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쯔카코우헤이 '평양에서 온 형사' (매춘수사관)

clint 2015. 12. 24. 09:05

 

 

 

 

 

극작가이자 연출가이기도 한 재일교포 쯔카코우헤이(본명 金峰雄)가 이번에 들고 온 작품은 이미 1985년에 초연된 바가 있는 「뜨거운 바다」를 비롯 한국 정부로부터 '한국 사상 최초 일본어 공연 연극' 허가를 승인받았다는 「매춘 수사관」, 그리고 이 연극의 한국어판인 「뜨거운 파도-평양에서 온 형사」 등 모두 세 작품이다.

먼저 쯔카 코우헤이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면, 그는 1948년 일본 후쿠오카(福岡) 현에서 출생한 재일교포 2세이다. 게이오대학 문학부를 다녔으며 희곡 「전쟁에서 죽지 못한 아버지를 위하여」를 잡지 「新劇」에 발표, 일본 연극계에 정식 데뷔를 하였다. 1974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아타미(熱海) 살인사건」으로 권위 있는 기시다 구니오(岸田國士) 희곡상을 수상하였는데 이 작품이 바로 「뜨거운 바다」의 원작에 해당한다. 「아타미 살인사건」은 「가마다(蒲田) 행진곡」과 더불어 쯔카 코우헤이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 되며 이후 이십여 년이 넘도록 자신의 연출로 직접 무대에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이 작품에 대한 그의 애착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쯔카 코우헤이는 자신의 대표 희곡을 소설이라는 양식을 빌려 발표하기도 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소설 「가마다 행진곡」은 나오키(直木) 문학상을 수상하여 작가로서의 그의 저력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아타미 살인사건」은 경시청의 이름난 형사 기무라(木村) 부장형사와 도야마(富山)현 경찰서에서 전임 온 젊은 구마다(熊田)형사, 그리고 여경 야스다(安田) 하나코, 이들 세 사람이 아타미 바닷가에서 어릴적 친구였던 여공(女工)을 목 졸라 죽인 혐의로 체포된 공원(工員) 오야마 긴타로(大山金太郞)를 취조하여 완전자백으로 이끌어내는 전말을 그리는 설정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형사들이 정열을 쏟는 것은 사건 그 자체의 진실보다는 어떻게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건을 보다 극적으로 그럴듯하게 조형해 내는가에 있다. 극히 통속적인 스토리를 미적으로 완벽한 범죄사건으로 형상화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웃음은 쯔카 코우헤이 연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마침내 '쯔카 희극'이라는 고유명사를 획득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스토리의 기본적 구조와 맞물린 쯔카의 연출 의도는 한국어판 「뜨거운 바다」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985년(11. 1∼9)의 첫 공연, 1987년(6. 23∼7. 12)의 재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무대인 「뜨거운 바다」는 초연 때의 배우들이 다시 모여 연기를 펼친다는 점에서 그들의 열의를 느끼게 한다. 전무송, 강태기, 김지숙, 최주봉 가운데 최주봉만이 손병호로 바뀌었을 뿐이다. IMF 체제에 놓인 한국의 경제상황, 일본 천황의 한국방문 등 현시대의 정황을 화제로 삼아 개작한 것은 연출가 쯔카의 현실에 대한 관심, 그리고 연극「뜨거운 바다」가 세월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언제고 새롭게 재탄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서울시 경찰청 최고의 민완수사관으로 소문이 나 있는 전(全)부장형사(전무송 역) 밑으로 한국의 수사방법을 배우기 위해 재일한국인 강형사(강태기 역)가 도쿄(東京)에서 파견되어 온다. 그러나 강형사의 실제 임무는 일본 천황 방한의 호위에 있으며 게다가 그와 전부장은 이복형제간이다. 두 사람은 각기 살아온 환경과 체험의 상이함으로 인해 서로에게 깊은 애증의 상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에 여동생 민비의 한(恨)을 품고 가족에 비극을 초래한 일본인에 대한 복수로 천황 암살 계획을 불태우는 아름다운 김형사(김지숙 역)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은 인천의 바닷가에서 여공을 허리띠로 목졸라 죽인 공장 노동자 손(손병호 역)의 살인사건을 함께 해결하게 된다. 이러한 설정에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강형사의 입을 빌어 그 자신 재일한국인 2세의 입장과 시각을 지닌 쯔카 코우헤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쯔카 코우헤이의 관점은 「뜨거운 파도- 평양에서 온 형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김정일의 가장 우수한 부하로서 북한 경찰 내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손 형사는 공원(工員)이 인천 해변가에서 여자를 허리끈으로 목 졸라 죽인 사건의 조사를 위해 서울 시경으로 파견된다. 그러나 그의 또 다른 목적은 분단된 한반도의 역사에 관련된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손 형사와 함께 일하게 될 서울의 이 부장 형사는 아름다운 여자이다. 이 부장 곁에서 그녀를 오래 동안 보좌해 온 유 서기관은 대머리에 호모로 상사에게 받은 학대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번득이고 있다. 용의자 박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대전이라는 인물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그는 박의 고향에서 고장의 자랑이라고 여겨지던 북한으로부터의 망명자였다. 고향을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조선 진달래꽃을 이대전에게 보내왔던 박이 알게 된 사실은 선배 이대전이 고향에서 온 여자들을 모아 창녀촌으로 보내는 모습이었다. 박이 죽인 하춘자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이대전은 결국 양심의 가책과 기대에 어긋난 현실적 요구에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만다. 처음부터 아름다운 이 부장에게 애정을 느낀 손 형사에 대해 이 부장 역시 자신도 모르게 사랑을 느끼고 그녀는 수사가 끝나고 북한으로 돌아가려는 손 형사에게 그의 신변안전을 위해 국가 기밀을 넘겨준다. 이 때문에 결국 죽임을 당하고만 이부장의 주검을 안고 손 형사는 조국통일의 뉴스와는 아랑곳없이 “남북은 통일되었다. 하지만 난 나의 가장 귀중한 조국을 잃었다"라고 외친다.

우리말 공연의 두 작품 「뜨거운 바다」와 「뜨거운 파도」는 각기 다른 일본어 원작을 두고 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유사한 서술구조와 요소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애당초 결코 원만한 관계라 할 수 없는 사람들끼리의 만남에서 극이 출발하고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오랜 세월을 동떨어져 살아온 탓에 도쿄에서 온 재일교포와의 만남, 평양에서 온 이북 동포와의 만남은 모두 상호 이질적인 감정과 갈등을 끌어안고 불가피한 충돌과 마찰 속에서 거칠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바로 만남에 의의가 있으며 만남을 거치지 않고서는 상호이해와 화해의 길로 나아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나는 겁니다?「뜨거운 바다」에서 강형사의 말)라는 대사는 상호반목의 시대를 벗어나 새로운 화합의 미래를 모색하려는 쯔카 코우헤이의 작가적 자세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인간과 인간과의 따뜻한 관계,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남성이 여성에 대해 느끼는 깊은 사랑에서 발견되는 쯔카 코우헤이의 조국 이미지에 접하게 될 때, 우리는 그동안 무관심과 무지로 일관해 온 재일한국인이라는 존재의 무게를 새삼 인식하게 된다. 아울러 재일한국인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체득한 독특한 감수성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표현해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같은 사실은 극단 「신쥬쿠 양산박(新宿 梁山泊)」을 이끌며 맹활약하고 있는 김수진(金守珍) 연극의 특징과 개성을 살펴보아도 쉽게 수긍이 간다.

일본과 한국 두 나라 사이의 경계를 살아가는 재일한국인이 겪는 민족적 정체성의 문제는 실존적 위기와 갈등을 수반한다. 더욱이 민족주의적 경향이 농후한 재일 1세대와는 달리 이후의 세대에게 민족 혹은 조국이라는 개념은 생소하게 받아들여질 뿐이다. 이러한 상황의 연장선상에서 쯔카 코우헤이의 조국 이미지가 이해될 수 있다. 돌아갈 수 있는 조국의 부재는 쯔카 코우헤이에게 구체적인 조국의 모습이기보다는 남녀의 관계성으로 환원되어 관념적이면서 다분히 낭만적인 정조를 띠고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나름의 절실한 의지표명이 아닐 수 없다.

연출가로서 쯔카 코우헤이의 특징은 기본적인 스토리만 설정해 두고 연기자의 특성과 개성에 맞춰 적합한 대사를 연습 때마다 끊임없이 만들어간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쯔카 연극의 대본은 적어도 공연 직전까지는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있으며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한다. 이번 공연의 두 작품에서 눈에 띄는 그의 연출력은 소수의 배우들로 다양한 인물들의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점, 살인사건이 개입됨으로써 시종일관 관객으로 하여금 사건진상 해결에 대한 기대와 긴장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 그리고 배우가 마이크를 들고 객석에서 노래를 하는 등 오락적 요소를 곁들였다는 점 등이다. 각 배역들에게 주어진 정형적인 역할분담을 탈피하고 자유로운 변신을 시도해 보이는 유연성 또한 쯔카 연극의 매력으로 꼽을 만하다.

쯔카 코우헤이의 이번 서울 공연은 '재일교포가 만든 연극'이라는 사실을 뛰어넘어 연극 그 자체가 지닌 재미 또한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던 유쾌한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