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그리고리 고린 '작별의식'

clint 2015. 12. 8. 13:59

 

 

 

 

 

 

 

숄롬 알레이헴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2막 희곡이다. (우리에게는 지붕위의 바이올린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러시아 7,80년대를 풍미한 고린의 작품으로 우크라이나의 한 시골에 살고 있는 목장을 하며 젖과 치즈를 파는 유태인 일가족과 그 주변의 인물들이 얽힌 재미있는 작품이다. 테비에라는 목장 주인과 부인 골다, 그리고 다섯 명의 딸들이 한 가족이고 유태인이기에 러시아정교를 믿는 현지인과 구약을 믿는 유태인들이지만 잘 융화해서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데 우여곡절 끝에 딸 세 명을 모두 시집보내는데 아버지로서 여러 조건과 권위를 갖고 더 나은 곳으로 결혼시키려 하나 부인 골다와의 의견충돌도 잠시 결국은 모두 딸이 원하는 신랑에게 보내게 된다. 특히 셋째 딸은 종교 차이로 극구 말렸으나 힘없이 본인의 뜻을 접게 된다. 부인 골다는 지병으로 큰 딸이 산고를 겪을 때 마음속으로 힘을 주고 운명하고

얼마 후 이들 유태인들은 러시아 정부의 유태인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정든 이 마을을 떠나게 된다. 고린을 이 작품의 여러 비극적인 요소들을 재미있게 표현하였고 그런 와중에 당시의 유태인들의 서러움과 부모의 자식사랑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1905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지방의 작은 마을 유태인 부락에서 우유가공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테비에는 가난한 삶에도 불구하고 신앙심이 깊은 남자다. 그는 수다스런 아내 골다와 다섯 명의 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장녀는 아버지와 상의도 없이 양복점 직공을 사랑한다며 그와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전통을 존중하는 테비에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딸아이의 의지를 꺾을 수 없는 처지라 결혼을 승낙하고 만다. 그런데 결혼식이 열리는 식장으로 러시아 경관이 들이닥쳐 식장은 수라장이 되고 만다. 러시아 혁명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것. 우여곡절 끝에 장녀의 결혼을 마쳤더니 이번에는 둘째딸이 가난한 청년과 결혼을 하겠다고 하더니, 또 셋째까지 러시아 청년과 사랑에 빠져서는 몰래 도망쳐버린다. 그러는 와중에도 러시아의 정국은 더욱 악화되고, 그 여파는 이 마을에도 밀어닥친다. 유태인 퇴거명령이 떨어진 것. 결국 테비에를 비롯한 유태인들은 정든 땅을 버리고 미국에서의 재회를 약속하며 마을을 떠나간다.

 

 

 

작가소개

20세기 후반을 풍미한 러시아 극작가다. 그는 희곡뿐만 아니라, 유머, 풍자, 영화 시나리오 등 다방면에서 집필 활동을 했으며, 시사평론도 발표했다. 아버지 이즈라일 아벨레비치 옵시테인(Израиль Абелевич Оф-штейн, 1904∼2000)은 2차 세계대전에서 공을 세운 군인이었고, 어머니는 응급실 의사였다. 그는 아버지의 성(姓) 옵시테인과 어머니의 성 고린스카야를 합쳐 고린시테인(Го-ринштейн)이란 필명을 사용하다가 1963년에는 고린이란 성으로 완전히 개명한다. 고린의 뜻을 묻자 그는 ‘그리고리 옵시테인이 성을 바꾸기로 결심했다(Гриша Офштейн Ре-шил Изменить Национальность)’란 문장의 첫 글자를 땄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고린은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소질을 보였다. 처음으로 시를 쓴 것은 일곱 살 때였다. 초등학교에서도 단편소설이나 콩트 같은 짧은 글을 창작하곤 했다. 고린은 모스크바 세체노프 의대를 졸업한 뒤 4년 정도 응급실에서 의사 생활을 한다. 이때도 그는 글쓰기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풍자와 유머가 가득한 그의 글은 여러 잡지나 신문에 실렸고, 점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966년에는 동료 작가 아르카디 아르카노프와 <유럽으로>란 코미디를 공동 집필했다. 이후 아르카노프와의 공동 작업은 <연회>, <저택에서 벌어진 작은 코미디> 등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 후반부터 고린은 러시아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970년대에는 TV코미디쇼에 고정 출연을 하기도 했다. 명성이 높아지자 소련 작가동맹 회원이 되었고, 본업인 의사는 그만둔다. 1970년대 고린은 렌콤극장에서 극작가로 활동하면서 인기를 얻어 본격적으로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연출가 마르크 자하로프와 함께 제작한 <헤로스트라토스를 잊어라>, <스위프트가 만든 집>, <추모기도>, <광대 발라키례프> 같은 작품은 렌콤 극장을 명문 극장으로 승격시킨 도약대가 되었다. 특히 자하로프가 영화화한 <사랑의 공식>과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은 기록적인 관객 동원에 성공한 명작이었다.

늘 재치와 해학이 넘치는 그였지만, 건강에 대해서만큼은 절대 장난을 치지 않았다. 주변 사람이 아프면 그는 의사 출신답게 병원에 가길 진지하게 권했다. 하지만 정작 자기 건강에 대해서는 진지하지 못했다. 고린은 2000년 6월 15일 죽음을 맞이한다.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