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지용 '메타'

clint 2015. 10. 30. 09:30

 

 

'메타'는 제목이 의미하듯이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연극. 즉 메타 극(meta theatre) 형식의 작품이다. 작가는 권력과 지식, 그리고 대중들의 관계를 연극을 만드는 행위, 즉 연출의 과정에 빗대어서 은유하고 있다.
극중의 '연출'은 극중의 '작가'에게 공연 제목이 '메타'이듯이, 은유의 대상을 명확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단원들의 의견을 전달한다. 은유의 대상이 명확하면 배우들도 놀이적 상황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 상황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배우들이 단지 저능아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배우들이 제기하는 문제를 "인식의 문제”로 이해해 주길 주문한다. "아직은 아무것도 잡혀 있지 않은 상태. 무중력. 거기서 희곡이 주어지고, 무대라는 공간이 주어지면서 사람이 배우가 되어가는 것." 이라 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나 '연출'은 연출이나 작가는 배우들과 달리 미리 인식하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지적한다. 나아가 배우들의 성격들이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변별력이 없이 동일한 인물처럼 느껴지는 점을 수정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에 '작가'가 동의하지 않자 결국 '연출'은 '작가'의 작품을 자신의 의도대로 고친다. 극중극에서 작가의 역을 맡는 '막내' 의 대사를 고친 것이다.
막내 : (…) 마음속에 간직했던 이미지, 꿈. 그것은 그들을 만나 현실이 되었다. 이 공간.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진 공간. 샘물같이 퐁퐁 솟는 창작의 날개. 아니. 활화산같이 마그마를 뿜으며 폭발하는 욕망이라 말하는 게 옳겠다. 나는 곧 그들이고, 그들은 바로 나. 저 무수한 시선들을 멀게 만드는 찬란한 빛. 어떤 의미의 창조. 그러니 나는 바로 절대자. 이 신비한 공간을 만든 가슴 벅찬 희열과 감동. 아! 이제 나는 알겠다. 침묵은 바라보는 자의 특권. 그 침묵이야말로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자유로움이라는 것을. 그렇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다. 나는 이미 너희들에게 횃불을 넘겨주었다.

 


'작가'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연출'이 독단적으로 고친 대목은 작가이자 연출가인 김지용의 세계관이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즉 배우들은 작가의 피조물이거나 연출가의 꼭두각시가 아니듯이 대중들도 특정한 지도자 또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우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작가도 연출의 의도에 동의하게 되고 연극은 막을 올린다.
'메타'는 연극 작업 과정을 통해 연극이 무엇이고 왜 연극을 하는가에 대한 자성과 성찰을 담은 일종의 메타 드라마이다. 연극을 통해 연극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려운 제작 환경 속에서도 예술창조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연출, 연극적 상상력이 신체 표현으로 연결되지 않아 고역을 겪는 원로 배우, 그리고 자신의 영혼의 산물인 작품이 연출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훼손되는 수모를 겪는 작가는 표현과 무대, 그리고 창조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발언 속에는 연극예술에 대한 근원적이고 진정성 있는 사랑과 희망이 내비치고 있다. 이 작품은 연극하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결국 연극을 할 수밖에 없고 또 해야만 하는 연극인의 고뇌를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그들이 연극을 할 수밖에 없고 또 해야만 하는 힘은 바로 연극에 대한 진정성으로서의 사랑의 힘에서 나오고 있음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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