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한강 마포나루를 배경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민초들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이다.
늙은 소금장수인 성진은 젊었을 적에 벙어리 아내 술래를 쫓아내고 아들 덕이와 함께 산다. 성진의 친구인 새우젓장수 덕출은 아내를 병으로 여의고 어린 딸 솔이와 살고 있다. 극은 성진과 덕이간의 세대 갈등, 덕이가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고민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덕이와 솔이의 사랑을 세 축으로 놓고 진행된다.
작품의 궁극적인 초점은 차츰차츰 늙어가는 두 노인, 성진과 덕출의 외로움과 쓸쓸함에 있다. 1930년대라는 식민과 근대화의 격변기를 살았던 순박한 사람들의 아름답고 처량한 인생사.
〈서산에 해 지면은 달 떠 온단다.〉는 작가 자신에게 ‘희곡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져준 작품으로, 1930년대 초 한강 마포나루에 살던 늙은 소금장수와 새우젓장수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젊은 시절 사소한 오해로 아내 술래를 내쫓은 소금장수 성진은 아들 석이와 살고 있고, 성진의 친구인 새우젓장수 덕출 역시 병약한 아내를 잃고 어린 딸인 솔이를 키우고 있다. 게다가 석이와 솔이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다툼과 반목 때문에 벌어지는 세대 간의 문제가 갈등의 큰 축이다. 자식을 붙잡아두려는 성진과 그런 부모 곁을 벗어나려는 석이,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석이의 노력은 나라 없는 시대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석이와 솔이의 풋풋한 사랑에는 이제 늙어가는 성진과 덕출의 쓸쓸한 뒷모습이 겹친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주인공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이야기이자 한 개인의 정체성을 통해 그 시대와 역사의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이며, 인간의 근원적인 고향인 모성을 희구하는 회귀와 순환에 관한 이야기다.
작품의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과 반목으로 인해 벌어지는 세대 간의 문제다. 아버지인 성진은 자식을 자신의 곁에 붙잡아 두려 하고 아들인 덕이는 그러한 부모를 벗어나 멀리 떠나려고 한다. 그 대립의 근원엔 덕이의 얼굴도 알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다. 모성과 부성의 상관관계 속에서 덕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은 곧 바로 그 시대 역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과 직결된다. 또 하나, 작품의 큰 축을 이루는 중심엔 젊은 남녀인 덕이와 솔이의 지고지순한 사랑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차츰차츰 늙어가는 두 노인, 성진과 덕출의 외로움과 쓸쓸함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 작품의 무대는 1930년대 초 한강의 마포나루다. 그 시대와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때 그곳에서 이 땅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70여 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결코 무관한 것만은 아니다. 역사의 문제는 결국 인간의 문제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도시와 시골이 만나는 접경처럼 냉혹한 이익 추구와 끈끈한 인간애가 공존하던 1930년대는 식민의 아프고 쓰린 기억과 근대화 초기의 문화 사회적인 흥성거림이 묘하게 뒤섞여있던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당대의 인정과 세태 속에서 식민지 시대의 희망을 찾아 울고 웃던 사람들. 이 작품은 한마디로 비록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직접 몸으로 깨닫고 체득한 지혜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자연의 순리를 좇아 생명을 존중하며 살았던 착하고 순박한 이들의 강물처럼 아름답고 슬픈 인생찬가라고 할 수 있다.
최창근
강원도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서울로 올라와 문학과 연극을 사랑하는 동료들과 어울려 청춘의 아름다운 한 시절을 보냈다. 2001년 우리극연구소의 새 작가, 새 무대를 통해 희곡 〈봄날은 간다〉를 무대 위에 올리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2년 제38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2008년 제16회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공연 작품으로 〈봄날은 간다〉, 〈서산에 해 지면은 달 떠온단다〉, 〈12월 이야기〉, 〈13월의 길목〉, 〈바람이 분다〉가 있고, 공연 준비 중인 작품으로 〈입맞춤〉, 〈가족 사진첩〉, 〈먼 훗날 어느 별에서〉 등이 있다. 희곡 창작 외에 연출 작업을 겸하면서 국내외 작가들의 문학 낭독 공연과 문학 작품을 시극으로 만들어 무대 위에 올리는 일에 관여했다. 낭독 공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극단 바이올렛 씨어터 제비꽃을 창단해 전문적인 낭독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잡지 연재를 마치고 곧 책으로 묶을 예정인 《젊은 극작가의 세상 읽기 1 ─ 연극과 연극의 이웃 친구들》, 《젊은 극작가의 세상 읽기 2 ─ 막막한 바다에 밀려오는 부드러운 물결처럼》, 《예술을 위한 순례 ─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 《최창근의 중남미 음악 산책 ─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같은 산문들과, 집필 작업을 끝낸 후 출간 준비 중인 작가 연구서 《매혹과 환상의 유토피아 ─ 최인훈의 회곡과 그의 시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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