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억척어멈과 그녀의 자식들」은 브레히트의 서사극의 대표작들 중의 하나로 종래의 희곡적 구성을 탈피하여 전체가 12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장에서 억척어멈이 포장마차에 올라앉아 세 자녀들과 함께 등장하면 국도변에 서서 행군을 하고 있는 군인들을 만난다. 억척어멈은 상사에게 일찍 전사할 운명임을 예언한다. 그러나 그의 세 자녀들도 죽음을 예고하는 제비를 뽑게된다.
여기서 큰 아들 아일립은 모병꾼의 꾀임에 넘어가 그와 함께 사라진다. 이리하여 전쟁을 통해서<한 밑천은 잡되>자녀들은 전쟁에 가담하지 않고 온전히 살려 보려는 그녀의 의도는 빗나가기 시작한다. 이제는 큰 아들을잃고 둘째 아들과 카트린이 포장마차를 끌고 떠나간다.
“당신도 전쟁에 붙어 먹고 살면서, 제 몸뚱아리하고 자식 새끼들은 다치지 않겠다 이것인가? 전쟁에 붙어 먹고 살려면 무슨 대가든 치뤄야 되는 법이야” 이렇게 뇌까리는 상사의 볼멘 소리를 뒤로 하며 억척어멈은 마차 옆을 따라간다.
그로부터 2년 후 그녀는 폴란드에서 큰 아들과 재회한다. 아일립은 큰 공로를 세워 - 사실 약탈에 공을 세워 - 용병 대장의 총애를 받게 된다. 그녀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유리한 상거래를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연대의 출납계원이 된 둘째아들 쉬바이처카스는 핀란드 연대의 일부와 함께 천주 교측 군대의 포로가 된다. 정직한 그는 자기가 책임을 맡은 금고를 숨기고 추적을 받다가 끝내는 금고를 강물에 던지고 붙잡혀서 야전 재판을 받게 된다. 여기서 억척 어멈은 뇌물을 주어 아들의 생명을 구출하기로 한다. 그러나 뇌물의 액수를 가지고 너무 오래 흥정을 하다가 기회를 놓치고 만다. 쉬바이처카스는 결국 총살된다.
<위대한 종교전쟁>은 계속 된다.
독일의 인구는 반감되고 남은 사람들 마저 전염병과 기아 그리고 군인들의 약탈에 시달리며 밤에는 늑대들이 폐허가 된 시가지를 훑어 간다. 억척어멈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전전하며 거지나 다름없이 되어 버린 군대를 따라 다닌다. 물론 한 때 번창하던 사업은 영락하고 거지가 다 되어 구걸로 연명을 한다.
1936년 신교의 도시 할레가 황제군의 공략을 받는다. 잠자는 도시 할레는 깨우기 위해서 카트린은 농가의 지붕에 올라가 북을 친다. 그 도시에 있는 어린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적병의 총탄을 맞고 죽을 때까지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북을 두들겨댄다.
억척어멈이 시내에 장사 일을 보러간 사이에 카트린이 벌린 비극이다. 이렇게 해서 억척어멈은 카트린을 마지막으로 세 자녀를 모두 잃게 된다.

독일의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대표작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은 '30년 전쟁'(1618~1648) 당시 종군행상(군대에서 직접 관리하는 PX가 생겨나기 이전에 군인들에게 물건을 팔던 상인)이었던 어느 삼남매의 어머니의 이야기다. '빵이 부패하기 전에 팔 생각으로 포화를 뚫고 이동할 정도의 여인'이기에 '억척어멈'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녀의 목표는 각자 성이 다른 세 아이들을 훌륭히 키워내는 것이다. 물론 유럽 역사상 최대이자 최악의 종교전쟁은 이러한 그녀를 위한 최상의 돈벌이 기회다. 그러나 어느 날, 빵과 셔츠에서부터 총알까지 싣고 다니는 그녀의 마차(그런데 말이 징발당해서 그녀의 아들들이 끄는 人車)가 신병을 모집하러 거리로 나온 장교와 부사관에게 검열당하면서 그녀의 '고난' 은 시작된다. 장교의 꼬임에 넘어간 아들들은 어머니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각자 대장의 신임을 받는 용맹스런 병사와 부대의 군자금을 관리하는 행정병이 되었지만, 소속 부대의 패전 등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딸마저 억척어멈이 팔 물건을 구하러 들어간 도시에 대한 포위공격 위험을 경고하는 북을 치던 중 화승총을 맞고 절명한다. 하지만 이렇듯 전쟁으로 자식들을 잃었음에도 억척어멈은 전쟁을 탓할 뿐 장사를 그만두지 않는다. 관객이 분노할 때 브레히트의 목적은 달성된다!
브레히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즉 전쟁으로 인해 자식들을 잃은 죽음의 상인들이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해서 남의 집 자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군수물자를 파는 모습을 고발하는 것이다.
브레히트가 의도적으로 붙인 부제<30년 전쟁의 연대기>라는 표현에서 나타나듯이 기존의 연대기와 차이 내지는 대립 속에서 역사의 의미를 새롭게 밝히려는 의도에서 쓴 것이다. 이런 점에서 30년대 말 이후로 민중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그의 문학 세계 속에서 이 작품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며, 브레히트 자신도 이 작품을 '현실에 입각한(Realitish)' 작품이라고 했다. 이 작품의 집필 동기는 브레히트가 수차에 걸쳐 강조했던 바와 같이 그가 망명 초기에 체류하였던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의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브레히트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전쟁을 수행할 만한 수단도 없이 히틀러의 침력 전쟁에 참가하여 이익을 얻고자하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 대해서 경고하기 위해서 이 작품을 썼노라고 추후에 거듭하였다.

「억척어멈과 그녀의 자식들」은 1939년에 완성된 희곡 작품으로 브레히트의 다른 대작인「갈릴레이의 생애」,「세추안의 선인」등과 같은 시기에 쓰여졌다. 브레히트는 1939년 4월 다가오는 전쟁의 위협을 느껴 당시의 망명지인 덴마크를 떠나 스웨덴으로 간다. 여기서 그는 9월 말에「억척어멈」을 기고하여서 11월 초에 이를 탈고한다. 이때는 이미 히틀러의 폴란드 기습 (1939년 9월 1일)으로 전 유럽이 걷잡을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때이다. 세계 제 2차 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 하에 쓰여진「억척어멈과 그녀의 자식들」에는 「30년 전쟁의 한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희곡의 주인공인 억척어멈의 전형은 Grimmelhausen (1622년경 - 1676)의「Trutz Simplex」라는 소설의 여주인공에서 찾아 볼 수 있으나, 브레히트의 억척어멈은 전혀 다른 인물로 변형되어 있다.
작품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이 세계 제 2차 대전이었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지만, 본 희곡의 부제목이 암시하듯이 작품 내용도 30년 전쟁을 다루고 있다. 무대로 벌어지는 억척어멈의 파아란 곡절 많은 12년간의 종군의 행적을 그리고 있다.
억척어멈의 자녀들은 그들의 장점 때문에 생명을 잃게 된다. 큰아들은 그 용감성 때문에 - 전시에는 표창을 받았으나 평화시에는 동일한 행동으로 사형을 받는다. 둘째 아들은 정직성 때문에 죽게되며 벙어리인 딸은 본능적인 동정심 때문에 희생된다. 억척어멈이 세 자녀를 잃게 되는 장면에서 언제나 그녀는 흥정을 하거나 또는 다른 상행위에 연관되어 있을 때마다. 억척어멈의 인간상은 수수께끼처럼 복합적이고 모순에 차 있다.
그녀의 일념은 전쟁을 통해서 “한 밑천 잡으려는데” 있다. 기회가 있기만 하면 노련한 상술을 발휘한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로서의 모성애도 지극하다. 카트린 때문에 곰방대 피터의 유일한 제안도 수락하지 않는다. 25여년을 유럽각지의 전쟁터로 전전하는 유랑생활을 끝내고 우트레히트로 가서 정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사실 억척어멈의 이런 측면 즉 불행한 어머니로서의 측면이 우리의 감정에 호소하는 바가 크다. 1941년 4월 취리히 극장에서 이 작품이 초연되었을 때 억척어멈은 니오베의 비극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당시의 관객은 억척어멈에서 불굴의 생명력을 가진 동물적인 모성을 보았던 것이다. 이에 브레히트는 억척어멈을「전쟁터의 모리배」로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그녀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다시 장사가 되어야겠는데” 하며 출판한다. 그녀는 제 6장에서 카트린이 병사들에게 폭행을 당한 것을 보고 전쟁을 저주하기도 하지만 곧 이어 장사가 잘 되자 곧 이를 잊고 만다. 그녀는 끝내 아무런 깨달음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이점에 대해서 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억척어멈이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더라도 그녀를 보는 관객은 무엇인가를 배울 것이다. 그녀는 전쟁의 상업적인 본질에 유혹되지만 전쟁에서 한 몫을 보는 것은 소시민이 아니라는 사실 하나로 이다. 소시민은 언제나 패배와 승리의 대가를 치룰 뿐이다. 주인공이 이러한 통찰에 이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객이 이것을 보게되는 것이 중요하다.

브레히트의 30년 전쟁과 억척어멈과 자식들
‘30년 전쟁의 연대기’라는 부제에서 연대기라는 용어는 원래 역사의 사건을 시대순으로 서술하는 것으로 이제까지는 세계의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 듯한 개인들, 황제, 왕, 제후, 장군과 같은 영웅사를 기술하였으나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을 민중으로 등장시킨다. 이는 역사라는 것은 영웅적인 개인에 의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메우다 스러져 간 수많은 민중의 피와 땀에 의해 이루어진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1. 종교: 진짜 목적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로 되고 전쟁을 통해 이익을 보려는 지배계급의 의식을 관철시키는 형태로 이용된다.
기존의 지배체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지배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수단 인 것이다.
모든 범죄 행위들이 정당화 된다.
신앙은 상황에 따른 의미의 재해석에 의해 바뀐다.
2. 상업주의
전쟁의 실제원인, 전쟁은 이익을 보겠다는 사람들에 의해 끝나지 않는다. 피지배계층은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전쟁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지배계급의 일이 그들 자신의 일과 동일하다(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잘못된 믿음이 생기게된다. 그래서 자신도 개인적인 이윤추구를 포기하지 않은 한 전쟁은 계속되기를 바란다. 따라서 전쟁에서 자기의 몫을 놓치려 하지않으며 오히려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부패적인 상황은 전쟁중에 인간성을 규정하는데 바로 인간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돈이 사회의 가장중심이 되는 것이다. 종교적인 이유는 모두 사라졌다. 따라서 이러한 돈의 이기주의, 이익의 이기주의를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은 인간을 도울수 없다. 인간이 인간을 도울수 있으려면 카트린 처럼 모든 이기심을 버리고 본질적인 인간애로 나가야 한다. 결국, 전쟁은 지배층에게는 명성이나 돈을 얻지만 민중은 모두를 잃어 버리게 된다.
3. 사회적인 덕목
용감성, 정직성 등은 모두 기존의 체제를 유지시키위해 필요할 뿐이다. 아일립은 용감성 때문에 능력을 인정받지만 결국 그 때문에 죽음을 당한다. 쉬바이처카스는 자신의 일을 끝까지 완수하려는 정직성 때문에 죽음을 당한다. 도덕적인 덕목은 지배계층에 의해 이용당한다. 그들은 이러한 덕목을 전쟁의 도구로 이용되고 진정한 사회적인 덕목의 실현은 카트린으로부터 실현된다.
○전쟁에서 나타난 인물 태도
1.억척어멈
①상업적인 성향으로 전쟁은 이익을 준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전쟁이 평화보다 낫다라는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다.
②순응의 행동양식을 옹호 :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것으로 항복은 오히려 정당하고 현실변화를 위한 행동주의적 믿음은 오히려 이상주의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러한 순응이 마지막 자신이 장사를 하는 이유인 자식들을 모두 잃어버리게된다.
③ 인식의 한계: 자기 가족의 파괴와 그럼으로 해서 나타나는 실패의 원인을 통찰하지 못하고 다시 현실순응으로 빠져든다. 이것은 자신의 불행으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그녀가 갖는 인식의 한계를 관객으로부터 비판하게 하고 인식가능성을 호소하는 것이 브레히트가 바라는 의도이다.(소외효과)
2. 카트린
①침묵의 의미: 모든 것은 행동으로 보여준다. 기존의 사회질서와 억척어멈이 가지고 있는 상업적 체제, 그리고 전쟁은 필수적이며 어쩔수 없다는 것에 반대하는 사회변화가능성의 방법을 본질적인 인간적 동정심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세계를 변화시키고 개선시키는 것은 다름아닌 행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②현실순응의 비판적 태도: 억척어멈의 비인간적, 상업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농부 부부처럼 현실순응을 위한 체념을 비판하여 대항복이라는 잘못된 삶을 행동으로 지적한다.
③가장 불가능한 사람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불가능한 것으로 보여지는 불가능성은 그릇된 의식과 행동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것들을 지양할 때 만이 불가능성이 가능성으로 전화되고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는 것이며 인간들에게 펼쳐진 현실은 운명이 아니라 시도 가능한 것임을 제시하고 있다.

○브레히트의 생각
브레히트는 자신의 처해있는 파시즘, 나치즘은 자본주의가 도달한 하나의 역사적 단계라고 보았다. 그래서 자본주의 가장 대표적인 상업성을 비판한다. 상업성은 결국 이익과 이익의 다툼이고 그래서 전쟁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라 여겼다. 결국 자본주의는 불행이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당시의 파시즘의 전개과정을 지켜보면서 파시즘의 본질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이에게 위험성과 전쟁의 기운을 경고하고자 했다. 그는 이작품에서 전쟁은 인류에게 어쩔수 없이 넘겨진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며, 오히려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자하는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것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래서 억척어멈과 같은 현실순응을 비판하고 카트린처럼 행동하는 것은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민중들의 비판과 행동이 요구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 대한 브레히트에 생각은 전쟁교본 ‘사진시집’의 맨뒷장 의 시에서 잘 나타내주고 있는 듯하다.
잊지 말아라,너희보다 못할 것 없는 많은 사람들이 다퉜다는걸,
왜 자신들이 아니라 너희가 이곳에 않을 수 있느냐고.
책 속에만 파묻히지 말고 함께 투쟁하여라.
배움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워라. 그리고 그걸 결코 잊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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