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검찰은 가족을 총기로 살해한 주범인 필립의 정신감정을 의뢰한다. 필립의 정신감정을 담당하게 된 연희는 충격적 사건의 범인답지 않은 그의 심약한 성격으로부터 그의 폭력적 기질이 발생한 과정을 이끌어내는데.....
필립의 억압된 폭력성 밑에는 월남파병용사인 아버지 박봉만과 죽은 형. 어머니가 있다. 큰 아들 정기의 죽음에 침묵하는 아버지 박봉만. 단 한 마디의 변명도 없이 돈을 벌기 위해 필사적인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몸이 썩어가는 것을 괴로워하던 형의 죽음........
박봉만에게 있어 유일한 탈출구는 같이 참전했던 미군 필립이다. 박봉만은 필립만이 자신들의 불행을 종식시켜줄 해결책이라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20년이 넘도록 미군 필립은 대답하지 않는다.
아버지에 의해 억압당한 심약함과 다리가 썩어 죽을 것이라는 공포는 필립을 언제나 음지의 사람으로 만든다. 그런 그의 앞에 유진이 등장한다. 기대고 싶은 어머니, 두려운 아버지대신 필립은 유진에게 안정을 취한다. 그리고 유진과 관계를 통하여 아이를 갖게 되는데 그러나 아이는 다리가 없는 기형아로 사산을 하게 되고, 필립이 꿈꾸던 행복은 끝이 나게 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유진은 연희를 찾아오게 되고 사건이 있던 날의 진실을 이야기 한다.

작가의 글 - 이난영
삶의 지속이 길어질 수록 망각에는 가속도가 붙는 것 같다
기억의 잔상이 쌓이고 쌓여 결국엔 곪아진다는 기본적인 삶의 법칙마저 잊고......
이 극을 담아내는 그릇은 두 가지가 있다. 표면적 흐름인 월남전 고엽제 피해와 그 속에 담아내고자한 한 가족의 보이지 않는 억압과 폭력으로 인한 기형적인 삶..... 특별히 월남전을 소재로 한 까닭은, 우리가 가장 마지막으로 겪은 비극이기 때문이며,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가족이 겪는 비극, 아직 해결되지 못한. 한 가족의 역사를 실타래 풀어가듯 풀어가고픈게 이 극의 의도이다.
이 작품의 두 가지 의도에 대한 대략적 설명 한 가지........ 가족이 엮어내는 숨겨진 폭력성. 폭력이란 언어나, 실재 행동에 의한 것 이전에 억압에 의해 이루어진다. 필립은 자신을 끊임없이 다른 인물과 비교하는 아버지의 이기주의와 몸이 썩어들어 죽은 형에 대한 외로움, 곁에 있어주지 못하고 일에 얽매이는 엄마의 부재로 억압받는다. 그런 억압은 타인과의 만남에서 자신을 억압해버림으로써 언제나 도태된 인간으로 살게 한다. 이 극은 이런 가족의 억압에 의한 폭력의 잔인성과 비극성에 대한 글이다 두 가지.......베트남의 빽빽한 밀림을 말려버리기 위해 고엽제를 뿌렸을 때 우린 미국에 고마워했다. 어떤 이들은 비행기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에이전트 오렌지를 맞으며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남은 건 썩은 몸뚱아리다. 하지만 미국은 입다물고 있다. 한국도 입다물고 있다. 당연한 권리에 대해 겁먹고 있을 뿐이다. 이젠 말할 때다. 아픈 과거에 대해, 우리의 비굴함에 대해 말할 때다. 이제 우리가 잊어버리려 애쓰는 역사의 생채기를 치료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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