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로아의 <녹두장군>은 1946년 말 상연됐는데,
10월 인민항쟁과 동학농민운동을 결부시킨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은
역사 속에 남조선의 현실을 투영하면서 좌익 문단의 찬사를 받았다.
부패한 권력에 항거하는 전봉준의 영웅적 행위를 포착함과 동시에 “뿌리 뽑을 수 없는”
민중의식을 강조했다는 점에서였다.
함세덕의 경우 <녹두장군>에 대해 “대중에게 올바른 역사극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고 평가하지만, 그 결함으로 농민들이 분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억압이 설명으로만 처리된 점 등을 지적한다(<독립신문>).
실상 <녹두장군>은 해방기 인민의 민주정신이 적극적으로 표출된 연극으로 보기는 어려운데, 그 이유는 함세덕의 평처럼
동학농민운동의 배경이 설명으로만 처리되며, 극은 전봉준과 기생 향월, 전봉준의 문하생인 조성국과 관노의 딸인 최옥분 사이의 로맨스를 주축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녹두장군>은 갑오년을 배경으로 전봉준의 집에서 시작되는데, 전봉준은 백성을 수탈하는 민씨 일족에 대한 투쟁을 다짐한다. 1막에서는 폭정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며, 그 과정에서 전봉준이 정치 일선에서 밀려난 대원군의 후원을 받고 있음이 암시된다. 한편 관노인 옥분은 성국을 사랑하지만 어머니에 의해 전라 감사에게 강제로 팔려가게 되고, 때를 기다리던 전봉준은 대원군의 하교를 받자 난을 일으키기로 결심한다.
2막의 배경은 전주 감영(監營)으로, 동학군의 승전보가 전해지는 가운데 전라 감사 김문현은 기생 향월과 옥분을 데리고 술을 마신다. 옥분은 수청을 들라는 감사의 명령을 거절하는데, 이때 성국이 등장해 백성을 수탈하는 탐관오리들을 비판한다. 감사가 옥분과 성국을 고문하려 할 때 전봉준이 당도해 부패한 관리들을 징벌하고, 전봉준을 부모의 원수라 여기는 향월의 오라버니는 향월에게 감영에 머물며 전봉준을 주시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향월은 전봉준의 인품에 감화되면서 그를 죽이기를 포기한다. 한편 전황이 동학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연이어 비보가 들려오고, 어린 성국이 전사해 돌아오면서 슬픔이 고조된다. 게다가 손병희는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우니 동족끼리 싸우지 말 것을 권고한다.
결국 상황은 비극으로 치달아 지원병을 요청하러 갔던 옥분은 관군의 총에 맞아 죽고, 향월은 전봉준을 지키려 자신의 오라버니를 찌른 후 자결한다. 이어 결박당한 전봉준이 백성들의 정신은 영원하다고 부르짖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박로아의 본명은 박영진(朴榮鎭)으로, 김기진에 따르면 시베리아에 자란 박로아는 이후 조선으로 돌아와 <개벽>의 기자가 됐다. 박로아는 동 경에서 메이지(明治) 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조선무연탄 주식회사에서 근무하다, 1942년 5월부터 현대극장의 총무로 재직하면서 극단 운영과 극작에 종사했다. 극작가로서는 유치진 연출의 <무장선 셔멘호>(1944)와 국민연극 경연대회 참가작 <개화촌>(1945)을 조천석(朝天石)이라는 이름 으로 발표했다. 해방 후에는 희곡 창작에 더욱 매진했으며 이념논쟁에는 끼어들지 않았지만, 유치진의 희곡에 대해서는 신파비극이라며 비판했 다. 7) 그는 서울소년원장이란 공무원 신분으로, 검거된 연극인의 구명운 동에 앞장서다 좌익혐의를 받아 검찰국에 갇혔다. 1949년 ‘남로당 중앙 연극 동맹사건’의 주동인물로 기소됐을 당시 죄목은 남로당에 입당해 연 극동맹의 희곡부장이 됐다는 것, 이서향, 조영출 등의 월북을 도왔다는 것, 김태준의 지령을 따라 <사명당>, <애정의 세계> 등을 연출해 대중으 로 하여금 흥미리에 ‘평화적인 남북통일을 갈망하도록 하는 선전’을 했 다는 것 등이었다. 석방 후에는 열성적인 보도연맹원이 됐고 이후 월북 한 것으로 알려지지만, 북행 후의 행적은 파악되지 않는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영근 '유전무죄 무전유죄' (1) | 2023.05.11 |
---|---|
윤미현 '경복궁에서 만난 빨간 여자' (2) | 2023.05.09 |
남궁만 '복사꽃 필 때' (1) | 2023.05.07 |
윤지영 '우연한 살인자' (1) | 2023.05.07 |
신고송 '들꽃' (1) | 2023.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