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일본 땅에서 쓸쓸하게 사라져버린 우리가 잊고 지내야 했던 우리의 잊었던 이야기
이 작품은 일본의 한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둔 조선민의 이야기로 그 유족을 찾는 과정을 아사히신문에서 다루어 화제를 일으키었던 실화가 바탕이 되고 있다. 동경근교의 국립정신 신경센터 병원의 한 병실에서 한 남자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享年 85세. 남자가 남긴 유물은 자신의 하얀 뼈와 현금 4만엔. 그리고 조선국적의 외국인 등록증. 이 남자는 1944년 일본의 식민지 통치하의 조선으로부터 일본의 대학에 입학했으나 학도병으로써 일본군에 강제 징병되고 전쟁터에 나가서 정신병과 함께 기억을 상실한다. 그 후 조선이 해방을 맞이하는 사실도 모른 채 일본의 한 병원에서 마음을 닫은 채 수십 년을 지낸다. 이 남자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서야 마치 시계가 거꾸로 도는 듯이 기억이 되살아나서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지난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60년전 일본의 패전 당시 모습이었다. 그에게서 감춰진 과거라? 잃어버린 시간의 의미란? 2차대전 일본과 조선의 역사 틈바구니에서 농락당한 실존의 인물을 통해 한일 간의 전쟁문제, 식민시대 이후 일본의 문제들이 묘사되어진다. 전쟁이란? 국가란? 인간이란? 우리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과 일본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려고 하는 것인가?
4년 전 2000년 2월 15일 새벽. 육군 이등병 카네바라 햐쿠쇼쿠(金原百植) 씨가 동경도 코다이라시의 국립정신병원 신경센터 무사시 병원 4호관 1층의 병실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말기 암이었다. 당직의가 30분 정도 심장 마사지를 실시했지만, 2시 6분에 사망한 것이 확인되었다. 향년 75세. 죽은 남자가 남긴 것은, 한 상자 가득 담긴 새하얀 유골과 현금 4만 엔 정도, 그리고 ‘조선적’이라고 적힌 외국인 등록증. 본명은 김백식(金百植). 1944년 식민지 통치하의 조선반도에서 일본군에 징병당해 전장에 투입된 후 마음을 다쳤다. 그 이후 그의 시간은 멈춘 채 지속되었다. (이하 생략)
- 아사히신문 2004년 3월 28일자 사회면
원치 않은 전쟁에 강제 징집되어 인육까지 먹어가며 살아남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물론 국가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기억상실증 환자로 55년이라는 긴 세월을 일본의 정신병동에서 보내다 쓸쓸히 숨져간 한국인 김백식 씨의 죽음을 추모하는 위 기사는 재일교포 사회 등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연극<침묵의 해협>학도병으로 필리핀에 끌려갔다가 살아 돌아온 조선 청년 동진과 그를 기다리다가 히로시마 원폭에 희생된 일본 여인 미와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가 드라마의 큰 줄기다.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과 전쟁의 충격으로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오랜 세월 정신병동에서 보낸 노인 동진의 상처가 일본인 간호사로 인해 치유되는 과정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보여준다. ‘침묵의 해협’은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다루어 화제를 일으켰던 실화가 바탕이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하 징용 당했던 한국인이 일본의 한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두며 오랜 시간 잃어버렸던 기억을 찾게 되고 그동안 잃어버린 시간과 감춰진 과거가 실존 인물을 통해 양국 간 문제들로 다양하게 묘사됩니다.‘침묵의 해협’은 현재 독도문제로 양극화된 한일 간 역사의 진실을 바로 알려줄 것입니다.
'침묵의 해협'은 두 국가의 과거모습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통해 미래를 말한다. “우리는 ‘세계 속의 아시아’이다. 누가 형이든 아우든, 남자든 여자든 그것은 상관없다” 고 말이다. 이들은 이 말을 전하기 위해 역사책도 뉴스도 아닌 ‘연극’을 이용해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기 시작했다. 이 극에는 미친 인간들이 한 장면에 한 명씩은 거의 들어가 있는데 그들은 궁중악사 놀이, 간호사놀이, 해리포터 놀이, 전쟁터 놀이 등을 하며 놀고 있다. 그러나 천진난만한 이들을 보며 가슴이 아려오는 것은 그들을 역사적, 사회적 희생자로 간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왜 미쳐야만 했는가? 아마 현실이 그만큼 참혹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을 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두려워 차라리 눈을 질끈 감아버린 그들을 보며 안타까운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점적으로 미친 인간은 60년간의 기억을 잊고 현재도 잊은 채 살아가는 할아버지 ‘동진’이다. 이 할아버지를 통해서 이제는 60년 동안 현실을 외면했던 한․ 일 관계의 침묵을 깨고 직시 할 때라고 우리를 설득한다. 우리가 덮어두고 쉬쉬하려 했던 문제들(강제적 조선합방, 노동 착취, 강제 징용, 창씨개명 등 일련의 사건들)을 노골적으로 끄집어내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을 단지 폭로하는 것에만 목표를 두지 않는다. 극에서 일본인들의 입을 빌어 자신들의 만행을 자인하게 하고, 한국이 자신들의 선조임을 확고히 밝히도록 한다. 즉,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 일본의 나쁜 행동을 인정하면서 화해를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이 화해의 매개체로 삼은 것은 ‘문화’이다. 이들은 일본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짓밟았던 만행을 나열하며 잘못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물리적으로는 궁중악사 손을 잘라버린 것으로 드러나고, 정신적으로는 굿을 미신이라 치부해서 그 맥을 끊어 버린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다시 일본인과 한국인이 연결되는 점 또한 ‘문화’를 통해서 이다. 가야금, 판소리 등 한국 전통 문화를 통해 일본은 한국을 느끼고 더 이상 한국인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것이 ‘문화예술’의 힘인 것이라고 이들은 믿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이 연극이 한국과 일본의 뼈아픈 과거를 치유하고 두 국가가 손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 개인의 비극을 통해 한일 양국 간의 오해와 잘못들까지 짚고 넘어가는 이들의 행로가 짐짓 결연하다. 이들은 논리가 아닌 감성을 자극하며 역사의 비극을 가슴으로 느끼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침묵의 해협」은 단순한 연민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그렇게 만든 이 ‘세상과 역사’ 보기를 시도하면서 60년 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에 깊게 패여 버린 좁고 긴 해협을 당당히 건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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