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배삼식 '열하일기만보'

clint 2015. 10. 31. 12:18

 

 

 

 

 

 

 

<열하일기만보 熱河日記漫步>는 <허삼관매혈기>, <주공행장>등의 작품으로 현재 한국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극작가 배삼식의 신작으로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1805)의 생애와 그가 남긴 글들, 그 중에서도 『열하일기』를 주된 모티프로 삼아 새로운 이야기로 구성한 창작극이다.
이 작품은 열하일기의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명확한 시공간을 제시하지 않으며 정체조차 모호한 짐승이 되어 나타난 주인공 ‘연암’의 모습을 기이하게 그려낸다. 오랜 세월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살아온 어느 마을에서 짐승 연암이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며 일어나는 혼란과 변화를 통해 누구나 경계선 안에 안주하려고 하면서도 본능처럼 내면에 품고 있는 인간의 호기심과 기이한 것에 대한 욕망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병적인 호기심 때문에 불면증과 거식증을 동반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던 연암 박지원의 새롭고 기이한 것에 대한 탐닉은 극중의 짐승 연암의 모습에 투영되어 있으며, 「양반전」에서 은근하면서도 신랄하게 속내를 드러내고 「호질」에서 우화 형식의 자유로움을 빌어 당시 사회상을 담아내었던 연암의 ‘우스갯소리’와 같은 화법에 따라 유쾌하게 진행된다.
이처럼<열하일기만보>는 우화적인 내러티브를 통해 다양한 상징과 은유를 펼쳐 보임으로써 어떠한 방향성도 없이 무조건 기이하고 특별하며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온통 가득 차 있는 현대 사회를 한번 쯤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또한 실제 연암의 마부였던 창대가 극중에서는 짐승 연암의 주인으로, 하인이었던 장복이 마을사람으로 등장하고, 산여(酸與), 거보(擧父) 등 『산해경』 속의 신화적 동물들이 동네 아낙이나 소년으로 그려지는 등 극중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인물들의 이름에서 언뜻언뜻 실제 모델을 발견하는 재미도 적지 않을 것이다.
호기심 때문에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연암 박지원처럼, 미중 역시 코끝 가려움증이 원인이 되어 잠을 설치다 생각을 하고 말을 하게 된다. 시야를 가리는 모래 폭풍으로 줄을 잡아야만 길을 다닐 수 있는 ‘열하’ 마을 장로들은 짐승이면서 짐승의 경계를 넘어선 미중의 말하기를 금지한다. 그러나 기이한 것을 채집하러 다니는 제국의 어사가 등장하자 마을을 지키기 위해 다시 미중에게 말할 것을 요구한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미중이 들려주는 너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에 감화되어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하지만 저마다 이해관계 때문에 끝내 떠나지 못한다.


이 작품은 1970년대 이후 다시 부상한 알레고리 계열의 희곡이다. 인문학적 깊이와 사유를 갖춘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2007년 손진책 연출, 극단 미추 제작으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초연했다. 2007년 대산문학상 희곡상, 동아연극상 대상과 희곡상을 수상했다.

 

 

 

줄거리
말(馬)도 아닌 것이 말(語)을 하는데 말마다 기이하다
사방에 보이는 건 오로지 벌판뿐인 작은 마을 ‘열하’의 어느 봄날, 이곳에 호마도, 조랑말도, 나귀나 노새도, 개도 아닌, 그러면서도 이 모든 짐승의 특징을 조금씩 지닌 어중간한 네 발 짐승 한 마리(연암=미중)가 있었다. 노인 창대와 여자아이 만만은 보름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은 이 짐승을 걱정하는데, 동네 소년들, 아낙들, 촌장과 사내들은 저마다 짐승의 이상한 증상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어느 새벽 소소한 가려움에서 시작된 ‘생각’들은 수많은 물음들을 쏟아내었고 이로 인해 우울증을 앓던 짐승은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한다.
말을 하는 짐승 연암 때문에 마을은 떠들썩해지고 연암이 들려주는 기이한 이야기들은 주요 화제 거리가 된다. 밖에 대한 이야기와 기이한 것들을 금지하는 마을에서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연암을 놓고 장로들은 밖에서 보낸 첩자라며 사형을 명하지만, 이 짐승을 사라진 아들 미중처럼 생각하는 창대는 병일뿐이라며 기다려 달라고 애원하고 마을 사람들도 여러 가지 이유들을 들어 반대하자 우선 함구령만으로 형 집행이 유보된다. 창대는 연암에게 말을 멈추고 짐승의 울음을 울라고 종용하며 굽실거리면서까지 말의 울음소리를 가르치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황제를 위해 기이한 것을 찾아다니며 586년 만에 다시 이 마을을 찾아왔다는 어사는 하루 안에 마을의 기이한 것, 즉 이념이 담긴 어떤 것을 찾아오지 않으면 제국의 지도에서 마을은 물론 마을 사람들을 깨끗하게 지워버리겠다고 공포하는데…….

 

 

 

 

작가 / 배삼식
1970년생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과정 졸업
최근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극작가.
1998년<하얀 동그라미 이야기>를 시작으로 번역극과 창작극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정극과 마당놀이, 음악극에 이르기까지 여러 무대예술 장르의 밑그림을 빼어난 솜씨로 그려내고 있다.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탁월한 구성력과 맛깔스런 대사를 구사해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박지원의 원작을 모티프로 특유의 상상력과 재기를 한껏 발휘한 독창적인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그의 재능을 한껏 펼쳐 보인다.
[주요작품]
1998년 B.브레히트작<하얀 동그라미 이야기>번안
(김석만 연출/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1999년<하얀 동그라미 이야기>번안 (김석만 연출/학전블루소극장)
2000년 서울연극제 특별초청작<11월>작 (윤정섭 연출/문예회관 소극장)
2001년 연극원 제24회 정기공연<오랑캐여자 옹녀>작
(한국예술종합학교 크누아예술극장)
2001년 예술의전당 주최 토월연극시리즈<인생은 꿈>번역, 각색 및 드라마터지
(김광림 연출/예술의전당 토월극장)
2003년<정글이야기>작 (정호붕 연출/예술의전당)
2004년<빵집>극본 (마뉴엘홀스트 연출/문예회관 대극장)
2004년<허삼관 매혈기>작 (강대홍 연출/동숭아트센터 동숭홀)
2004년<최승희>작 (손진책 연출/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004년<마당놀이 삼국지>(손진책 연출/상암월드컵경기장 마당놀이전용극장)
2005년<마당놀이 마포황부자>작 (손진책 연출/장충체육관)
2005년<벽속의 요정>번안 (손진책 연출/우림청담시어터)
2006년<주공행장>작 (손진책 연출/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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