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마쓰다 마사타카 '바다와 양산'

clint 2016. 1. 15. 18:14

 

 

 

 

<바다와 양산>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풍경 속에
깊은 감동을 녹여낸 작품이다. 서구식 리얼리즘과는 달리 동양적 리얼리즘의 표준을 제시한 이 작품은, 복잡하지 않은 정갈한 무대 위에서 격한 감정의 표현이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연기로 만들어진 새로운 사실주의 연극이다. 인물들은 오히려 무대 밖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무대 위에서는 그저 들려오는 소리에 미묘하게 반응하며 평범한 일상을 꾸려나간다. 극은 잔잔한 흐름 속에 배어 있는 짙은 정서로 스며드는 듯한 감동을 자아낸다. 지극히 조용하고 일상적인 흐름 위에 관객들은 그들의 공간에서 함께 숨 쉬며 그들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면서, 관객과 배우, 무대와 일상의 차이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일체의 인위적인 고안을 배제한 연극,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둔 것 같은 이 작품에 2004년 연극계는 최고의 손을 들어 주었다. 올해의 예술상을 비롯하여, 동아연극상, 한국연극평론가협회의 올해의 베스트3 등 연극계의 숱한 상을 휩쓸며 명실상부 최고의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바다와 양산>은 이 시대에 ‘연극의 리얼리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연극을 통해 관객들은 리얼리티, 즉 현실감, 진실감, 사실감, 생동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바다와 양산>은 연극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태도와 형식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결코 주제를 앞세우거나 강변하지 않지만 연극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정갈한 언어표현으로 관객과 깊은 대화를 가능하게 해준다. <바다와 양산>은 사는 일과 죽는 일, 결국 삶의 무게를 깊이 있게 전달해주는 연극이다. 대담하게 도전하는 ‘청년 연극’의 에너지도 필요하지만 조용한 성찰의 기회를 주는 ‘성인 연극’의 깊이와 두께도 절실하고 소중하다. 아내가 어떠한 병에 걸렸는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작품은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병에 걸린 아내와 그 아내의 죽음을 지키는 남편의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독자(관객)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편안한 가운데 명상하게 한다.두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 바다로 여행을 가려하지만 그 여행은 무산되고 결국 아내는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게 죽고 만다. 산 자만의 아픔은 아내의 장례식 후 혼자 먹는 밥상에서 보여준다.

 

 

 


어느 지방. 요지와 나오코 부부가 마당이 있는 작은 별채에 세들어 살고 있다.
요지는 소설가이자 고등학교 교사이고, 나오코는 불치의 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하루하루 녹록치 않은 생활을 이어가던 중, 나오코가 공원에 양산을 두고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오코를 대신해 요지가 양산을 찾으러 간 사이, 나오코가 쓰러지고 왕진 온 의사는 나오코의 생명이 삼 개월 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유감스럽게도 이 날 요지는 교사라는 직분마저 잃었다. 그리고, 요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람마저 호되게 불어댄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잡지사 편집부의 요시오카가 방문해 물받이를 수리한다. 나오코는 여전히 방에 누워있다. 이 때, 마음씨 좋고 순박한 주인집 부부가 요지에게 마을 운동회에 참가해 줄 것을 부탁하러 찾아오고 요지는 난색을 표한다. 그러나 결국 운동회에 참가한 요지는 발에 물집까지 잡혀 온다. 발에 약을 바르고 있는데 요시오카가 찾아와 출판사 여직원 히사코가 출판사를 그만두고 서울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원고를 받으러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요시오카의 말을 통해 히사코와 요지가 어떤 관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저녁 무렵에는 간호사가 나오코의 약을 가지고 방문해 의사 선생님이 짧은 여행을 허락했다고 전해준다.
드디어 바다에 가는 날 아침. 나오코는 외출 준비로 분주하다.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고, 예전에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핸드백을 꺼내며 잔뜩 들떠있다. 그 때 밖에서 히사코의 목소리가 들린다. 외출준비를 멈추고 세 사람은 둘러앉아 차를 마신다. 갑자기 나오코가 찻잔을 엎지르고, 세사람 사이에는 오랜 침묵이 흐른다. 이윽고 요지가 탁자를 닦으려는데, 나오코가 힘껏 잡아끌어 자신의 무릎 위에 놓는다. 그것을 본 히사코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도망치듯 뛰쳐나간다. 히사코를 뒤따라갔던 준모가 돌아와보니 정숙이 사라지고 없다. 그녀는 집 앞 마당에 서서 지금 무지개 속에 있다고 말하지만 요지의 눈에는 보이질 않는다. 나오코는 자기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는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결국, 두 사람은 차시간을 놓쳐 바다에 가지 못했다. 이듬해 정월, 장례식 날. 화장터에서 아내의 영정을 들고 요지가 들어온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사람들은 모두 돌아간다. 홀로 남은 요지. 상을 펴고 밥을 먹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요지, 무심코 아내가 있던 쪽을 보고 말한다. “이봐, 눈 온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할 리 없고 그는 다시 후루룩 거리며 밥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