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카프카 원작 이윤택 재구성 '사랑의 힘으로'

clint 2015. 12. 10. 09:20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텍스트로 하여 이윤택이 다시 쓴 창작극이다. (94. 7. 17 파리에서 초고 완성)

이 작품은 극히 일상적인 시간/공간/인간속에서 엮어지는 비일상의 세계이다
이윤택의 ‘사랑의 이름으로’에서는 좀더 현실적으로 히스테리 궁이라는 병으로 나타난다. 이는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자극하여 이성이 지탱 할 수 있는 한계를 느끼게 될 때 이성으로부터 육체가 이탈하면서 발병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나오는 주인공 K는 한국이라는 현실 사회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 등장한다. 그 또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사회적 위치를 가지는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정작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또한 그레고르처럼 홀로 되어 자신을 위해 희생해 온 어머니와 여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히스테리 궁이라는 병명 안에서 우리는 이념도, 사랑도, 우정도, 모든 가치 중심이 무너진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두 작품에서 변신의 원인은 제각기 다르다. ‘변신’에서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것은 산업 현대사회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소외, 절망 때문에 현실 속에서 왜곡된 자아의 발현이다. 한편 ‘사랑의 이름으로’에서 K에게 있어 그가 히스테리 궁이란 병을 얻게 된 것은 그의 직업적인 원인과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억압과 반동의 일탈 심리와 가족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달라져 버린 K는 히스테리 궁이라는 병을 선고받고 일상적인 생활으로부터 벗어난다. 그 또한 그레고르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막중한 의무감을 갖고 있다. 물론 그는 그레고르처럼 가족으로부터 야멸차게 소외되지는 않지만 병을 얻고 출근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가족, 애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그의 의식도 서서히 깨어난다.

이윤택의 다른 작품 ‘시민 K'에서도 독재 체제 하의 지식인의 고뇌를 그린다. 시민K는 80년대를 배경으로한 신문기자이지만 그는 의지나
동기부여가 없는 인물이다. 그는 불의에 맞서기 위해 투옥을 선택한 것이 아닌 주변을 의식해서 회색분자가 되지 않기 위해, 즉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투옥되기를 바란다. 투옥과 조사, 고문과 수감 다시 석방의 과정을 겪으면서 그의 의식은 조금씩 눈떠간다. 즉, 변신은 진실을 투영하는 도구적 의미이며 너무 과속화되어 기형적으로 변한 사회와 그에 대응하지 못하는 나약함을 비판하는 매개체인 셈이다. 이윤택의 ‘사랑의 이름으로’에서는 K에게 절대적 힘을 미치는 존재로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등장한다. 모성 이데올로기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존재이다. 그런 어머니의 희생은 아들에게 큰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자신의 꿈을 갖고 있지만 가족들의 희생의 대가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의무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아버지의 존재는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가족에 대한 부양은 뒷전이고 글 나부랭이나 쓰다가 객사한 능력 없고 나약한 존재로 어머니와 대조적인 모습으로 부각된다. 어머니에게 있어 아버지는 애증의 대상이지만 K는 아버지를 연민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의 또 다른 작품 ‘시민 K’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절대자는 어머니가 아닌 보이지 않는 정부의 세력이다. 또한 김영현의 ‘벌레’에서는 그를 옭아매는 사회와 감옥에서의 방성구, 수정이 그를 억압한다. 이러한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극중 주인공들은 그들이 의식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맞이하거나 파멸 당하기도 한다. 이윤택은 카프카의 독자로써 카프카적 결말을 다시 그 나름으로 체화해서 그의 작품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물론 이윤택의 작품 ‘시민 K’에서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 강압적인 세력에 저항하다 죽음을 맞게 되지만, 그의 또 다른 작품 ‘사랑의 힘으로’ 에서는 카프카와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그의 애인과 사랑에 대해 구원의 여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체포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대안으로 애인의 사랑을 제시한 점에서 카프카와 이윤택의 결말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윤택의 작품에서 그는 현실의 모순을 끊임없이 고발하고 그에 따라 해결 가능성을 쥐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과도하게 삐뚤어진 현실을 사랑만으로 극복 가능한 가에 대한 회의도 들기는 하지만 이것을 출구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스란히 독자의 몫인 셈이다. 이윤택은 카프카의 작품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의 일생이 카프카와 비슷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카프카를 현대적 삶과 연결시켜 생각한다. 이윤택 또한 카프카처럼 작가로써 외부인, 이방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벌레로의 변신이 히스테리궁이라는 병의 발발로 바뀌고 강압적인 세력이 아버지인 반면 어머니로 바뀌었을 뿐 그 내면의 상징은 카프카의 작품과 일치한다

 

 

 

이윤택의카프카 수용 작품인 ?사랑의 힘으로?는 ?시민K?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두 작품에서 주인공은 한국의 신문기자 K이다. ?시민 K?의 경우 군부 독재하의 지식인이 체제의 폭력과 조작을 투시하며 독재체제 하에서의 지식인의 역사적 역할을 인식하는 과정이 그려졌다면 ?변신?의 개작작품인 ?사랑의 힘으로?에서는 군부 독재시기 이후의 한국사회, 물신주의 물질만능사회의 방향을 잃은 혼돈 속에서 저항하며 작가로서의 길을 찾는 지식인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다시 말해 ?시민 K?의 경우 한국의 지식인이 유형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면 ?사랑의 힘으로?에서는 개인적 차원에서 작가로서의 길을 찾는 지식인의 문제가 다루어지며 경제가 모든 사고의 구심점을 이루고 있는 물질주의 시대에서 문학인으로서의 자아를 찾는 작업이 ?변신?의 형식을 빌려 전개되고 있다.

어느 날 아침 K는 발작을 일으킨다. ?변신?에서처럼 갑충류 벌레로 변한 것이 아니라 ‘히스테리궁’이라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킨다. 비현실의 공간까지 넘지 않고 논리적, 현실적으로 파악가능한 상황이 설정되며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은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갈등으로 대체된다. K의 어머니는 현실적이고 물신적인 한국의 대표적인 홀어머니의 모습으로 아들의 교육에 자신을 희생하며 아들의 성공에서 자기의 삶을 보상받으려하기 때문에 그의 인생을 설계, 지배하려하며 그것은 문학가가 되려는 아들에게는 치명적인 부담이 된다. K를 정신병까지 몰고 간 요인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과 현실사이의 갈등, 그리고 그 갈등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제적 예속성, 그리고 이 경제적 예속성은 카프카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무엇보다도 가족에 대한 부양책임에서 온다.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문이 요구하는 진실의 왜곡과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사명감 사이의 갈등은 그를 정신분열증으로까지 몰아가고 모순된 현실에 회의를 느끼며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겠다는 꿈을 꾸지만 세속적 성공을 고집하는 어머니의 기대감이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가족에 대한 의무감, 미칠 것 같은 직장생활, 글을 써야한다는 강박감,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 〔…〕” 이 한계상황까지 이르며 급기야는 발작증세로 나타난다. 이 정신병은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가치 중심이 무너진” 세상에서 방향감각을 잃게된 인간에게 있어 “인간의 이성으로부터 육체가 이탈”하면서 일으키는 병이다. 지속적이고 과도한 스트레스 상태에서 인간의 이성이 지탱할 수 있는 한계가 무너지면서 “육체를 통제하고 조절하던 신경세포가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80년대 혁명을 꿈꾸던 시절만 하더라도 “무너뜨려야 할” 대상이 있었지만 90년대의 물신주의 혼돈의 시대에는 “무너뜨려야 할 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총구를 자기 자신에게 갖다 대면서 자신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며 “보이지 않는 적”이 지배하는 현실로부터 탈출하고자하는 근본적인 충동이 그 출구를 찾지 못하여 기형적으로 분출을 하게 되는 것이 ‘히스테리궁’ 이라는 것이다. 이윤택의 카프카 해석은 ?시민 K?에서와 마찬가지로 카프카의 수용이면서 동시에 카프카 극복을 의미한다. 그는 그레고르의 벌레로의 변신을 자아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수용하나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 획득된 자아 인식을 토대로 한 현실에로의 복귀이다. 카프카의 경우 그레고르는 변신을 통해 자아 찾기에는 일단 성공하나 변신 후 다시 인간사회에로의 환원을 원하는 그의 희망은 성취 불가능하며 이윤택은 여기에 한계를 느낀다. 그는 변신의 과정이 비현실적인 환상이라고 해석하지는 않으면서도 카프카의 몽환적 세계로는 현실파악은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그가 그려내는 상황은 ?변신?의 상황을 전제로 하나 이중구조를 설정하고 있으며 그것은 무대구성에서도 나타난다. 즉 무대는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는 K의 방이지만 “이 문은 현실로 통하는 길이며 현실 뒤편으로 통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윤택은 벌레로의 변신이 아니라 현실복원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정신병의 발작으로 설정한다.

강요된 현실에서 벗어나 글을 쓰려는 것은 카프카뿐만 아니라 K의, 나아가서 이윤택의 희망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