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신라시대.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하다 만나게 된 김현과 처녀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처녀의 산골 집으로 같이 가서 모친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처녀의 간청으로 혼례식을 갖고 합방하게 되는데... 잠시 후 나타난 처녀의 오빠들은 난폭한 자로 호랑이임을 알게 된다. 호랑이 가족들은 이 땅의 터 지킴이로서 땅과 정기와 혼을 지키는 바 이들의 무분별한 살육으로 천상의 할아버지에게 벌을 받고 있는 터 처녀는 이들과 남편이 된 김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 모두를 잘 되게 하려 하는데..... 결국 처녀는 김현의 칼에 자결하여 그 뜻을 이루게 된다.
<지킴이>는 무사 계급에서 상인계급으로 잠적한 지킴이의 힘을 대물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앞서 <검은 새>에서 지킴이의 정신을 ‘솟대장이패'와 ‘선인패' 같은 신비로운 무사의 존재로 표현하였다면, <지킴이>에서는 ‘보부상’ 같은 상인계급을 통해 이어진다. 개성상인 김종 노인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젊었을 때 폐해버렸던 지킴이 제사를 다시 일으켜 그 내력과 제사에 얽힌 이야기들을 자손들에게 전해 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킴이 제사에 모시는 조상들의 내력이 우리나라의 역사와 유기적으로 얽혀 짜여있고, 보부상으로 상징되는 상인• 무인 계급이 민중혁명의 동력이 되어 왔다는 사실이 상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긴 시간을 통해 무대 위에 펼쳐진다. 극은 개성 갑부의 후예 김종 노인이 자손들을 이끌고 지킴이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김씨 문중에는 종손에게만 은밀하게 내력이 전해져온 지킴이 제사의 수수께끼가 있다. 그것은 상고시대 무사 계급 지킴이의 전통이 대물린 만석꾼으로 현대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무사 계급 지킴이는 상고시대의 윤리의 척도이며 무기이며 의술용 도구이기도 했던 칼을 들고 온갖 전란, 질병,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지켜왔다. 또한 만석꾼은 변천하는 역사 속에서 돈이라는 칼을 들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웃과 내 땅의 맥을 지켜온 것이다. 보부상 집안의 엄격한 계율이 바로 조상 대대로 대물려온 지킴이의 법인 것이다. 원래 뜻과 칼과 의술로 세상을 지켰지만 이제는 ‘돈이라는 칼로 세상을 지키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보부상들의 지킴이 제사의 내력을 서사적으로 펼쳐 보임으로써 바로 역사의 주체는 민중이라는 사실과 가치관의 혼돈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킴이의 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정복근
197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여우>로 등단한 후 현재까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1989년<실비명>으로 한국백상예술대상 희곡상, 1994년<이런 노래>로 서울연극제 희곡상을 받았으며, 1997년 영희연극상을 수상하였다. 희곡뿐만 아니라 창극<박씨전>과 발레대본<사군자>와<나운규-꿈의 아리랑>을 집필하였다.
• 대표 작품
<태풍><지킴이><실비명><이런 노래><덕혜옹주><그 자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나>등
상실의 원인이 되는 온갖 종류의 질병, 비리, 부도덕, 부조리에 대해서 그리고 각자 내부의 온갖 악덕에 대해서 우리가 나와 내 이웃을 지켜 서로가 서로를 상하게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 일이 있었다. 그런 즈음에 우연히<지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었다. 말 그대로 지켜주는 자라는 뜻인 이 말은 본래 우리 전통무술의 무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호랑이를 산 지킴라고 부르기도 하고는 터줏대감을 터 지킴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노인들의 말씀을 들으면 무인을 가리켜 지킴이라고 불렀다는 말에도 쉽게 수긍이 갔다. 본래 우리의 전통무술은 의술, 정복, 무예의 세 가지 요소를 고루 지녀서 질병, 재난, 적군으로부터 항상 백성을 지키는 화법의 무예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거니 하고 있다가 나를 지키고 이웃을 지키며 적마저 지켜서 살리는 화법의 무의 개념과 윤리가 우리의 실생활 속에 아직도 얼마나 깊고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가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기 시작했을 때 이 작품이 스스로 틀을 만들어갔다.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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