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스룸, 화장실이다. 이 화장실은 단순히 배설의 욕구를 처리하거나 청결을 위해 몸을 씻는 곳으로만 상정된 건 아니다. 바로 누군가가 가진 혼자만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관객은 여자 셋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동질감에 웃다 때론 민망해 하다 어느 순간 연민을 느끼게 된다. 무대에는 크게 세 개의 소품이 있다. 변기, 세면대, 욕조. 주인공들은 각기 이 소품을 하나씩 맡아 소품과 함께 자신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가장 먼저 베스룸에 숙희가 등장한다. 그녀는 꽤 잘나가는 펀드 매니저이나 화장실 변기에 앉아 힘겨워한다. 오늘도 성공하지 못하면 죽어버린다고 말하는 그녀는 변비와 사투를 벌이느라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녀의 리얼한 표정은 처음 그 표정을 보며 웃던 관객들을 어느새 민망하게 할 정도로 리얼하다.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 혼자 지어보았을 그 성공(?)을 위한 처절한 표정과 몸짓을 보면서 관객은 어느새 감을 잡는다. 아~ 이 연극 이렇게 우리의 일상, 하지만 타인은 쉽게 보지 못하는 혼자만의 일상을 엿보게 하려는 거구나.
두 번째 여자. 소운이다. 4개월 만에 쓰는 월차인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돼 투덜대며 베스룸에 들어온다. 알고 보니 그녀, 낮에는 회사에 다니지만 10년 째 배우를 꿈꾸는 배우 지망생이다. 얼마 전 본 오디션에서 떨어진 사실을 알고 낙심하면서도 다시 기운을 차리고 연기 연습을 하는 그녀의 리얼한 연기 연습은 압권이다. 세면대 앞에서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하고 면접 연습, 오디션 연습을 하는 그녀. 관객은 그녀의 리얼한 연기를 보면서 저런 연기력이라면 연극 설정 때문만 아니었다면 분명 오디션에 붙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녀의 극중 연기에 감동받은 관객들은 극 중간임에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전소운 역시 아마도 애드립 같았으나 “이 연기 먹히네.”라는 대사로 자연스럽게 즐거움을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춘희. 비에 젖었는지 머리와 옷에 물기가 있다. 상자 하나를 들고는 욕조 가까이 앉는다. 상자에서는 추억이 담긴 선물들이 차례로 나온다. 그녀는 그 물건들을 각기 다시 대한다. 향수는 뿌려보고 반지는 껴보고 목도리는 둘러본다. 그리고 하나씩 욕조에 던져버린다. 마치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밖이 훤히 보이는 그런 창에서, 그것을 전혀 모르는 한 행인이 창 앞에서 혼자 하는 행동을 훔쳐본 느낌이랄까? 세 배우가 각기 혼자 등장하며 보여준 일상이자 이미지는 바로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막이 바뀌고 어느새 세 여자가 함께 등장한다. 셋은 친구였던 것이다. 파자만 파티를 하면서 서로의 최근 근황을 이야기하거나 학창 시절 추억을, 연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그녀들은 서로 각자의 창 하나씩 연다. 그러는 사이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화해하고 더 커진 믿음과 우정으로 서로를 보듬는다.
극이 끝난 줄 알았는데 숙희가 불 꺼진 베스룸 앞에 다시 선다. 그리곤 화장실 문이 잠겼다며 툴툴된다. 그녀들이 혼자만의 이야기를 말해줬던 공간,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공간이 잠기면서 연극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아니 숙제를 내준다.
자, 이제 어쩔 것인가?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문을 닫고 또 어떤 이미지로 세상을 대할 것인가? 우리 안의 베스룸을 얼마나 열어둘 것인가? 어떤 삶을 살든지 그건 당신의 몫이다. 자, 창 하나 열어 볼 것인가?
욕실과 자기만의 방, 욕실의 그 이미지들, 여자이야기이다.
욕실은 가장 일상적이면서 비밀스런 공간이다. 인간은 욕실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비로소 자신을 열어낸다. 씻김, 배설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써 욕실은 사뭇 개인적인 공간이며 개인적이라는 느낌은 또 하나의 외로움을 이야기한다.

작가 겸 연출의 글
여자이야기는 꺼낼 때마다 힘들다. 역시 작가가 여자가 아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작년 '위성신의 이미지 연극전'이란 이름으로 다시 작품을 꺼내 보았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전히 여자는 모르겠다. 여자에 대한 나의 생각이 고루하다.
욕실과 자기만의 방 : 욕실이라는 공간은 가장 일상적인 공간이다.
인간은 욕실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비로소 자신을 열어낸다.
씻김과 배설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 욕실은 사뭇 개인적인 공간이다.
개인적이라는 느낌은 또 하나의 외로움이다. 자기만의 방은 이렇듯 문을 열어놓기가 힘이 든다. 그 문을 열고 마치 몰래카메라를 들이대듯이 욕실을 엿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은 그들의 벗은 몸뚱이보다 그들이 지닌 외로움의 벌거벗은 진실이다.
욕실 - 그 이미지들 : 욕실에 들어서면 언제나 마주치는 것들 - 변기와 욕조 - 세면대, 거울, 수납장, 창문, 문, 수건, 휴지, 비누 이 연극은 욕실에서 흔히 보게 되는 그것들 각각의 이미지들을 주제로 구성된다.
여자 이야기 : 이번 작품은 여자와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욕실에 대해서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여자들의 심리와 상황을 좀 더 애정을 가지고 보고 싶다. 때로는 좀 더 징그러울 정도로 차가움을 가지고.
관음 중 : 관음 중 환자들을 위한 극은 아니다. 현대인의 관음중은 몰래카메라를 거치면서 거의 광적이다. 현대인은 컴퓨터 속에서 벌거벗고 있기도 하면서 몇 겹의 익명성을 강조한다. 이 작품은 그녀들을 보며 다시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이다

위성신
중양대학교 연극학과 졸업
한국예술 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대학원(MFA과정) 졸업
극단 한강 상임 연출 (1992-1994)
소극장 오늘 대표 (1994-1998년)
현) 극단 오늘대표, 소극장 축제 대표
2001 개인전/ '위성신은 거북이를 좋아한다.‘
2002 수원 화성국제연극제 참가작 〈상처와 풍경>작, 연출
2002 한일월드컵 공식전야제 연출 청소년 뮤지컬 〈죽은 시인의 사회/ 각색 연출
2003 위성신의 러브 페스티발 '사랑한DAY' 공연
2004 극단 오늘 10주년기념공연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 작 연출<세미뮤지컬-고도를 기다리며>각색/연출 〈늙은 부부 이야기)작/연출
2005 SBS/ 극단가교 악극<카츄샤의 노래>연출 〈낚시터 전쟁〉각색 연출
2006〈염쟁이 유씨) 연출, 서울연극제 참가작<닭 집에 갔었다〉각색/연출
변방연극제 참가작 (THE BENCH) 작/연출 희곡집〈사랑한 데이: 사랑한 DAY) 출간 2007 뮤지컬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 작/연출 어린이 뮤지컬 〈여우의 꼬리상점>작/연출<언덕을 넘어서 가자〉연출<술집-돌아오지 않는 햄릿〉작/연출
2008 부산 가마골 소극장 초청 '위성신연출전' 위성신의 일상과 이미지 연극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연출<그대를 사랑합니다.>연출 신춘문예 〈문상객담>연출 2009 콘서트 드라마 〈여보 고마워>연출 인천 시립극단<닭 집에 갔었다>각색 연출
<오랜 친구 이야기>작,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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