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공연 대본의 원본은 웨일즈의 시인 딜란 토마스가 그 지방 사투리로 쓴 라디오 극이다. 70여명의 등장인물들을 50여명으로 축소시켰다고는 해도 소극장 연극무대에 오르기에는 무척 많은 인원수이다. 그러나 2003년에 새롭게 결성된 극단 '적(的)'은 이를 훌륭한 연극작품으로 만들어냈다. [밀크 우드]는 Llareggub 이라는 가상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흥미롭게 펼쳐놓고 있다. 작은 해수욕장 마을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인간의 희로애락을 비롯한 심층적인 감정들을 건드리면서 우리를 웃게 만든다.
두 아내와 사는 남자, 잔소리 많고 까다로운 부인을 독살하기를 꿈꾸지만 막상 부인 앞에서는 쩔쩔 매는 푸우, 마을의 뭇 남성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지만 죽은 연인을 잊지 못하는 자유분방한 폴리, 도덕과 정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몸을 가두고 있지만 속이 불타오르는 여교사 등등 사회통념상 무대에 흔히 오르지 않는 수많은 인간군상들이 자유롭게 판을 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연무대는 연기자들의 무대이다. 의상과 헤어스타일, 말투와 소품 등이 인형놀이에 나올법한 것들이라는 점을 빼면, 이들은 너무나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누군가의 삶을 무대에서 사는 것이 연기라고 할 때, 이 공연에서 10여명의 배우들이 50여명의 인물들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밀크우드]의 인물들은 쌩뚱 맞기도 하지만 친근하다. 매일 밤낮으로 "바하여, 영감을--!!" 라고 절실하게 외치면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연주자와, 그와 한 집에서 살면서 그 소음을 힘겨워 하는 아내, 우유 판매량이 저조해서 숲과 묘지들을 돌아다니면서 우유를 뿌려대는 오키 밀키, 우물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처럼 소문을 만들고 퍼뜨리는 부인들의 무리, 맞닥뜨리는 남자들마다 자기에게 키스하거나 돈을 내야만 길을 지나게 허락하는 사춘기 소녀들, 온갖 종류의 동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인 뒤 저녁상에 올리는 남편 등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꾸는 꿈들이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집안의 허드렛일을 도맡아야 하는 하녀는 아름다운 귀부인이 되어 멋진 신사의 춤 신청을 받는 꿈을, 두 아내와 사는 남자는 각각의 아내가 자신을 황홀하게 유혹하는 꿈을, 까탈스런 부인에게 시달리는 푸우 씨는 부인이 마실 차에 독약을 넣고, 부인이 아끼는 새를 목졸라 죽이는 꿈을 꾼다.
얼핏 보면 잔혹하고 야비해 보일지는 모르나, 우리가 사회의 일원으로 커가면서 눌러온 동물적인 본능이 순간순간 봉오리를 펼쳤다가 닫혀지기에 버겁지 않다. 오히려 나와 다른 외양과 환경을 지녔기에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이 가능하다. 여러 다양한 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들뿐 아니라, 각각의 배우를 통해 다채롭게 선보이는 무수한 인간군상들을 접하는 관객들도 무척이나 즐겁다.

그러나 타블로 식으로 끝나는 삽화식 장면들이 많고 희화화된 인물들이 많지만, 이 작품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녹아있다. 사회에 이름을 떨친 위대한 인물이나 엘리트 계층, 또는 신화적인 어떤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마을을 진득하게 지키고 알콩달콩 살아가는 선남선녀들을 향한 작가 딜란 토마스의 애정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 작품을 연극무대로 올린 극단 '적(的)'의 멤버들의 애정이 따스하다. 때로는 인형 같고 때로는 욕망의 화신 같으며 때로는 양 같고 때로는 야수 같은 [밀크우드]의 인간들…. 그 안에 비록 자신과 상응하는 인물상이 없다고 해도 일종의 자화상을 본 느낌으로 극장 밖을 나올 거라고 말한다면 너무 단언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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