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셰익스피어 '맥베스(각색본)'

clint 2015. 12. 6. 23:11

 

 

 

'맥베스'는 셰익스피어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셰익스피어가 최고의 극작가라니까 '맥베스'는 연극 최고의 작품일 가능성도 있다. 이 작품의 뭐가 좋아서 그렇게 최고 소리를 들을까?
전에도 얘기했지만 셰익스피어는 문학을 하거나 교수되려고 글을 쓴 사람이 아니라 돈벌려고 관객이 좋아할 재미있는 연극 작품을 쓴 것이다. 극장에서의 공연을 위해 대사 위주로 쓰여진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그냥 대본을 읽어서는 뭐가 좋은지 잘 모르지만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해보면 그 진가가 나타난다. '맥베스'의 경우는 음침하고 불안한 무드, 빠르고 느린 장면의 정교한 배치에 의한 템포의 변화, 그리고 멋진 대사들이 놀랍다. 그리고 그런 특이한 무드와 놀라운 템포는 '맥베스' 매력의 일부분일 뿐이다.
'맥베스'는 대부분의 보통 관객들이 좋아하는 액션 스릴러다. 충성을 맹세하고 군대를 맡은 장군이 반역을 하여 왕을 살해하려 한다. 그러니 관객은 '어떻게 될까?' 기다린다. 그런데 그 살인은 겨우 시작일 뿐, 손에서 피가 지워질 틈도 없이 계속 범죄를 저지르다가 결국은 반대세력이 모이게 만들고 그들에게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이런 얘기가 긴장감 넘치는 스릴과 화끈한 액션으로 치밀하게 꾸며져 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 사극도 여자들의 질투와 간신들의 모략으로만 채울 게 아니라 확실한 액션을 더해야 되는 거 아닐까?)
'맥베스'의 다음 매력은 주인공이 철저한 악당이라는 것이다. 관객이 못된 악당을 보며 미워하는 즐거움은 변학도, 팥쥐 엄마, 뺑덕어멈, 후크 선장을 통해 증명된 것이고, 악역은 착한 주인공보다 더 고난도의 연기력이 필요하다. 내가 본 공연 중에는 맥베스를 맡은 배우가 주인공이라고 좋게 보이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철저히 못된 악당이 적나라하게 인간적인 면을 보이기에 관객은 공감하고 동정심까지 느끼며, 그것 역시 이 작품의 멋이다.
레이디 맥베스 역시 아주 악한 여자지만 내면에 감췄던 두려움이 터져 너무도 불쌍한 꼴로 변하는 멋진 역이다. 레이디 맥베스의 이런 양면성을 강조하기 위해 많은 공연에서 레이디 맥베스의 옷을 벗긴다. 강한 성격을 보이는 앞부분에서는 화려한 옷으로 치장했다가 몽유병 장면에서는 불쌍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핑계로 누드로 만들어 손님을 끄는 것이다. 또 마녀들, 유령, 암살, 결투... 이런 쇼킹한 장면들이 계속 펼쳐진다.

 


다음은 대사의 멋이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나중에 (1606년?) 쓴 작품으로, '오델로'나 '리어왕'보다는 '햄릿'과 유사한 점이 많다. 두 작품 모두 유령과 마녀라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나타나 주인공에게 비극의 동기를 부여하고 그로 인해 복수와 야망을 행동에 옮기며 그 결과로 주인공들은 죽음에 떨어진다. 분위기와 대사도 '햄릿'과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초기작 '햄릿'에 비해 '맥베스'의 대사는 훨씬 성숙한 멋을 보인다. 비슷한 대사 중 먼저 '햄릿'의 제 3막 2장 독백을 크게 읽어보시라.
밤은 으슥하여 마귀가 날뛰는 느낌에
무덤은 입을 벌리고, 지옥이 독기를
내뿜는 이 시간, 지금은 뜨거운 피를 빨면서
낮이라면 눈을 가리고 외면할
그런 무서운 짓을 할 수가 있다!
이와 비슷한 대사를 '맥베스' 제 1막 5장에서 맥베스 부인이 한다.
어서 오라, 어두운 밤이여,
지옥의 캄캄한 연기로 이곳을 둘러싸
나의 날카로운 칼도 자기가 찌르는 상처를
볼 수 없도록 하라!
하늘도 암흑의 장막으로 가리워, 내게
'멈춰라'는 소리를 하지 않도록 하라.
두 대사의 느낌은 비슷하지만 방법도 차이가 있고 효과도 크게 다르다. '햄릿'은 가볍고 명료한 문장을 계속 연결하여 질량감만 많은데 '맥베스'의 대사는 더 압축된 이미지의 문장이 섬세하게 긴장감을 표현한다. '햄릿' 제 3막 3장에서 왕이 기도하며 후회하는 부분의 대사와 '맥베스' 제 2막 2장에서 덩컨 왕을 암살하고 난 맥베스가 두려워하며 후회하는 대사를 비교해도 '맥베스'의 느낌이 훨씬 강하다.
이런 차이는 두 작품의 구성과 등장인물들의 성격에도 크게 나타난다. '햄릿'에는 밝고 가벼운 장면도 있고 코믹한 장면과 대사도 많다. 그러나 '맥베스'의 코믹한 부분은 살인장면 직후 (제 2막 3장의) 문지기 장면 하나 뿐이다. '햄릿'이 모듬피자처럼 복잡하고 다양하게 이루어진 작품이라면 '맥베스'는 홍어회처럼 훨씬 더 분위기와 무드를 중시한 표현적 작품이다.

 

 

 

맥베스의 성격
'맥베스'를 공연할 때 좀 색다르게 '나중에 무슨 벌을 받더라도 왕이란 것은 한 번 해볼만한 거다!'라는 주제를 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전통적인 방법을 택해서 '악하고 잔인한 악당이 나쁜 짓을 하다가 결국은 벌받는다'는 주제로 공연한다. 그리고 관객은 악당 맥베스에게서 인간의 약점을 본다. 한 인간이 느끼는 유혹과 야망 그리고 의심과 불안을 통해 좌절에 이르는 과정을 공감하기에 관객은 악당 맥베스에 대해 동정심을 갖는다.
햄릿은 정의를 실천하려는 착한 인물로 그 성격이 끝까지 변함없이 유지되지만 맥베스는 그 악한 성격이 이중적인 구조를 가졌으며 작품의 진행에 따라 변화한다.
맥베스는 용감한 장군이었다. 처음 전령이 왕에게 보고하는 장면에서 맥베스는 아주 용감하게 적과 싸워 이겨 왕의 칭찬을 듣는다. 그러나 그런 충신의 마음 한 구석에는 악한 야망이 들어있다. 그러나 곧 맥베스 부인의 입을 통해서 '위대한 인물이 되려는 야심은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못 이루고 남이 해주기 기다리는 비겁한 사람'으로 표현된다.
겉보기에 용감한 맥베스의 내면에는 겁이 가득하다. 아직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이 발각되거나 실패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그 시작이다. 결국 반역의 야심을 감춘 충신이고 용맹함 속에 두려움을 감춘 이중 성격이다. 그리고 당시로는 바보로 취급되던 공처가이기도 하다. 이렇게 나약한 겁쟁이 맥베스를 마녀와 부인이 부추겨 살인을 하게 만들고 맥베스는 왕좌에 오른다. 그러나 살인하기 전부터 두려워하던 맥베스는 살인을 저지른 직후부터 공포에 질려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듣는다.
제 3막에 이르면 맥베스의 평판은 아주 나빠져 있다. 다른 인물들이 맥베스를 보는 태도도 그렇지만 관객이 보기에도 맥베스는 점점 더 비겁한 수단을 쓴다. 처음 덩컨 왕을 죽일 때는 부인의 압력으로 할 수 없이 직접 살인을 했는데, 이제는 자객을 시켜 암살하고 여자와 아이도 죽인다. 군인답지 못한 악한 인물로 변한 것이다. 또 두려움은 무서운 공포로 변하여 마음의 병이 되었다. 만찬 장면에서 뱅코우의 유령을 본 순간부터 맥베스는 공포를 피하기 위한 일만 할뿐 다른 일은 전혀 못한다. 처음부터 마녀와 부인에게 의지했던 맥베스는 부인이 죽은 뒤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그 뒤로는 마녀의 말만 믿다가 죽는다. 그래서 후반부 이후 독재자로 불리던 맥베스는 마지막에 '저주받은 도살자'로 머리가 효시 된다.
'맥베스'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최고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최고작으로 평가된다. 그러니까 연극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 세밀히 읽어봐야 한다. 마침 예전에 극단 서강의 공연을 위해 각색한 대본이 훨씬 읽기 쉬우니까 이 틈에 한번씩 읽어두기 바란다. 최근 작은신화의 공연에서도 이 대본의 대사를 인용했다.

 

 

 

(각색 의도) 박용준
'헤비메탈 액션 스릴러 맥베스!'
사람들은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에 겁을 먹는다. 마치 영문학의 기원이자 제 1인자요, 모든 문학의 알파요 오메가인듯 미화되고 우상화되어 무지 어렵고 복잡하며 골치 아플 것이라는 선입감을 갖는다. 그래서 자세히 알기도 전에 주눅이 들어 피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실제로 공연을 해보면 전혀 다른 느낌을 갖는 게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다.
그는 읽고 분석하고 논문 쓰기 위한 게 아니라 공연하기 위한 작품을 썼다. 따라서 작품을 읽을 때는 그 효과를 잘 알 수 없던 여러 부분이 공연을 해보면 아주 놀라운 효과가 나타난다. 그리고 너무나 멋지고 풍부한 그의 대사는 실력 있는 배우와 엉터리 배우를 나눌 수 있는 기준이 된다. 그런 다양하고 풍부하며 예술적인 대사들은 셰익스피어 혼자서 다 쓴 것이 아니고 당시 공연에 참가했던 일류 배우들에 의해 즉흥적으로 만들어졌거나 수정되었을지도 모른다. 또 오랜 공연을 하면서 관객이 좋아하는 부분은 늘어나고 재미없어 하는 부분은 줄어들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읽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이미 그 시대의 관객에 맞도록 완벽한 수정이 이루어진 공연의 기록인 셈이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존슨 부통령의 고향인 텍사스에서 암살 당했을 때 이 작품은 '맥버드'라는 제목으로 공연되었다. (존슨 부통령의 부인 이름이 버드였다.) 그런 식으로 이 작품은 현대로 각색하여 정치극이나 군부 쿠데타의 얘기로도 바꿀 수도 있고, 관객에 따라서는 기업 드라마나 '대부'같은 마피아 얘기로 변하기도 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젊은 관객을 목표로 정했다. 그래서 시대를 중세라는 막연하고 와일드한 때로 택했고, 그 시대에 어울리는 헤비메탈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원작을 약간 변형했을 뿐이다. 쇠로 만든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큰칼로 결투를 벌이고, 또 마녀와 마법을 동원하고... 원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현대의 관객이 바라는 환상을 재현한다. 그러나 이 작업의가장 중요한 목표는 현대의 젊은 관객들에게 '맥베스'를 친숙하게 전하는 것이었다. 실제 메리홀에서 김철리, 정한용, 박이준 등이 출연하여 공연한 극단 서강의 '맥베스'는 오락과 흥미를 추구했고, 동시에 멋진 대사와 장면이 가득한 '볼만한 작품'이 됐으며, 셰익스피어는 골치 아픈 작가가 아니란 것이 증명되었고, 찾아온 수많은 젊은 관객들은 이 '명작'을 '신나게' 즐겼다. 등장 인물의 이름은 원작을 그대로 따랐고, 대사 중 독백을 제외한 부분은 산문으로 바꾸었다. 인물은 몇 명 줄였고, 장면 구분도 바꾸었으며, 맨 마지막에 마녀 장면을 추가했다. 많은 등장인물을 (셰익스피어 시대에 그랬듯) 16명이라는 적은 수의 배우들이 분장과 의상을 바꿔 가며 여러 역을 소화할 수 있었는데, 제작 여건에 따라 이 보다 더 줄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