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송의 「들꽃」은 3막의 장막극으로 신고송이 월북해서 처음으로 쓴 희곡이다.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신파극 성격”이다. 신고송은 “어떤 나라에서든지 ‘신파’가 연극계를 지배하는 시기는 연극예술의 파멸을 말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해방전반기에 그는 이런 신파성이 높은 작품을 내놓는다. 이 작품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라는 기준에서는 예외적인 작품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가 추구하던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예외적이라고 볼 수 없다. 특히 이 작품은 해방 전반기의 대중성을 의식한 작품이다.
「들꽃」은 토지개혁 법령 발표 직후(‘1946년 6월하순에서 7월까지’) 38도선의 접경지인 강원도 어느 농촌을 배경으로 한다. 농민인 조장곤은 해방이 되고 토지개혁으로 땅도 분배 받았지만 해방 전 징병으로 끌려간 아들 갑준의 생사를 알 수 없어서 해방의 의미도, 토지개혁의 의미도 찾지 못하고 트집만 잡는다. 그에게는 해방 전 가정형편 때문에 서울 술집으로 팔아버렸던 딸 갑선이 해방이 되고 집에 돌아와 있다. 조장곤은 갑선을 보면 답답해 하기만 하고 갑선은 자신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역정을 내는 것에 속이 상한다. 가족을 위해서 작부노릇까지 했는데도 자신을 미워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서러운 것이다. 갑선은 자신이 팔려 가면 가족은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오히려 집안은 점점 더 망해가고, 자신도 열심히 살았지만 빚만 늘어간 현실을 이야기한다. 갑선은 고향에 돌아와서 그의 옛 애인인 보안서장 강진만과 다시 만나게 된다. 강진만은 그녀의 과거에 상관하지 않고 그녀에게 청혼한다. 갑선은 자신의 깨끗하지 못한 과거 때문에 고민한다. 갑선은 진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진만 곁에 남고 싶은 마음과 그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어 고민한다. 진만은 한결같이 그녀에게 사랑을 보여주지만 그녀는 계속 떠나려는 마음을 먹는다. 다른 혼담에도 불구하고 갑선을 잊지 못하고 찾아온 것이나 그녀의 육체적인 타락은 신경도 쓰지 않고 오히려 마음의 순수함을 알아주는 것은 멜로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의 모습을 닮아 있다. 죽은 줄 알았던 갑준이 살아서 돌아오면서 조장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그 전에는 못 느끼던 토지개혁의 의미도 갑준이 돌아온 후 갑준에 의해서 느끼게 되고 갑선의 집에는 행복한 기운이 감돈다. 그러나 이들 가족이 가장 행복한 순간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첩보 활동 중 우연히 들린 김광필이 갑선이를 자신의 첩이 되어 같이 서울로 가자고 꼬시는 중에, 진만 이하 보안서원들이 갑선이네 집으로 김광필을 추적해서 들어오고, 갑선은 김광필이 방어하려고 쏜 권총에 진만을 대신해서 맞고 쓰러진다. 결국 갑선은 진만의 품에 안겨 죽고, 가족들은 통곡하며 막이 내린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사건 전개를 볼 때 아들의 귀환이 그 자체로 중요한 사건이 되기보다는 뒤에 나올 비극성을 높이는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갑선의 죽음을 숭고하게 만듦으로써 두 사람의 멜로드라마를 완성시키고 있다.
해방 전 발표된 희곡 중 많은 작품들이 당대 농촌의 현실과 농민들의 삶을 취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농민극들이 거의 모두 공통적으로 ‘딸 팔기’의 모티프를 취하고 있다. 당대 현실에서 딸 팔기란 농민극에서 식민지 농촌현실의 질곡과 여성착취의 현실을 반영하는 대표 모티프로 기능한다. 이면에는 딸 팔기라는 선정적 모티프를 사용하여 관객의 관심을 적극 붙잡고자 하는 대중극의 흥행 전략도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 해방 후 팔려간 딸의 귀환 모티프 역시 감상성이 두드러지며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관객들은 갑선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그녀를 동정하는 눈물 등에서 관객 스스로가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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