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근삼 '거룩한 직업'

clint 2016. 10. 18. 20:11

 

흔히 사람들이 지위적으로 어떤 정상에 도달했을 때의 무기성 무연구성 내지 안일한 직업상의 도벽행위 곧 상류계급의 부패와 부조리를 지탄, 그리고 삶과 직업의  사회적 유기성을 품위, 권위, 지위, 이러한 기호에 예속되는 인간고뇌로부터 보편화시키고 타와 아에 대화의 공통분모를 발견케하고 사회개념적 이해로 인간중화를 꾀하는데 관객에게 고지를 요구하는 작품이다       

줄거리
장식 없고 초라한 인상을 주는 학자의 침실 겸 서재에 시퍼런 식도를 든 도적이 한밤중에 침입한다. 잠에서 깨어난 학자는 초인종을 누르려하나 도적은 이미 초인종선을 끊어놓은 상태였다. 값나가는 물품이 없자 도적은 시간 낭비를 했다고 학자에게 오히려 화를 낸다. 도적은 엉거주춤한 상태로 있는 학자와 담배를 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도적은 학자의 카운 셀러가 되기도 하고 훈계하는 선배가 되기도 한다. 도적과의 대화 속에서 학자는 새로운 세계를 본다.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는 도적은 위선의 세계에 굳게 갇혀있던 학자로 하여금 위선의 벽을 허물게 한다. 그래서 학자는 자신이 15년간 애지중지 해오던 강의 노트를 던지는 행동으로까지 변화하게 된다. 학자부인의 친척이 학자에게 경마장에 취직하라는 권고를 한 적이 있는데 이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며 이제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하기도 한다. 도적은 학자에게 안방에 묶어둔 아내를 풀어주라고 하고, 스리슬쩍 사라져버린다. 아내를 풀어주고 돌아와 보니 도둑은 온데간데없다. 도둑과 술을 나눠 마셔 얼큰해진 학자는 아내에게 안주를 만들어오라며 술을 더 마신다. 아내가 안주를 만들러 간 사이 테이블에 있던 문화사 공책을 집어던져 버린다. 끝내 학자는 자신의 강의 노트를 집어 던지며 자신의 세계가 허위와 잘못된 체계로 이루어졌음에 깨달은 것이다.       
 
「거룩한 직업」은 서사극의 기법적 측면보다 서사극의 정신적 측면을 내용에 담고 있다. ‘학자’는 ‘강도’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직업에 대한 태만과 생활의 안이함을 인식하게 되고 ‘강도’와 ‘학자’사이의 주객전도된 모순의 행동은 관객에게 사회의 전도된 가치관을 비판하는 인식의 대상이 되게 한다. 서사극론에서는 익숙한 것으로부터 새로운 인식의 전이가 발생하도록 요구하며 모순의 세계를 비판의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요구한다.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 중 도로 장면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배우는 극중인물의 사회적 제스처를 귀납적으로 하나씩 조립하여 전체적인 인물을 완성하게 되는데 이때 배우가 착안하는 것은 인물의 심리적 성향이 아니라 사회적 행동이다. 그러므로 인물의 모순된 성격은 사회적 행동에서 나오고 그것은 다시 사회적 현상의 모순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인물의 모순성은 사회적 가변적 모순성을 반영하게 되며 인물의 행동도 이러한 생의 현실에 일치함에서 생겨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인물은 그가 속한 사회의 구조를 해명하는 수단이 되며 인물의 통일적인 형태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가 모순의 통일로서의 인물 속에서 총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인물의 모순성은 항상 사회적 관련성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강도’와 ‘학자’의 모순성은 사회의 전도된 가치관을 반영하며 60년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거룩한 직업」이 발표된 1961년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서사극은 잘못되고 모순된 모습들을 단순히 보여주는데 그칠 뿐 희망적인 모습이나 해결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모습들 속에서 관객은 이성을 갖고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 판단을 유도해가는 과정이 바로 서사극인 것이다. 제시된 장면을 통해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확보해 가는 것을 서사극의 교육극적 특성이라고 하는데 「거룩한 직업」은 이러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읽히는 것과 공연을 전제로 하는 대본의 역할보다 아무나 극중의 한 역할을 맡음으로써 새로운 세계의 지평을 여는 비판력과 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교육극의 기본원칙에 의해 그 방향과 지향점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교육한다”라는 기본원칙이 요구하는 실천적 성격으로 인해 교육극을 매개로 형성되는 학습과정은 무대에서 일방적으로 제시되는 여타의 형식보다 복합적인 인격구조에 더 강렬한 영향을 준다. 교육극은 연습과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발견되고 습득되는 어떤 것을 중요시한다. 연기하는 자들이 연습을 통해 사회적으로 영향받을 수 있다는 근본적인 기대가 깔려있는 것이다. 「거룩한 직업」은 등장인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소집단의 토론에서 각자가 역할을 나누어 맡아 연기해 봄으로써 허위의 가치체계에 갇혀 있다가 새로운 가치관으로 나아가는 학자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고 진솔한 마음은 가졌지만 도적질이 사회악이라는 것을 못 느끼는 모순된 도적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도적은 학자의 낡은 가치관을 허물어주는 변화의 동인으로 작용하며 학자의 안티테제 역할을 하지만 세상사의 비리를 들춰내면서 자신의 도적질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전도된 상황에 대한 독자의 새로운 인식이 요구 되는 것이다. 도적의 모순된 행동은 사회적 현실의 모순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회의 가치가 고정되어 있을 수 없음을 지적해 주고 있다.
 
 
 
 
「거룩한 직업」은 주객전도된 상태에서 시작되어 우화적 상태로 이어진다. 어두운 사회 현실과 무가치한 과거 삶에 대해 느끼는 노학자의 자기환멸 등 두 비극적 상황은 희극적 상황으로 이끌려 간다. 앞에서 인용한 도적의 학자에 대한 훈계조의 대사나 사회비리와 도적을 고발하는 도적의 대사가 희극적이다. 학자와 도적이 이야기하는 가운데 집 바깥에서 딱딱이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사람이 도적의 아들이라든가, 아들의 부탁으로 책을 하나 가져가겠다거나 도적이 나간 다음 학자가 도적을 도적님이라 하며 학자부인은 위대한 도적의 사진을 하나 찍어 두어야 했다고 말하는 장면 등은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다. 극 전체의 전도된 상황이 지속되어 희극적 상태를 유발하는 데서는 학자의 경직된 정신상태가 원인이다. 베르그송은 웃음을 인물표현을 기계적으로 다루는데서 유발된다고 했다. 사건을 수학적으로 유형화함에도 좌우된다. 풍자적 인물행동의 심리학을 중시하는 것이다. 한 인물을 유연성이 부족하고 경직된 정신 상태에 지배되는 극 인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그 인물은 주변상황에 적절히 대응 못하게 되고 따라서 웃음을 자아내게 되는 것이다. 「거룩한 직업」에서는 경직된 상태의 학자와 여러 직업을 거치고 자신의 도적질을 정당화시킬 정도의 유연성 있는 도적을 대조시킴으로써 웃음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웃음은 세상 돌아가는 방식을 풍자적으로 논평하기 위한 극적 도구이다. 학자가 처한 곤경은 별로 동정적이지 않다. 희극적 상황에서의 희생자는 학자이다. 그러나 희생자에 대해 연민이 일어나지 않는다. 감정이입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소외효과는 사회적 비판과 윤리적 논평을 전제로 한 기존 관념의 타파시도가 도적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과 상응하여 부정과 타락의 사회 상태를 관객으로 하여금 이성적으로 인식 판단하게 한다. 「거룩한 직업」에 나타난 현실은 비정상적이며 전도된 현상으로 인해 비극적이다. 웃음과 비꼼, 아이러니 뒤에서 발견되는 것이 행복, 정의, 신뢰가 아니라 불행, 부정, 배신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적 세계는 희극적 상상력으로 투시된다. 비극적 세계관을 내적으로 가진 채 세상을 투시하지만 비극적 세계관을 통해 나타난 출산물은 희극적 상상력에 근거함을 알 수 있다. 이근삼은 희극적 상상력에 근거한 비극적 세계관으로 비극적 세계를 희극적 수법으로 담아내는 특성을 나타내는 작가라 할 수 있다.
 
 

 

 

 

학자-대학교수-는 결코 거룩한 직업이 아니다. 희곡작가 이근삼이 단막극<거룩한 직업>에서 던진 화두(話頭)이다. 지금처럼 곳곳에 대학이 있고, 대학생이 넘쳐서, 이들을 가르치는 대학교수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시대에 한 말이 아니다. 대학이 그야말로 상아탑으로 인식되던 시절인 1961년에 던진 화두이기에,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더욱 각별하고 충격적일 수 있다. 대학교수는 높은 학덕과 고매한 인격의 상징으로 학생들과 사회로부터 존경받는다는 것이 사회의 통념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유교적 가치관을 지닌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 위선의 껍질을 한 겹만 벗겨서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세상의 이런 평가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금방 드러난다. 대학에서 문화사를 강의하고 있는 학자-교수는 스스로를 학자라고 부르고, 학자의 타락형을 교수라고 부른다-는 15년 동안이나 사용해 온 낡은 강의노트에 생계를 의탁하는 인물에 불과하다. 학문을 새롭게 연구하기보다는 교단에 섰을 때의 얼굴 표정, 걸음걸이, 교실의 분위기를 끌 수 있는 위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자는 학생이 장난 삼아 강의노트를 한 장 찢어도 모른 채 강의를 계속하는 인물이다. 학자의 이런 모습은 이 집에 침입한 도둑과의 대화를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된다. 도둑은 결코 정당한 직업일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존재이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던 이러한 현실을 송두리째 뒤집어 버린다. 15년째 똑같은 강의노트를 읽으면서 학생들 돈을 도둑질하는 학자는 학자답지 않은 학자이다. 물건을 훔치기 위해 학자의 집에 침입했다가 학자에게 자기가 훔쳐온 양주를 권하는 도둑은 도둑답지 않은 도둑이다. 그리하여, 학자가 도둑일 수 있고, 도둑이 학자일 수 있는 현실 뒤집기가 일어난 것이다. 작가가 제목으로 쓴 ‘거룩한 직업’이란 누구의 직업을 일컫는가. 그것은 학자일 수도 있고, 도둑일 수도 있다. 작가는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독자나 관객을 향하여 묻고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도둑은 무대에 등장한 학자와 도둑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상의 누구도 도둑이 될 수 있다. 작가는 이런 세상을 날카롭게 꼬집고, 비판하고, 빈정거리고 있다. 그리고 지위가 높을수록, 잘 사는 사람일수록 도둑일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고 믿고 있다. 이처럼 돈 때문에 정치와 권력이 부패하고, 지식인이 타락하고, 나아가 사회윤리가 붕괴되고 있는 것이 바로 현대사회이다. 작가는 이러한 자기 시대를 바라보면서 분노하기보다는 웃는다. 고민하기보다는 차라리 빈정거릴 뿐이다. 그리고, 작가는 도둑의 입을 빌려-결코 학자의 입을 빌리지 않는다-세상살이의 이치를 지적한다. 문화사 강의노트 한 권으로서는 결코 훌륭한 교수가 되지 못하고, 인생의 비극은 바로 자기에게 알맞은 일을 골라잡지 못하는 데 있다고. 그리하여, 도둑이 학자를 가르치고 깨우치는 현실 뒤집기 또는 극적 아이러니가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연극<거룩한 직업>을 웃으면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무대 위에 펼쳐지는 현실 뒤집기를 보면서, ‘거룩한 직업’으로 포장된 학자의 실체를 폭로하려는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의식, 또는 비웃음도 함께 만날 수 있다. 희곡<거룩한 직업>의 무대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연기자의 선정에서부터 현실 뒤집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왜소한 체구와 허름한 잠옷, 핏기 없는 얼굴과 주눅든 모습의 학자, 건장한 체구와 물들인 군복에 머플러, 윤기 있는 얼굴과 당당한 모습의 도둑, 이처럼 대조적인 두 인물의 설정이 무대를 효과적으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희극 특히 소극(素劇)에서는 말 어긋남의 효과도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예컨대, ‘인생(人生)’과 ‘인상(印象)’처럼 비슷한 단어가 반복되고, ‘교수(敎授)’와 ‘교수(絞首)’처럼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가 반복됨으로써 소극이 추구하는 웃음을 자아낼 수 있다. 나아가, 작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교수 부인도 이 연극을 더욱 감칠맛 나게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한 도적이죠?”, “얼굴도 잘 생겼어요.”, “팔 힘이 얼마나 억센지……”와 같은 대사는 학자를 더욱 왜소하고 주눅들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작품의 주제를 IMF 시대의 ‘상실된 남성’과 결부시킬 수도 있을 터이다. 어쨌든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이 작품이 쓰여진 것은 37년 전이고, 무대 위의 연극을 보는 관객은 지금, 이곳의 사람들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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