라보고, 근현대 질곡의 역사가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고 주저 없이 설파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소까지 등장해 한 판 싸움을 벌이는 이곳의 풍경은 한국인이라면 그리 낯설지 않게 느껴질 터. 작품은 이처럼 진한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진중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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