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볼프강 보르헤르트 작 '문 밖에서'

clint 2016. 1. 15. 17:24

 

 

 

내용
서장(장면해설) 토드는 물가에 서 있는 베크만을 보고 “저녁 어두울 때 물가에 서 있는 사람은 연인이 아니면 시인이지”라고 말하는데, 이는 베크만 자신 속에 있는 사랑하는 자의 요소와 시인과 같은 면을 나타내준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그를 꾸짖는다. 죽음, 즉 어머니 품 같은 태초의 평온으로 돌아가려는 베크만의 꿈은 완전히 깨어지고, 베크만은 자기 부인의 사랑도, 모든 의미를 잃어버린 현실로 돌아온다.

1장
이 세상에 실패한 자에게 그 분신으로서 타인이 나타난다. 타인은 맹목적 생명의 활기를 노크하는 자이다. 베크만과 타인이 죽음의 무의미를 논쟁할 때 여인이 나타난다. 이 여인은 반은 땅에, 반은 물 속에 있는 둘로 분할된 베크만을 본다. 이로써 베크만은 어린 아이의 역할을 도피하여 스스로 구제한다.

2장
베크만에게 회상과 죄책감과 공포가 나타났고, 바우어의 하사 영상이 나타났다. 이로써 여인과 베크만의 사랑은 깨어지고 베크만은 또다시 거리에 나선다. 자신 때문에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인간이 있는 곳에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타인에게 끌려 책임을 벗기 위해 대령을 찾아간다.

3장
대령은 베크만의 이야기를 유머로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의 찢어진 옷으로 베크만을 새로운 인간으로 만들려 할 때 이 탐구자는 “인간? 인간이 된다고?”라고 외치며 다시 거리에 나서, 서커스로 찾아간다. 피와 죽어간 자들의 무서운 장면이 전개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죽어라고 웃어대는 서커스로.

4장
여기서 베크만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확고한 물질주의자 지배인을 만난다. 예술은 진실이 아니고 진실은 예술이 아니다. 진실만으로 인간은 살 수 없다. 모든 개념은 오염되고,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썩어 있다. 인생에는 너무 약하고 예술에는 너무 큰소리치는 베크만에게는 다시 엘베 강으로 축복 받는 길만이 남았다. 그러나 긍정자 타인은 다시 베크만의 길을 막고 그를 모든 인간의 안식처인 집으로 인도한다.

5장
평범한 시민적 일상생활로 돌아가려는 그 순간에 그의 꿈꾸어온 안주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점령되어 있고 양친은 죽고 남은 것은 크라머 부인의 조소뿐이다. 결국 결말은 다시 처음으로, 꿈속으로, 이름 없는 것으로, 죽음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나는 자살할 권리가 없는가?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모든 사람은 안주해 있다. 그러나 단지 무참히 환상에서 깨어난 베크만은 도중에 있다. 하여 이미 분열된 한 인간의 파멸과 공허를 향해 소리치는 질문 외에는 어떤 해결도 없다. “대답자는 어디 있는가?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단 말인가?”

 

 

 

 

 

이런 작품을 귀환문학이라고 따로 부르는 말이 있더라. 귀환문학. 이름 참 잘 붙였다. 그저 전후문학이라고 하기에 이 작품의 파토스는 전쟁을 직접 경험하고 집으로 돌아온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특별한 것이다. 많이 다듬어져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가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전쟁에서 패한 독일군 병장 벡크만이 독일로 돌아온다. 아내는 다른 남자와 지내고 있고 유대인을 엎신여기던 부모들은 전쟁 직후 자살하였다.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맡겼던 선임은 잘 살고 있으며 벡크만 자신만이 다른 전우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삶이나 자살이냐의 기로에 선다. 여기에 '아무도 믿지 않은 신'과 '타인'이 등장하여 그를 삶으로 이끌려고 하지만 결국 아무도 결정적인 대답을 내려주지 않고 그는 마지막 긴대사를 통해 관객에게 질문만을 남긴다.
우선 여기 몇몇 훌륭한 대사들을 옮기고 싶다. (세번째 벡크만의 대사 부분이 바로 마지막 독백이다)
벡크만 : 진실이란 도시의 유명한 창녀와 비슷하지.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 많거든. 그래서 대낮에 길에서 만나게 되면 누구나 질색할 노릇이지. 재미는 밤에들 몰래 숨어서 보고 말이야. 낮의 창녀란 창백하고 보기 싫고 귀찮을 뿐이야. 창녀를 일생을 두고 사랑하는 예란 거의 없어.
벡크만 : 제발 가만히 좀 있어. 인생은 이런 거야. 1막 - 회색 하늘. 한 사람이 슬픈 일을 당한다. 2막 - 회색 하늘. 그는 다시 고통을 당한다. 3막 - 어둠이 내리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4막 - 점점 어두워진다. 저만치 문이 하나 보인다. 5막 - 밤, 깊은 밤이다. 그리고 문은 닫혀 있다. 그는 밖에 서 있다. 문 밖에 서 있는 거지. 엘베 강가에 서 있는 거지, 세느 강가에, 볼가 강가에, 미시시피 강가에도 서 있는 거지.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멍청히 서 있는 거지. 그러다가 갑자기 물에 뛰어든다. 그리고 수면엔 잠시 동그란 파문이 일다가 사라지고 막은 거기서 내리지. 그런 다음 수중에서는 물고기와 물벌레들의 환영 파티가 열리지. 이렇단 말야! 그래도 사는게 낫다고? 좌우간 난, 난 더 이상 못 가겠어. 나의 하품이 온 세계를 찰랑이고 있어!
벡크만 : (눈을 번쩍 뜨며, 독백조로) 틱-톡-틱-톡-. 내가 어디 있는 거야? 내가 꿈을 꿨나? 도대체 산 건가? 그럼 여태까지 난 죽지 않았었나? 저 틱-톡-틱-톡-소리는 죽음을 누비는 소리? 틱-톡-틱-톡- 저 괴상한 소리가 안 들려? 나, 나보고 살라고? 매일 밤을 나의 잠자리에 한 사나이가 지키고 섰을 텐데. 틱-톡-틱-톡-하는 그의 발소리가 쇠사슬처럼 나를 묶을 텐데. 안 돼, 안 될 말이야! 이게 인생이야!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독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추위에 떨고 굶주리고 절뚝거린다. 한 사나이가 독일로 돌아온다. 그는 집에 온다. 그의 침대엔 이미 딴 사람이 들어있다. 문은 닫히고 그는 밖을 서성거린다. 한 사나이가 독일로 돌아온다! 그는 소녀를 만난다. 그러나 그녀에겐 남편이 있다. 그녀의 남편은 다리가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는 끝없이 하나의 읾을 중얼거린다. 그 이름은 벡크만이다. 문은 닫히고 그는 밖을 서성거린다. 한 사나이가 독일로 돌아온다! 그는 사람을 찾아간다. 그런데 연대장은 그에게 조소를 보낸다. 문은 닫히고 다시 밖을 서성거린다. 한 사나이가 독일로 돌아온다! 그는 일자리를 찾는다. 그런데 지배인은 비겁하고 인색하게 군다. 문은 닫히고 다시 문밖을 서성거린다. 한 사나이가 독일로 돌아온다! 그는 그의 부모를 찾는다. 그런데 크람머 부인은 가스 푸념만 한다. 문은 닫히고 그는 밖을 서성거린다. 한 사나이가 독일로 돌아온다! 그런데 틱-톡-틱-톡-소리를 내며 외다리의 사나이가 나타난다. 그는 말끝마다 '벡크만, 벡크만-'한다. 그는 숨을 쉬어도 벡크만, 코를 골아도 벡크만, 잠꼬대를 해도 벡크만, 소릴 칠 때도 벡크만, 저주를 해도 벡크만, 기도를 해도 벡크만---. 그의 틱-톡-틱-톡-하는 발소리는 살인자의 일생을 누벼 버리는 거였어. 그런데 그 살인자가 나란 말이야! 내가? 난 피살자인데, 내가 살인자라고? 살인자가 아니라는 걸 누가 증명한다? 우리는 매일 살인을 하는 거야. 우리는 매일 살인을 범한단 말이야! 우린 매일 살인을 방조하고 있어! 그래서 살인자 벡크만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살인 당하는 것도 살인자가 되는 것도. 그래서 그는 세계의 정면에다 이렇게 울부짖지, '나는 죽겠다!'고. 그리고 길가에 아무데다 쓰러져 죽는다. 독일로 돌아온 사나이가 말이야. 담배꽁초나 사과껍데기, 도는 휴지 나부랑이나 떨어져 있는 길바닥에서, 글쎄 인간이 말이야. 그런데 그 정도는 또 아무것도 아니지. 도로 청소부가 와서는, 붉은 줄무늬의 독일 장군복을 입은 도로 청소부가 와서는, 상표쪽지나 오물취급을 한단 말야! 굶주리고 동상에 걸려 쓰러져 있는 것을. 20세기의 길거리에서, 독일에서 말이야. 거기다 사람들은 죽음 옆을 지나면서도 한 사람 거들떠 보는 이가 없지. 그들은 무관심하고 귀찮고 지루한 듯이 그냥 지나쳐 버린단 말이야! 그러면 죽은 이들은 깊은 꿈 속에서 죽음도 삶도 다 마찬가지라고 느끼는 거야. 다 똑같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이야. 그런데, 넌, 넌 나보고 더 살아야 한다고 말했지? 왜? 누굴 위해서? 무엇을 위해? 난 죽을 권리도 없어? 아, 난 자살할 권리도 없는 건가? 나보고 더 죽임을 당하란 말이야? 더 살인을 하란 말이야? 어디로 가란 말이야? 누구와? 무엇을 위해? 도대체 이 세상 어디로 가란 말이야? 배반을 당할 뿐이야. 무서운 배반을 당하라 뿐이지. 타인, 지금 넌 어디 있어? 아직도 여기 있나? 긍정자, 넌 지금 어디 있어? 어서 대답해 봐! 대답자, 난 지금 니가 필요해! 도대체 넌 어디 있는 거야? 갑자기 어디로 꺼졌어? 대답자, 어딨어? 나의 죽음을 빼앗아 가지고 넌 어디로 간 거야? 신이라고 하던 할아범은 또 어디 있지? 그는 왜 말이 없어? 대답을 해봐! 왜 아무 말이 없어? 왜? 아무도 대답이 없는 거야? 아무런 대답이 없는 거야? 아무도 아무런 대답이 없는 거야?

 

벡크만은 스스로 피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다. 작품은 이러한 설정을 위해 전투에서 돌아온 군인들을 배치한다. 벡크만에게 나머지 군인 20명을 맡기고 자신은 혼자 살아 나온 연대장은 벡크만에게 가해자이다. 하지만 벡크만은 20명의 군인 중 죽은 11명과 부상자로 살아돌아온 9명에게 모두 가해자이다. 이들을 대변하는 이로 등장하는 왼쪽다리를 잃은 상이군인은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부인과 함께 있는 벡크만을 발견하는데 이것은 벡크만이 자신의 고향에서 자신의 아내와 같이 있던 다른 남자를 발견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모든 이들이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되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수많은 귀환자들의 내적인 갈등은 주인공 벡크만과 그를 따라다니면서 그의 자살을 막으려 하는 타인(他人)의 대화로 표면화된다. 타인은 그래도 살아야 함을 근거 없이 주장하고 벡크만은 끊임없이 엘베강의 유혹-자살유혹-을 받는다.
이 작품이 치밀하게 잘 쓰여진 작품은 아닐지라 할지라도 그 진정성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호흡으로 쓰여졌다는 것은 한국어 번역본만을 읽어봐도 뚜렷이 드러난다. 짧은 호흡과 적나라한 대사들. 전쟁을 몸소 겪었던 작가가 자신의 남은 삶과 삶의 의미에 대해서 벌인 치열한 대화. 1921년 생이었던 보르헤르트는 47년에 죽었다. 스물 여섯 살. 스물 여섯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혹독했던 3년의 전쟁, 그리고 세상의 모든 강가에 방독면을 쓰고, 의수를 한 군인들의 영원한 잠수.

 

 

 

 

 볼프강 보르헤르트 (Wolfgang Borchert, 1921~1947)
1921년 5월 20일 함부르크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나치에 대한 솔직한 의견이 담긴 몇 장의 편지가 반국가적이라는 이유로 사형언도를 받고 수감되었다가 다행히 특사로 풀려났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24세였다. 전쟁과 감옥생활로 건강을 해치고 전후의 격심한 주림에 시달리다가 1947년 11월 20일 바젤 근교에 있는 요양소에서 26살의 짧은 생애를 마쳤다.
그의 작품은<문밖에서(Drauβen vor der Tür)>를 제외하면 모두 습작기의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소품에서 전후 독일의 처절한 참상을 신랄하게 그렸다. ‘어느 극장도 상연하지 않으려고 하며, 어느 관객도 보려고 하지 않는 작품’이란 부제가 붙은<문밖에서>란 이 작품은 1947년 1월에 쓴 것으로 일주일 동안 단숨에 썼다고 한다.
그는<문밖에서>에 대한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이 작품을 완성한 후 곧 친구들을 불러 작품의 모든 배역을 혼자서 실연해 보였다고 한다. 이 작품이 빠른 시일 내에는 상연되지 못하리라는 견해가 많았지만 당시 방송극의 수석작가였던 슈나벨(Schnabel)이 이 작품을 전파에 띄워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2월 13일에 퀘스트(Quest)가 베크만의 역을 맡아 방송극으로 초연되었다. 주인공의 이름은 보르헤르트의 친구였던 조각가 쿠르트 베크만(Curt Beckmann)에서 따왔다.

 


<문밖에서>는 2차대전 이후 독일에 팽배한 혼란과 절망, 허탈감과 해방감이 뒤얽힌 정신적 폐허와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이다. 부상당한 채 종전을 맞은 주인공 벡크만은 새로운 생활을 위해 아내, 한 소녀, 과거의 연대장, 카바레 지배인, 부모 등을 차례로 찾아가지만 그곳에는 한결같은 혼란과 망각만 존재할 뿐, 그는 문 밖으로 철저히 따돌림을 당하고,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살란 말이야!’라고 소리치지만 끝없는 독백만 황막한 무대 위에서 메아리칠 뿐이다.
보르헤르트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생애처럼 짧고 간결한 문장을 통하여 인간의 생명과 삼라만상을 주재하는 절대자로서의 신마저도 간 곳이 없는 전후 독일의 대형비극을 고발하고 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려 충격적인 문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