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연극은 한 사회의 죄의식을 대면하게 하고 망각과 무관심을 일깨우며 응어리를 만져준다. 2인극 <블라인드 터치>는 국가 차원의 폭력에 희생되고 대의와 명분의 거대담론 아래 영혼의 살갗이 다 쓸린 개인의 상처를 조망한다. 그리고 미시적인 일상과 사람살이의 관계 속에서 치유를 모색해 가는 과정을 은근하고도 결기 있게 그려낸다. 사회파 작가이자 현대일본연극의 40대 기수로 알려져 있는 사카테 요지의 2002년 작품이다.
사카테 요지는 전체주의의 일상적 기원과 일본인의 정치적 무감각을 밀도 높게 축소한 무대 공간 속에서 수동적이고 무기력해진 ‘몸’을 통해 표현해 온 작가이자 연출가이다. (<천황과 입맞춤> <다락방> 등이 번역 소개된 바 있다.) 전쟁 등 국가와 집단의 폭력에 대한 일본인의 방임과 무관심은 그의 창작의 역설적인 동인이다. 2004년 발표작 <오뚜기가 넘어졌다>에서는 우경화 되어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평화헌법의 확대해석과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문제를 비판한 바 있다.

<블라인드 터치>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 도중 경찰을 숨지게 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8년 동안 옥살이를 한 남자와 청춘을 인권운동에 바친 연상의 여자 사이에서 일상과 사랑의 감정이 자리 잡는 과정을 따라간다. 16년 전 옥중결혼으로 맺어진 두 사람은 남자가 출옥하면서 함께 살게 되고, 연극은 초봄부터 가을까지 그들이 더듬더듬 찾아가는 때늦은 사랑의 화음을 보여준다. 무대는 다다미 바닥 등 일본 가옥의 실내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는데 좌식 구조이기에 가능한 객석과의 시선의 대치라든가, 변혁운동의 후일담을 넘어 전망과 실천을 제기하는 연극의 주제의식을 긴장감 있게 객석으로 전달하는 것을 돕는다. 배우가 가진 생래적 화사함 때문인지 젊은 날 인권운동가로 강단 있게 살아온 여자가 남자를 자기 삶에 들여놓으면서 점차 여성적으로 되어간다. 두 사람이 되는대로 피아노를 두드리는 ‘블라인드 터치’의 불협화음이 차츰 조화를 찾고 서로의 소음에 화답해 가는 결말처럼 사랑과 혁명, 일상과 이념, 말랑한 것과 강고한 것의 공존이 우리 삶의 전체성이라는 것을 나지막이 말해주는 연극이다

<블라인드 터치〉는 2002년 일본0|서 공연된 극작가 사카테 요우지의 문제작이다. 오키나와 반환 협정 반대투쟁의 실제 인물과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제37회 기노쿠니야 연극상울 받았던 작품이다 ‘사회파 연극인'으로 불릴 만큼. 사회적. 역사적인 문제들에 대해 중점적으로 작업을 해온 사카테 요우지는 현재 일본연극계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연극인 중 한 사람이며, 최근에는 해외로 그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비평적인 시각과 현대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 그리고 언어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과 신체표현에 대한 적극적인 실험정신' 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작가의 글
저는 ‘사회파' 라는 말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느끼는 건 이 세계가, 그리고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많은 모순과 기만입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면 그렇게 행동해야 해요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과 자유롭게 있고 싶다는 욕망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자유를 생각하는 건 자신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를 둘러싼 상황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사회를 고찰하는 것. 사회의 일원으로서 발언해가는 건' 자유를 얻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이번 작품이 한국에서 올려지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제 주변에 이 면죄사건의 재판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저 역시도 무언가톨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또 이전에 '옥중결혼'올 소재로 작품을 쓰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고요. 그러던 중 '기시다교코'라는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작품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이 두 가지 소망과 그 여배우가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작품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에게 부탁을 드려서 작품을 쓰게 됐습니다. 하지만 모델이 된 사건의 경우, 아직 남편분이 형무소에서 나오지 못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희곡에 나오는 섬세한 부분은 실제 모델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내용적으로는 끝까지 픽션이고 사실에 구속받지 않도록 노력을 했습니다. 이 희곡은 배우의 존재. 배우 자신이 느끼고 행동하는 힘으로 생동감올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희곡을 통해 일본에도 국가나 권력에 대치하는 자립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 사고 속에는 온 세계의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습니다. 한국영화를 보면 사회적 이슈가 드라마 속에 녹아있는 경우가 일본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에선 그런 감각이 많이 열려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 작품은 일본에서 영화화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한국에선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거죠. 이 작품으로 한국 관객들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한국의 무대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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