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황연극(Panic theater)’이라는 미학으로 ‘삶이 곧 기억이므로 인간은 우연적 존재’라면서 ‘무질서의 질서 창조’를 강조하고 있는 ‘페르난도 아라발’(이하 아라발 표기). 올해 81세인 그는 스페인계 프랑스 극작가이자 시인이며 영화감독으로서 현재 살아있는 현대 전위연극의 기수로 알려져 있다.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경험하면서 어두운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그의 작품엔 극한상황을 전제로 한 현대사회의 부조리 세계가 그 주제 배경으로 점철되어 있다. 아라발의 7권 전집을 번역한 동의대 김미라 교수는 “이성에 근거하여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삼은 물질의 초고속화는 현대를 분란의 도가니로 몰고 있다”라는 우려를 언급하고 있다. 특히, ‘자연의 본질, 더 나아가 인간의 본성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연극제 상징 문구들이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 필자의 눈길을 멈추게 했다.
그랬다. 인터넷이 아니라 하더라도, 현대 첨단과학은 너무 빠르게 우리 삶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다. 변하는 환경을 앞질러 문명의 혜택을 먼저 가진 사람들과 휴머니즘 중심의 인간 끌어안기에 즐거움을 나누는 사람들, 그 사이엔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차이의 벽이 점점 높아져 가게 마련이다. 첨단문명의 빠른 자본 축적으로 인해 명확한 이분법이 몸에 배이게 되는 현대인이란 이름, 그래서,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인간의 정을 더 느끼고 싶어 하지만,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정체성 바꾸기에는 이미 인간사랑 능력이 결핍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주저앉고 마는 또한 나도 현대인 것이다. 이러한 현대인들에게 어서 내가 가진 것을 편하게 드러내고, 나눔으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껴보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라발이나 이번 현대극에 참여한 모든 예술인 혹은 관객들 모두의 공통된 마음이리라.

<사형수의 자전거> 줄거리
교도소 어둠 속, 오른쪽 자그만 벽을 저쪽 옆에 두고, 피아노 음계 연습하는 죄수 비로로. 오로지 ‘도레미화솔라시도’를 틀리게 치는 그는 감정 기복이 심하다. 살인범 역할을 내며 스스로 우리에 갇혀 자학놀이를 하는 사형집행관 빠조. 빠조가 사형집행관인지 모른 채, 그가 갇힌 우리를 끌고 다니는 호송인 따스라. 가끔 자전거를 타고 면회 오는 따스라는 비로로의 애인이다. 빠조는 곧 죽게 될 비로로가 피아노 음계를 불안하게 치는 것을 보고, 다른 부하 두 사나이들과 함께 조롱하며 낄낄 웃어댄다. 비로로는 빠조가 자기를 죽일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꿈과 사랑의 상징인 파란풍선을 주고받는 비로로와 따스라. 비로로가 발과 손목이 묶인 채 피아노를 계속 연습하는 것을 보고, 짧게나마 비로로가 더 살아있기를 바라며 따스라는 교도관들을 유혹해 시간을 연장시키려 한다. 빠조가 따스라를 안으려 하자, 피아노를 치는 비로로를 가운데 두고 쫓고 쫓긴다. 끝내 잡혀 함께 뒹굴게 되지만, 따스라는 빠조 머리를 발로 차 쓰러뜨리고, 다른 교도관을 계속 유혹한다. 아픔을 참고 일어나는 빠조를 보는 비로로. 그는 빠조를 처음으로 쳐다보고 손가락질하며 웃는다. 더욱 사형집행시간이 다가온 것을 직감, 정확한 음계에 맞춰 더욱 열광적으로 피아노를 쳐대는 비로로. 빠조, 비로로를 죽인다. 빠조와 두 사나이, 겉으로 웃으나 죽은 비로로를 존경의 눈길로 바라본다. 자전거와 비로로의 관을 끌고 사라지는 따스라.

그의 희곡과 소설은 난폭하고 잔인하고 외설적인 내용이 많다.
제지회사 사원으로 일하다가 마드리드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950년대초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1955년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갔다가 그곳에 머물렀다. 1958년 첫 희곡집이 나왔고, 1959년에 전쟁의 공포와 한 가족의 즐거운 소풍을 대비시킨 반전적 내용의 풍자물 〈전쟁터 속의 소풍 Pique-nique en campagne〉이 상연되면서 프랑스 아방가르드 작가들로부터 주목받게 되었다. 초기 희곡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은 예수의 이야기를 익살맞게 개작한 〈자동차 묘지 Le Cimìetière des voitures〉(1958)일 것이다. 그의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종종 어린애 같으면서도 천진함이라고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로, 대개 매춘부나 살인자 또는 고문자들이다. 196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연극은 점점 더 형식적이고 의식적(儀式的)으로 되어갔고 자신이 '공포극'(Théâtre Panique)이라고 부르는 형태로 발전해갔다. 수많은 희곡을 쓴 이 시기에 나온 작품으로는 2명의 등장인물이 서로 역할을 바꾸어보는 내용인 〈건축가와 아시리아의 황제 L'Architecte et l'empereur d'Assyrie〉(1967)와 이전의 희곡보다 더 공공연히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리고 그들은 꽃에 수갑을 채웠다 Et ils passèrent des menottes aux fleurs〉(1969)가 있다. 이 작품은 1967년 스페인 여행중에 투옥당했던 일을 상기하며 쓴 것으로,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첫 소설인 〈바빌론의 바알 신 Baal Babylone〉(1959)은 파시즘 치하의 스페인에서 보낸 악몽 같은 어린시절의 기억을 다루고 있다. 1970년 그는 이 소설을 〈죽음이여 만세! Viva la Muerte!〉라는 제목의 영화대본으로 개작해 튀니지에서 영화로 찍었다. 대단한 다작가(多作家)인 그는 12권에 달하는 희곡집을 출판한 외에도 소설, 영화대본, 시, 정치적 논픽션물 등을 썼으며, 체스에 관한 책도 2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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