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에 가출한 김영호는 댐 건설로 고향 땅이 잠긴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자란 마을
'성지'를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과거와 연결된 여덟명의 마을 주민을 살해한다.
김영호의 정신과 주치의 닥터K는 그의 기억을 따라가며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추궁한다.
김영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머니 미스김, 어린 시절의 화재와 동생의 죽음,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둘러싼 여러 사건들.
그가 기억하는 과거는 모두 사실인 것일까, 아니면 조작인 것일까.
그것이 조작이라면 과연 누가, 무엇 때문에 진실을 덮은 것인가.
치료를 하는 동안 그의 입을 통해 어두운 과거와 놀라운 비밀들이 밝혀지게 되는데.
진실을 외면하는 자와 진실을 파헤치는 자
자기 내면의 '악'과 대면했을 때 인간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는가?!
2013 극단 작은신화 우리연극만들기 선정작인, 윤지영 작가의 <우연한 살인자>
진실이란 그만큼 직면하기가 어려운 것임을 이 작품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연한 살인자>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를 오가는 과정 속에서
주인공의 조작된 기억과 감추고 싶은 진실, 그리고 인간의 본질과 마주하며
인간은 왜 진실 앞에서 비겁해질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있다.
미니멀한 무대, 탄탄한 희곡과 세밀한 연출, 섬세한 감정연기가 돋보이는
극단 작은신화의 배우들이 참여한 이 작품은
인간 본성에 대한 사유에 대해 되새겨 볼 수 있게 한다.
작가의 글 - 윤지영
이야기의 출발은 과연 ‘악’이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인가였다.
그러나 나는 보편적인 ‘악’이 존재하는지도 ‘악’으로 정의내린 것이 진짜 ‘악’인지도
우리가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을 가졌는지도 의문스럽다.
혹, 지구의 법칙으로 증명된 ‘악’만을 ‘악’이라 규정하지는 않는가.
여기 한 남자의 기록을 통해 편집된 선악을 살펴본다.
'우연호프' 문틈 사이로 한 여자의 발이 보였다. 시장으로 가는 길목, 버젓이 서있던 그곳은 문득 주저앉을 것처럼 낡고 위태했다. 나는 오래 우연호프 주변을 서성였다. 열넷, 쥐스킨트의 좀머를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라는 말을 들었던 그때처럼, 나는 쓸데없이 나의 무력함을 다시 한번 되 새겨야 했다. 시장에 가는 것이 두려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를 했다. 죄책감은 곧 잦아들겠지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거리에서, 어느 방석집 앞에 서, 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뒷모습에서, 얼굴을 보지 못한 주인공은 자꾸만 내게 '구원'의 의미 를 물었다. 발부터 시작하여 몸 전체를 그리던 여자는 그렇게 나의 미스김이 되어갔다. 미스김 이 잉태하여 영호를 낳고 영호는 잉태하여 닥터 K를 낳고 닥터K는 잉태하여 보란듯이 비겁함을 낳아줬다. 태어나 나와 너, 우리 모두를 구원할 수 없는 숙명을 굳이 또 한번 각인시켰다.
2013년, 몇 년간 줄기차게 인간인 것을 반성하게 했던 영호와 닥터K에게 작별을 고했다. 더 이상 미스김처럼 '구원의 의미를 묻지 않아도 되었다. 나의 인물들을 수장시켰으며 진실을 잠가버렸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여전 히 관찰할 것을, 또 기록할 것을, 작가라는 비겁 한 숙명을 받아들일 것을, 나는 부끄럽게도 결정하였다. 한동안 나와 '인간'으로 남아 살아갈 당신들에게, 그 터무니없는 무게에 짓눌려 산다는 사실 조차 잊은 당신들에게, 오늘은 당신 대신 영호가, 닥터K가, 미스김이 반성하겠노라고, 그러니 오늘 하루만은 "제발 그냥 편히 쉬어가라" 전하고 싶다.
윤지영 극작가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
2005년 <장흥댁> 공연, 극단 작은신화
2005년 <장흥댁> 부산 공연, 극단 연희단거리패
2006년 동대문학상 시나리오 당선 2007년 대구문학신인상 희곡 당선
2008년 동아문학상 희곡 당선 2008년 대구문학 신인상 희곡 당선
2010년 <上船> 공연, 극단 작은신화
2010년 신작희곡페스티벌 희곡 당선
2010년 <인간 김수연에 관한 정밀한 보고〉 공연, 극단 작은신화
2011년 목포문학상 희곡 당선
2013년 우리연극만들기 당선
2013년 <우연한 살인자> 공연, 극단 작은신화
2013년 <上船> 동경 공연, 주최 베세토 연극제 연출 야마다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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