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 구도에 정진하는 스님들의 일상이 다소 낯설고 코믹하게 보여진다. 밤과 낮, 시간이 그들의 행동에 따라 빠르게 지나가고 관객들은 그것을 관조한다. 속세, 혹은 피안(彼岸)에서 분노한 사람이 당도하게 되는데 그는 산사의 구도자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대낮에도 촛불을 들고 다니는 스님, 관을 이끌고 배회하는 스님, 대변을 보고 그것을 모아놓고 궁리하는 스님 등등 상식을 초월하는 스님들은 침묵 속에서 그들 행위 속에 빠져 있다. 아직 무엇인지 모르고 아마도 끝까지 답이 없는 화두가 되어 여러 명의 수행하는 젊은 수행승들은 큰스님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한다. 큰스님은 으레 큰스님들이 그러하듯이 동문서답으로 젊은이들을 괴롭히고 그 나름대로 사미승이 여러 가지 해석을 곁들이며 관객들의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드디어 한 사람의 영혼이 불가사의한 유체이탈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보았다고 외친다. "비록, 썩어빠진 영혼일지라도 내게도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기뻐하며 그는 파계하면서 냉정하게 세속으로 들어간다. 늙어 죽어 가는 시점에 서있는 큰스님은 절 안에 있는 모든 책(경전)을 불태우라고 명령하고, 할 수 없이 모든 책을 태우는 과정에서 사미승이 "고도를 기다리며" 라는 책을 건지게 된다. 그 연극에 나오는 대사들 중 몇 개가 스님들의 화두에 맞닿아서 이윽고 막간극이 벌어진다. 큰스님은 그 연극을 보고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상황과 비유를 통해 모든 세상사가 마치 하나의 유희처럼 파악되는 지점에서 큰스님의 입적이 시작되고 우주적 화음이 연출되기를 희망하며 막이 내린다.
불교에서의 선(禪)의 의미를 우리는 이 작품에서 연극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선(禪)이 무엇이다”라고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관객은 공연을 보는 내내 배꼽을 쥐어 잡으며 웃다가 스님들의 선문답 속에 들어있는 해학과 위트로 인해 연극이 끝나고 느끼게 될 것이다. 선(禪)이란 것이 ‘아마 이런 것은 아닐까?’ 말이다.
남자의 삶에서 가장 큰 유혹 중 하나가 세상의 짐들 훌훌 털어 버리고 출가하고 싶은 욕망이라 한다. 그 욕망을 강렬히 느끼고 행동으로 실천한 남자중의 남자들은 각자의 선(禪)을 찾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큰스님에게 여쭤봐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고, 자신의 다른 욕망(?)들도 억제하기 어려워하는 등 매일 매일이 고행의 연속이다. 이런 속에서 우스꽝스러운 해프닝들은 연속적으로 벌어진다.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을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스님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재미와 함께 삶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된다. 작가 오태영씨는 선을 통해 오태영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뼈있는 대사, 현실을 날카롭게 꿰뚫는 시선으로 무겁지 않게 풀어나가고 있다. 불가의 ‘선’을 종교적 이지만은 않게 연극적 ‘선’을 준다. ‘선’의 연극적 해석을 얼마나 재미있게 받아들이느냐는 관객들의 몫이겠다.
禪은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여 무아정적(無我靜寂)의 경지에 도달하는 정신집중의 수행(修行) 방법 중의 하나이다. 종교로써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의 얼과 정신문화 속에 지혜와 유모 및 관조적 세계관으로써 깊이 배어 있다. 우리는 이 공연을 통하여 현대인들의 디지털 적인 감각에 '유장함(느림)의 미학'과 '깨달음의 쾌감‘을 선보이려 한다. 또 다른 새로운 미학을 소개하려 한다.
작가의 글
"우리가 만나고, 우리가 행하고 있는 연극의 대부분은 서구의 철학과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이 세계 연극의 주류이다. 연극미학과 극작법, 연출법, 연기술 모두가 서구의 옷을 빌려 입은 느낌이다. 나도 희곡이라고 30여 년 써봤는데 그들의 잣대가 어색하고 답답함을 어쩔 수 없다. 우리의 미학과 몸짓과 철학이 분명 있을 텐데, 언제까지 그들의 미학을 답습해야만 하는가. 우리의 미학, 동양의 철학을 재조명 개척해 나가는 자료로 선의 사상만한 것이 또 있을까? 나는 기존 연극이 갖는 시간과 공간 개념의 파괴, 그것을 위해 이 작품을 쓰게 됐으며 나아가 연극이 무대 위에 펼쳐지는 하나의 회화, 즉 움직이는 수묵화 같은 미학을 상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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